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 2025

아이들과 짧은 버스여행

by 심그미

남편이 주말출근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이들과 아침을 대강 차려먹는데, 9시쯤은 되었을 줄로 알았으나 시계가 여전히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얼추 끝냈을 때쯤에는 둘째가 신발을 두 켤레째 가져오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신호다.

원래 오늘 계획은 지난 평일에 가입한 첫째 아이의 학습지를 복습하고, 종이학습지에 스티커 붙이기, 색연필 칠하기 등을 하며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집중력은 짧았고, 딸아이가 오빠의 학습지를 탐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싶어 했다. 그 좋아하는 '페파 피그'도 어느 순간 저들끼리 리모컨을 눌러 꺼 버렸다. 아들은 자꾸 '213번' 버스를 타자는 말을 되풀이했다. 대체 언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버스를 타고 키즈카페에 갔었다는 모양이다.

버스라, 나쁘지 않지.

결심은 불쑥 들었다. 3월에 눈을 뿌리던 이상기후가 언제였냐는 듯 따사롭고 건조해진 주말. 봄나들이하기에 적당히 좋은 날씨다. 계절 맞아 몸 풀고 싶어 지던 참이라 아이들을 채비시켰다.


작은 배낭에 기저귀, 물, 물티슈 같은 간단한 짐을 챙기고 양손에 아이들 손을 하나씩 잡은 채 길을 나섰다. 육교를 걸어 올라가고 내려가는 동안 아이들이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코앞에서 버스를 한번 놓쳤더니 2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 아이들이 정류장 의자에 얌전히 앉아 버스를 잘 기다려주었다. 나는 큰애가 의자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거나 뛰고 싶어 할까 봐 걱정했었다. 오늘 아이는 내 말을 잘 따르고 의자를 떠나지 않았다. 가만히-까지는 아니었지만 기대보다 훌륭한 태도였다.


버스에 타자 큰애가 쏜살같이 맨 뒷자리로 가 앉았다. 정류장에서 선잠에 든 둘째는 좌석에 앉히자 잠을 깼다. 맨 뒷줄에 앉은 아이에게 손잡이를 꼭 잡으라고 당부하자 잘 따른다. 안도하며 그보다 두 줄 앞에 앉은 둘째 옆에 섰다. 둘째 아이 옆에 앉은 할머니께서 가방에서 초콜릿을 하나 꺼내 주신다.

"할머니 무릎에 앉으련?"

초콜릿은 아직 못 먹는다고, 내가 웃으며 거절하고. 할머니가 안아주마 하는 제안은 아이가 낯가리는 표정으로 거절하였다. 내내 어린 아기가 버스 좌석에 탄 모습에 신경 써주시고 살펴주셨다. 몇 정거장 지나자 큰애 옆에 자리가 둘 비어, 그리로 옮겨 앉았다. 둘째 아이는 버스의 빨간 정지 버튼에 불이 들어오는 게 신기하고, 꺼지는 게 의아한가 보다. 정류장에 멈춰 그 불이 꺼지자 '줘! 줘!'라고 말을 한다.

아이들은 유성온천을 지날 즈음에 잠들었다.

버스는 갑동의 현충원을 지나 공주로 접어든다. 내 손은 언제든지 버스가 급정지하거나 급커브 할 사태에 대비해 아이들의 배나 허리춤 근처를 맴돌았다. 무릎에 올려놓은 가방이 용케 흘러내려 바닥으로 구르지 않고 버틴다. 버스를 타니 아이들과 더 가까이 앉아 이동할 수 있다. 버스를 타니 카시트가 없어 아이들의 안전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잠을 못 깨는 둘째 아이를 안고, 이제 막 깨어 부스스한 눈을 뜬 첫째 아이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렸다. 동학사 정류장은 주차장 바로 위에 있다. 이 근처는 남편과 짧은 연애를 할 적부터 몇 번 와서 제법 익숙하다만, 정작 동학사라는 절을 구경한 적이 없다. 오늘은 내친김에 사찰 구경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기 시작했다.


잠든 17개월 아기를 안고 40개월 아기의 손을 잡은 채 식당을 찾아가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잠든 아기는 무거워서, 팔을 바꿔가며 들어야 했고, 그때마다 첫째 아이와 잡은 손을 바꾸어가며 걸었다. 내가 마음에 정한 식당은 계곡을 끼고 백숙이나 전 등을 파는 곳이었다. 내가 생각한 그림은 계곡 옆 자리에 앉아 졸졸 흐르는 물줄기를 구경하며 식사하는 것이었다.

