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주일 동안 글을 써보면서 느낀 것은 글쓰기가 검도보다 더 지독하는 것이다. 분명 그랬다. 첫 번째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나눠주신 종이 위에 내 이름을 적고 내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곳, 좋아하는 사람을 적었을 때는 망설임 없이 죽 이야기를 적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굳은 피가 눌어붙어 주황색으로 변한 죽도 손잡이, 학창 시절 주구 장창 찾아가 등을 깔고 일단 눕고 보던 빈 도장. 나는 얼른 내가 왜 그것들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말을 걸고 싶어 몸이 달았다. 걷고 있는 동안에도, 잠을 자려고 누운 순간에도 쓰고 싶은 말들이 맴돌아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런데 글은 써지지 않았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머릿속에 쓰고 싶은 말들이 폭발할 때면 깜짝 놀라 '대단한 게 나오겠구나' 했는데 써 놓고 보면 다시 읽기도 싫은 문장 투성이었다.
회사와 가정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우선 머리가 아팠다. 뒷골에 뭔가 어수선한 난쟁이가 들어와 하루 종일 떠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난쟁이는 말이 많았고 글은 쓰지 못했다. 시도 때도 없는 난쟁이의 수다를 갈무리하다 보니 잠은 줄었고 입맛도 잃었다. 자꾸 줄담배만 피우다가 콜록콜록 헛구역질만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웬걸.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난쟁이는 입을 다물었다. 망할 난쟁이. 막상 차려주니 상을 걷어차네.
힘을 빼야 하는데. 힘이 왜 안 빠질까. 내가 막 검도를 시작한 초심자들에게 한껏 여유를 부리며 하는 말이 있다. 힘 빼라고.
검도를 할 때 힘을 빼야 하는 이유는 수십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안된다. 글을 쓸 때는. 글을 쓸 때도 힘을 빼야 할 것 같은데 자꾸만 어깨고 팔이고 힘이 들어갔다. 달걀 쥐듯 가볍게 죽도를 툭 쥐고 슬쩍 머리를 치고 나가듯 자판기 앞에서도 힘을 빼야 할 것 같은데 왜 힘이 빠지지 않지?
검도 시합에 나가 긴장만 하다 상대를 보지도 못하고 힘만 쓰다 나오는 격이었다. 속이 상했다.
검도도 처음 배울 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았다. 운동이 끝나면 담배를 줄창 피우며 '형, 저는 왜 안되죠?' 하고 푸념하던 것이 일상이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며 '이렇게 쳐봐야지', '이렇게 상대를 속여 봐야지' 하고 상상하지만, 다음날 칼자루를 쥐고 있는 내 모습은 전날 밤 그려봤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런데도 나는 왜 검도를 계속했을까?
"머리." 하고 소리 지르고 도장 바닥을 쿵, 차고 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내 죽도랑 상대 죽도랑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난 검도하러 가야 해." 라며 단호하게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거절하면 괜히 으쓱해지고 그랬다.
형들도 좋았다. 형들은 하나같이 촌티가 줄줄 흘렀다. 어리바리하고 수줍음이 많았지만 호구를 뒤집어쓰면 그야말로 날카롭고 엄격하게 변했다.
호되게 야단을 맞는 것은 무서웠지만 운동이 끝나면 다 함께 깔깔대며 웃고 떠드는 것이 즐거웠다.
"상대를 이기려고만 하니까 자꾸 지는 거야."라고 말하던 아리송한 형들의 선답이 좋았다. "우리는 강하다.", "검도부에 강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수십 번 되뇌며 함께 나갔던 시합에서 지고 돌아오는 날도 즐거웠다. 지더라도 우리는 함께였으니까.
술을 마시면 항상 두 눈이 붓고, 그 부운 두 눈으로 노래방엘 가면 부활의 '사랑할수록'을 부르던 형이 있었다. 돈이 없어서 맨날 운동이 끝나면 속옷도 없이 청바지를 걸치던 형이 동생들이라고 매일 술을 사줬었다. 그리고 노래방에 가면 부운 눈으로 '사랑할수록'을 불렀다.
그 형은 러시아로 유학을 갔다가 졸업하고 삼성에 들어갔다. 천상병의 시를 좋아하던 형. 대화록에 또박또박 옮겨놓던 글씨가 예쁘던 형. 나는 형이 러시아에 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길 바랬다. 형은 러시아에 물건을 파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돈을 파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가 만약 몇 백 년 전에 태어났다면 무사가 되었을까. 아마 그랬을 거라고, 아님 농사를 짓는 농군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감긴 눈으로 '사랑할수록'을 부르던 형이 그립다. 아나스타샤와 라라와 천상병을 사랑하던 형이 그립다. 형을 그리워하며 검도를 계속한다.
글쓰기도 계속하다 보면 힘 빠진 글이 하나쯤은 나오겠지.
십 년 전쯤에 글쓰기를 배우면서 한겨레 문화센터의 수필 수업에서 처음 과제로 썼던 글이네요.
처음 과제를 선생님께 드렸더니,
다음 시간에 빨간 줄이 가득한 종이 한 장을 보고 머릿속이 어지럽던 게 기억이 나네요.
- 내가 일주일 동안 글을 써보며
선생님께서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써본다라고 표현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맞는 듯했지만,
십 년이 지나 다시 생각을 해보니,
그래도 저 자리에는 '글을 써보며'라고 표현을 하는 게 어울릴 듯합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저 글을 쓰던 십 년 전에도 검도를 할 때 몸에 힘이 아주 많이 들어갔던 것 같은데,
무슨 배짱으로 검도도 계속해서 잘하게 되었으니까,
글쓰기도 계속하면 잘하게 될 거라고
배포 있게 말했었는지 ㅋ
재미있네요. 오래전에 썼던 글을 꺼내 보는 건 또 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썼던 글을 다듬어서 올려봅니다. 오랫동안 이 글을 꺼내놓고 공부하며 고쳐보고 싶었어요.
오늘까지는 다이어트를 실패하고 있네요.
내일부터는 다시 다이어트를 성공해야지요.
모두 남은 명절 행복하게 보내세요~~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