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첫 소설 <우리 시대에>를 번역하며 느낀 짧은 이야기입니다
자식을 극진히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가 어디 있을까요.(아 더러는 있죠.) 아무튼 대부분의 어머니는 자식을 극진히 사랑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극진한 사랑을 받는 자식의 입장에서 무조건 그것을 다 받을까요? 아무리 망가졌어도 그것까지는 못 받겠는 사랑들이 있죠. 어머니의 사랑은 한이 없지만, 그것을 받는 자식의 입장은 선이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His mother would have given him breakfast in bed if he had wanted it.
우리는 영어로 읽는 게 편하지 않고, 한글로 읽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인지라 번역된 내용을 믿고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아주 간단한 문장을 국내 여러 출판사들은 이상하게, 전혀 다른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언제나 오역은 있을 수 있고, 여전히 그들의 결과물을 사랑하는 독자입니다. 기존 출판사를 욕하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A출판사: 그의 어머니는 그가 원하면 침대까지 아침 식사를 날라다 주곤 했다.
B출판사: 어머니는 그가 원하면 침대로 아침식사를 가져다주었는데,
번역을 시작한 계기가 기존 출판물이었지만, 내 번역이 과연 맞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면 주요 출판사들의 글과 대조했습니다. 제가 원문을 잘못 읽은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모두가 달리 번역하고 있어 내 영어 실력이 한참 모라자다는 자조 섞인 반성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내가 무슨 근거로 그 번역자들과 출판사를 신뢰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간단한 이 문장을 여러 사전을 들여다 보고 문법을 찾아봤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맞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원하기만 했다면 그에게 아침을 침대까지 날라다 주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침대맡에 아침을 날라준 적이 없습니다. 그가 원하면 그랬을 수도 있다는 가정일 뿐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배려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일 뿐입니다. <우리 시대에>의 일곱 번째 단편 <병사의 집>에 있는 주인공 ‘해롤드’는 ‘닉’처럼 헤밍웨이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망가졌어도 그렇게까지는 아니라는 무의식이 담긴 자기 변론 같습니다. 다시 용기를 내서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사전으로.
*번역한 <우리 시대에>는 와디즈에서 펀딩으로 2023.3.20까지만 판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