"물가 자리 있어요?"

"아, 그럼."

사장님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 보니 계곡물이 적을뿐더러 비닐천막에 가려 그나마도 야외가 탁 트이게 보이지 않고, 식사할 자리는 밝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바라던 운치는 전혀 아니지만, 잠든 아기는 무거우니 일단 앉아서 도토리묵과 된장백반을 주문했다.

큰애는 식당에 들어설 땐 낯설고 무서운지 꺼리는 듯하더니, 우리끼리 한가로워지자 돌아다니고 탐색하려 한다.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밥 나올 때가 되니 기가 막히게 둘째가 잠을 깼다.

아이들이 도토리묵무침을 좋아하는데, 큰애는 입도 대지 않고 맨밥만 먹는다. 작은애라도 묵을 먹으니 다행이었다. 나는 나물을 이리저리 집어 먹는데, 아이 둘을 먹이며 내 식사를 한다는 것에 익숙하다 생각했으나 식당에서 돌아다니는 아이를 통제하기까지 해야 하니 집에서보다 훨씬 곤란했다. 다른 손님이 있으니 목소리 높이기 곤란하고, 집에 가면 혼쭐을 내리라. 민망함과 걱정을 끌어안은 채 맛없는 식사를 마치고 동학사로 가는 등산로에 들어섰다.


아뿔싸. 나 같은 엄마가 또 있을까. 따님이 평소에 좋아하는 신발을 그대로 신겼더니, 이 등산로에 메리제인 슈즈를 신은 이는 어디를 둘러봐도 오직 우리 딸 하나뿐이다! 심지어 나는 걷기 편한 운동화를 챙겨 신었으면서, 아들 또한 평소보다 바닥창이 얇은 스니커즈를 신겨 데려왔다. 아이들을 양손에 잡고 걸으며, '누구 하나라도 엄마 손을 놓고 혼자 걸으면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머릿속에서는 '아이고 이 경솔한 애엄마야!'라고 자책을 한다. 둘째 아이는 연등을 처음 보기라도 한 듯이 손을 가리킨다. 나야말로 아이들의 시야와 발을 살피느라 연등이 이런들 저런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예전 매표소 자리를 지나며 슬쩍 보는데 유모차 대여해 주는 곳이 없다. 그래, 오늘 아주 도전을 해 보자. 매표소에서 사찰까지는 1.3킬로미터, 약 20분.

음, 1.3킬로미터의 등산로를, 17개월 아기에게, 메리제인 슈즈 차림으로 걷게 하는 게 과연 좋은 외출일까?

오늘 사찰을 기어이 보고야 말겠다고 덤빈다면 딸에게 너무 잔인한 하루를 만드는 엄마가 될 것이다. 나는 이때 사찰 구경을 단념했다. 최대한 절 가까운 곳까지 걸어가 보자. 그리고 걸어 내려오자.


하필 등산로는 새로운 다리를 놓는 공사가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포장 전이라 울퉁불퉁한 길을, 바닥이 얇은 신발을 신은 두 아이가 아장아장 걷는다. 중장비들을 가까이서 보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구경을 하느라 눈을 앞에 두지 못한다. 둘째가 내 손을 팩 놓고 혼자 걸으려고 든다. 이런!

"아구, 이뻐라. 아줌마랑 손잡고 갈까?"

근처 무리에서 중년 아주머니께서 둘째 아이 손을 잡아주신다. 덕분에 둘째를 같이 붙들었다. 둘째가 아까 버스에서와 달리 낯가림을 심하게 하지 않고 고분고분 걷는다. 한 손엔 나, 한 손엔 낯선 아줌마를 잡고. 아이가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내 속은 조금 초조해졌다. 벌써 지치면 곤란한데.

"요즘 아이 보기가 힘들어서, 마주치면 너무 예뻐."

낯선 이의 밑도 끝도 없는 친밀감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난감하던 차에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하시더니 얼마 안 가 잘 올라가라고 격려하며 일행 곁으로 가셨다. 산에서는 이런 맛이 있는 법이지. 마주치는 이들과 서로 격려를 주고받는 것.

