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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작가 동하 Jan 29. 2021

한 장의 엽서, 한 아름의 만족감

백지 엽서에 아이들은 글과 그림을 맘껏 담는다.


동네 문방구에 가면 몇천 원을 가지고도 기분이 좋아진다. 좋아하는 노트, 수첩 몇 개만 골라도 한 아름이다.


마찬가지로 엽서는 비교적 싼 값에도 만족감이 크다. 여행하면서 비싼 돈을 들이지 않아도 여행지나 명소를 기념할 수 있다. 집에 엽서가 넘쳐나지만, 나는 또 엽서를 골라 든다. 아내는 "집에 있는 거 쓰지 뭘 또 고르느냐"고 하지만, 그곳에서 사는 엽서는 다른 맛이다. 맛이 다른데 어쩌겠나.



그렇게 쟁여놓은 엽서가 요즘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 가족 우체통'을 만들고, 아이들은 엽서 쓰기에 제대로 흥미를 붙였다. 1일 1엽서를 구현해 나가고 있다. 이젠 지네들끼리도 엽서를 주고받는다. 그런 날은 1일 2엽서. 답장을 하는 엄마 아빠의 엽서까지 더하면 우리 가족은 요즘 1일 4엽서를 넘나든다.


"거봐. 그렇게 사다 놓은 엽서가 이렇게 또 쓸 일이 생기잖아"


이제는 물량 공급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슬슬 엽서가 동나게 된 것이다. 또 물량도 물량이지만, 아무리 저렴한 엽서라 해도 쓸 일이 많아지면 돈을 무시 못한다.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생각해 냈다. 우선 '엽서의 범위'를 확대하면 될 일이었다. 꼭 '엽서'라는 타이틀이 붙어야만 엽서가 아니다. 연습장이나 메모지도 엽서가 될 수 있다. 수신자, 내용, 쓴 날짜, 발신자를 적어서 가족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정식 '엽서'만 그 역할을 독점할 필요가 없다.


예전에 김훈 책을 샀더니 부록으로 두툼한 원고지 묶음을 준 적이 있다. 한장씩 뜯으면 좋은 엽서가 된다.


"이 노트, 이 원고지도 충분히 엽서가 될 수 있어"

"엉, 그렇네. 여기에도 한번 써봐야겠다"


그렇게 아이들도 다른 종이를 활용하게 됐다. 오히려 다채로워지는 효과가 있었다.


다음으로 생각한 대안은 저렴한 엽서 구매다. 시중 대형 서점 몇 곳을 둘러봤더니 가격이 만만찮았다. 엽서 1장에 500원, 1000원이라니! 예쁘긴 하지만 가격이 만만찮다. 그리고 우리가 쓰는 엽서는 생각나는 말들을 그때그때 옮기고 안부를 묻는 것이어서 굳이 고급 엽서가 필요하지 않았다. 특히 아직 한글도 서툰 둘째 아이는 사용하는 문장도 몇 개 되지 않은 상황이다. 엽서는 저렴할수록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아빠는 물량 공급의 사명을 띠고 며칠 간 틈나는 대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번드르르하게 포장된 엽서의 바다 속에서 아빠는 보석 같이 숨어 있던 두 종류의 엽서를 발견했다.


발품을 팔아 발견한 비교적 저렴한 엽서 묶음. 왼쪽은 광화문 생명의 말씀사에서, 오른쪽은 영등포 무인양품에서 구매했다. 모두 1세트에 10매가 들어있다.


하나는 광화문에 있는 생명의 말씀사에서 구매했다. 10개 묶음에 2000원. 시중 일반 서점보다 훨씬 싼 가격이다. 일반 서점에선 10개 묶음으로 엽서를 파는 곳도 흔치 않다.


또 다른 하나는 약속 시간이 좀 남아서 우연히 들른 영등포의 무인양품에서 발견했다. 10개에 1300원이라니! 심지어 흰 종이가 아닌 갱지로 된 엽서는 12개에 1300원이었다. 하나에 110원꼴. 엽서에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아서 아이들이 글 쓰는 것뿐 아니라 그림 그리기에도 좋았다.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엽서 묶음을 손에 쥐여 줬더니, 아이들은 보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행복감은 1000~2000원의 몇 배 값어치는 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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