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글을 쓰러 오는데, 양복 입은 젊은 남자들이 만취해서 길을 건넌다. 8485 맞아 맞아 남자가 택시를 집어 타고 들어간다. 나는 글을 쓰러 나온다.
이른 아침 인상을 찌푸리며 일을 나가던 아버지 마음이 더 힘이 드셨을까. 인상을 찌부진 남편과 아들에게 밥을 해먹이던 어머니 마음이 더 찌부렸을까. 술에 취한 젊은 남자들을 보며 생각한다.
아버지는 다리 한쪽이 아팠다.
다리 한쪽이 퉁퉁 부어 풍선처럼 커다래졌고 나는 그 풍선이 원래 아버지의 것인줄로 알았다. 아버지 흉을 보시다가도 어머니, 그 다리로 돈을 벌어 오려니 얼마나 힘이 드시겠니,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내내 지껄이곤 하셨다. 아버지는 학교를 쉬는 날이 없었다.
아주 잠깐 동안, 나는 부장의 페니스가 흰 액체를 쏟아내는 걸 본 듯하고, 부장이 샤워기로 자신의 정액을 씻어내리는 걸 본 듯도 하고, 다시 한숨을 쉬며 내 어깨에 손을 얹는 걸 느낀 듯도 하고, 무척 많은 걸 의미하는, 수고했네. 라는 말을 들은 듯도 하고, 지친 듯 사우나의 문을 나서는 그 뒷모습을 본 듯도 했다.
<박민규 /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중에서
박민규님의 소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에는 너구리 광견병에 걸려 너구리로 변하는 손팀장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손팀장은 회사에서 쫒겨나고, 화자인 '나'는 친구 B와 손팀장의 이야기를 하다 너구리란 결국 "즐거움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건 <즐거움의 문제>아닐까 싶어.
즐거움의 문제?
즉. 너구리란 것은 말이야.
어려운걸.
그저, 너의 삶이 그런 시기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넌 지금 스테이지 1의 문턱에 서 있는 거야. 그래서 이 세상이 너구리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거지. 방법은 두 가지야. 너구리인 채로 도망을 다니거나, 아니면 쉽게 너구릴 포기하거나. 너의 팀장은 아마도 너구릴 숨긴 채 살아온 인간이었을 거야. 물론 힘들었을 테지.
친구 B는 너구리가 되어 떠나기로 결심을 하고, 화자인 '나'는 회사에 계속 다니기 위해 남색가인 부장의 구강성교를 도와준다.
뭐가 아직이지? 의아했으나,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비누칠이었다. 너구리는 말끔히 때를 민 내 등의 전역(全域)에 시원스레 비누칠을 먹였다. 이럴 수가. 그것은 말하자면 너무나 환상적인 플레이여서, 마치 비행기를 타고 오하이오 주의 창공을 날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아, 나는 그만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릴 뻔했지만. 결국 나라는 인간은 -그래서 울컥 뒤를 돌아보며, 겨우 이런 말이나 하는 게 고작이지만.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부장의 욕망을 대신 해결해준 화자가 홀로 욕탕에서 때를 밀고 있을 때, 사우나로 너구리가 다가와 '나'의 온몸에 비누칠을 해주며 나를 위로해주고 떠난다. 나는 너구리에게 말한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나이가 들어 돈을 벌다보니 알겠다.
내 아버지 왜 내게 공부를 하라, 자격증을 따라 엄하게 말씀 하셨었는지.
너무 힘이 들어서 더는 회계사 공부를 못하겠어요, 했을 때 아버지 본인 퉁퉁 부운 다리에 비뇨기 이상으로 소변도 잘 못보시던 분이,
왜 화를 내시며 자기는 상관 없으니 너는 계속 공부를 하라고 말씀하셨었는지.
남의 돈을 먹는 건, 남의 욕망을 대신 충족시켜 주는 일이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는 돈과 이권을 남에게 주고 욕망을 충족받는다.
나는 회사에 나가 남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
나에게 돈을 주는 남들 역시 남들의 욕망을 대신 충족시켜주는 남색가 부장과 같은 자들이다.
오늘 밤, 나에게도 박민규의 너구리가 왔던 것 처럼
나에게도 너구리가 와준다면, 나는 너구리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한다는 말은 이런게 고작이지만.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