집착 1

by 심그미

낙서만도 못한 글을 쓰는 건 아닐까.

쓰고 남는 후련함과 나중에 몰려올 부끄러움이 두려워 구겨진 채 잠이 들곤 한다. 잠드는 순간, 사실은 후련함이 더 크다. 후련함은 잔뜩 비볐다 펼친 갱지처럼 부들부들하다. 손가락으로 그 후련함을 가만가만 쓸면 포스스 먼지 입자가 일어날 것 같다. 나는 후련함이 일으키는 먼지의 소리가 듣고 싶다. 그렇게 잠에 들 때는 삶에 중용 같은 평온함이 잠시 깃드는 것 같다.


20대, 나의 20대. 잃어버린 자아와 끝내 잃어버릴 사랑이 칡과 등나무처럼 얽혀 있던 나의 20대. 나 아닌 것을 탓하여 보고 싶었어도, 나는 나를 가장 많이 탓해서, 나를 용서할 수 없어서 그 시간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다시 어두운 마음이 버짐처럼 피어오르고, 그 사소한 것들의 시간에 관해 쓰면서, 나는 전보다 훨씬 솔직해졌다. 그게 지금의 이 지경에 불과하더라도, 시간은 헛되이 지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괴로웠다. 내가 버티는 것이 외유내강을 위한 인내인지, 표리부동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들키고 싶지 않은 동시에 누군가가 눈치채 주기를 바랐다. 나는 아주 밝고 활기차게, 짓궂은 농담을 일삼으며 지냈고, 딱 그보다 두 배쯤 더 깊고 빠르게 황폐하고 쓸쓸해져 갔다. 아무도 나에게 '너 괜찮니?'라고 묻지 않았다. 들키지 않은 것일까? 사실은 그 물음을 듣고 싶었다. 철저하게 숨긴 탓인지, 자존심이 세다는 점을 너무 티 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폐허를 지나지 않았다. 내가 폐허 자체나 다름없이 황폐했다. 는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남은 평생을.

나는 내가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에 나를 또 싫어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누구도 나를 연민하지 않으면 나라도 연민해서라도 지키고 있었어야 했다. 아무도 나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몹시 누군가를 믿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나를 몇 번이고 배신한 끝에 아주 평범한 사람이 되는 데에 성공했다. 여전히 갈팡질팡하더라도, 이 정도면 안전하다. 내가 용서할 수 없는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고,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 직면의 순간에 나는 뻔뻔해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당당해질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사랑했다.


오만하거나 헛된 욕망을 품거나 물정을 모르거나 멍청하게 굴었다고 해서 그토록 오랫동안 나에게 험한 바람이 불었어야 했나? 어쨌거나 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납작해졌다.

흘러가는 대로, 상황이 이끄는 대로 순응하려 하다 권태를 느꼈다. 납작하던 나를 더욱 납작하게 해 보았다. 그 끝에 반작용이 일어나는 걸까. 이제는 주어진 상황을 타개하고 싶다. 자아가 고개를 들고, 내가 나를 회복하고 싶다고 주장한다. 는 전부 틀렸었다. 그 판단을 번복하겠다. 나도 어느 정도는 옳았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싫어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좋아한다.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한다. 아니, 수호한다. 친애하는 나여, 끔찍한 나여. 불쌍하고 어리석은 나여.


조용한 밤.

아기의 울음으로 이따금 쪼개지는 밤. 길게 드러누워 아이가 칭얼대다 다시 잠들 때까지 부벼댈 온기를 상시 제공하는 엄마의 역할을 다음 울음이 들릴 때까지 미뤄 두고 찬 공기 속에 앉아 나에 관해 적어본다.

아름다움만 좇아서 지우고, 하고 싶던 이야기가 아니어서 지우고. 그렇게 남겨놓은 나 역시 편집된 내가 아닌가, 그건 혹시 가짜에 가깝진 않나, 두렵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이미 나를 편집하고 있는데. 글은 나를 가공하는가? 나를 폭로하는가? 평온하고 명랑하고 때로 엉뚱한 사람으로 살아나가며, 이 삶에 도사린 어둡고 우울한 것들을, 나는 떨치는 대신 굳이 주워 담는다. 누군가에게 자꾸 확인받고 싶다. 이런 게 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타자로부터 듣고 싶다. 런 바람이 바람직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이런 글을 던져 내놓더라도, 큰 강에 아주 작은 돌을 던짐과 같을 것이다. 자그마한 '퐁' 소리와, 물결도 바꾸지 못할 찰나의 파문에 불과하고 말 것이다. 그 외에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만,

가끔 누군가를 위해 정말로 근사한 무엇이 되고 싶었던, 어떤 때가 생각날 때도 있다.

잘 안다. 내 글이 너무나 쓸모없다는 것을. 잉여 산물에 가까울지 모르는 문장. 지나친 자기 비하. 나는 문명의 흔적에 새겨놔야 할 사유도, 쓸모 있는 기술도, 정보도 없다. 내 글은 쓸모가 없다. 나는 내 글로 누구를 정화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 글로 뭘 어떻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목적하지 않으면서 굳이 쓰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다. 아무도 묻지 않으면 좋겠다. 나에게 그런 걸 묻는 사람이 없어서 요즘 지내기가 좋다.


어떤 집착을 버리는 것 또한,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20대를 회고하며 질척이는 것이, 나의 그 시절을 향한 다른 종류의 집착이었음을, 이제 인정할 수 있다.

털어버릴 수 있게 되자, 쓸 수 있게 된다. 아주 힘든 시기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닫고 지나기만을 기다리다가,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야 사실은 이러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

곧 그때에 관해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삶을 달리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관념에서 놓여나고, 어떤 생각은 아주 죽어버리고, 어떤 바람은 아주 미약하게 움튼다.

오랫동안 막연한 동경을 보내던 것들을 향해 탐색과 접근을 시작하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아직도 또렷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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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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