더 올라가지 않기로 하고 쉼터에 앉혀 아이들이 물을 마시게 한 뒤 발길을 돌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에 보인다, 우리가 일주문은 통과했었구나. 그 옆으로 화장실이 있어 들렀다. 기저귀 떼는 연습 중인 아들을 생각해서 더 일찍 들렀어야 하는데, 이미 기저귀에 소변을 본 뒤였다. 아차 싶은 마음을 또 혼자 삼키고 일주문 앞 바닥에 잠시 앉아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될 테지. 양손에 아이들 고사리손을 잡고 실컷 걸은 날.


"엄마, 안아."

큰애가 이젠 정말 칭얼거린다. 둘째는 오른쪽 신발 앞코를 자꾸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신발을 잘못 신긴 미안함, 두 아이를 업어줄 수 없다는 공포. 어르고 달래서 내려가려 하지만 사진 찍으려 앉았던 내 몸이 기회다 싶은지 둘 다 등으로 달려든다. 작은애를 등에 업고 포대기 대신 배낭을 메어 어설프게 보호를 한 뒤, 큰애를 앞으로 안아 애들을 앞뒤로 주렁주렁 매달고 길을 내려왔다. 한 손은 작은 애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손은 큰 애를 들고. 균형이 쉽게 무너지려 해서 잠시 길섶에 서서 뭐라도 가다듬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그래서 아빠가 있어야 돼' 뭐 이런 소리도 들려온다.

새로운 중년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아기엄마, 가방이라도 들어줄까요?"

"괜찮아요, 이 가방으로 작은 애를 받칠 거라서요..."

이 분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다시 걷게 되었다. 둘째 아이와 손을 잡고 걸어주신 그분은 본인도 둘을 키우느라 참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정말 예쁜 때라고, 나도 이미 여러 번 들어본 이야기를 하시더니,

"나도 그때는 누가 도와준다고 하면 창피해서 거절하기 바빴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도와준다 할 때 그 도움을 받을 걸 하는 생각도 있어요."라고 하신다.

"저도, 신세 지는 기분이 싫고 죄송하기도 해서..."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이런 말이 있어요. '그 사람에게 좋은 일 할 기회를 주라'는."

"아..."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말간 마음으로 나를 도와주신 얼굴을.

주차장 근처에서 인사하고 헤어졌다.


점심이 시원찮았던 아이들과 빵집에 들러,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카스텔라를 사 주었다. 의자에 올라서려 하는 아이들의 신발을 벗겨 주다가, 둘째 아이 신발에 꽤 커다란 돌멩이가 들어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발을 만지작거리더니, 불편하다는 신호였구나. 그랬는데도 예까지 참고 걸어왔네, 짠해라. 몰라줘서 미안했다.

이 빵집에서 봄 한 달간 만 판매한다는 쑥 카스텔라를 사 들고 아이들과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솔라야, 루나 손 잡아 줘.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솔라가 내 말에 순순히 루나 손을 잡아주었다. 그 모습이 몹시 사랑스러웠다.


버스에서 아이들은 달게 잤다. 평소의 낮잠시간을 훌쩍 넘어선 때인 데다 차를 타고 있으니 더 잠이 잘 왔나 보다. 공주에서 대전 유성구로, 유성구를 지나 서구까지. 4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짧은 낮잠을 자고 내릴 때가 되자, 이번에는 첫째가 부스스하게 깨지도 못할 만큼 잠을 깨지 못했다. 둘째도 말할 나위 없이 깊이 잠들어서, 두 아이를 안고 내리려다 하마터면 버스에서 못 내릴 뻔했다.

"아니야! 아니야!"

첫째는 버스에서 내렸다는 사실이 싫은가 보다. 이제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을지도. 다른 버스를 타자고 우기는 큰애와, 버스가 뭐람, 그저 세상모르고 노곤하게 잠든 둘째를 건사하느라고, 나는 우리 동네 정류장 옆에 잠시 철퍼덕 앉아 있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둘째를 눕혀 자게 하고, 앞에는 첫째가 앉아 오가는 버스를 구경하게 했다. 큰애는 정말로 버스의 번호와, 그 차들이 오감을 한참 바라보았다. 바람을 맞으며 자는 둘째가 안쓰러워서도, 첫째를 설득해야 했다.

"집에 바로 가지 말자.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타자."

드디어 큰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가는 길은 멀다. 물리적으론 전혀 멀지 않은데, 큰애의 심리적 지도에 따르면, 아무래도 더 멀어야 하는가 보다.


놀이터에서 또 한참을 논 뒤에, 우린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 꼬질꼬질해진 채로.

행복했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1화야만에서 문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