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보호자인 나를 공격하려는 상황을 개선하려면 우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알아야 했다. 당시 절박한 마음으로 아마존에서 고양이 행동 관련 책을 여러 권 구매했는데, 그중 Twisted Whiskers라는 책을 통해 먼지의 공격 행동 유형이 Redirected aggression(방향 전환 공격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방향 전환 공격은 고양이의 불안감에서 촉발되는 행동인데, 원인 제공자가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을 때, 공격의 방향이 간접적인 원인 제공자에게 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극도로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공격이었던 것.
사고 당시, 아이패드로 재생한 유튜브 영상의 고양이 비명 소리는 공격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른 고양이는 먼지의 손에 닿을 수도 없고 실재하지도 않았다. 결국,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는 고양이를 먼지의 영역으로 초대한(?) 나에게로 공격의 방향이 틀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사고 전에도 TV나 스마트폰, 태블릿 PC을 통해 고양이 영상이 재생된 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그 순간, 그 소리에 먼지가 극도로 분노했다는 것은,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시간 동안 먼지의 마음이 불안감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말하자면 유튜브는 트리거(trigger)였고 진짜 원인은 과거부터 쭉 이어져 왔던 것. 그렇다면 어떤 상황들이 먼지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던 걸까.
나로 인해 금이 가기 시작한 너의 우주
#1. 잦은 이사 2017년도 사고 전까지 5살이던 먼지가 경험한 이사는 총 6번이었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에게 이사는 환경 변화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게다가 나는 이사 후 먼지가 새 집에 적응할 수 있게 세심하게 배려해주지 않았다. 왜냐면 먼지는 수더분한 개냥이여서 괜찮을 거라고 내 멋대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잦은 이사로 인한 환경 변화로 먼지가 느끼는 영역 불안감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지만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2. 나의 부재 2015년 삼성 공채 합격 후 신입 사원 입사 교육 과정(svp)으로 약 한 달간 집을 비웠다. 먼지와 떨어지는 게 걱정됐지만, 당분간 부모님의 케어를 받을 것이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가족이라는 세계도 있고 회사라는 세계, 친구라는 세계도 있고 학교라는 세계도 있다. 내가 존재하는 세계는 다양하다. 하지만 집에서 나와 단 둘이 살아왔던 먼지의 온 세계는 나뿐이었다. 먼지의 전부였던 세계가 갑자기 사라졌던 것이다.
#3. 허술한 합사 2015년 여름에 나는 둘째 고양이 보리를 입양했다. 어릴 때부터 동물 병원의 인싸 고양이였던 먼지는 새로운 고양이도 잘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합사 과정도 꼼꼼하지 못했다. 먼지와 보리의 체취가 묻은 수건을 여러 번에 걸쳐서 서로 냄새 맡게 해 주고 그때마다 간식을 주는 것이 내가 한 합사의 전부였다.
#4. 잘못된 사냥놀이 사냥 놀이가 필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먼지는 사냥 놀이에 잘 반응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나면 그루밍을 하고 누워서 잠을 자려했다. 장난감을 새로 사면 그때뿐. 어서 일어나서 움직이자, 운동하자 재촉해 봐도 시큰둥했다. 그래서 먼지는 사냥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고가 난 후에야 내가 먼지에게 해준 사냥놀이가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너의 잘못이 아닌 나의 잘못
우리는 보통 반려 동물이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반려 동물의 행동을 교정하려고 한다. 먼지의 공격 직후, 나 역시 어떻게 하면 먼지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고양이에 대해서 다시 공부하고 배우면서 교정의 대상은 먼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먼지가 공격성을 보였던 것은 불안감에서 촉발된 행동이었다. 그리고 평화롭기만 하던 먼지의 세계를 뒤흔들고 그곳을 불안감으로 가득 채워 넣은 범인은 바로 나였다. 내가 문제의 원인이지먼지가 원인이 아니었다.
결국, 먼지의 행동 교정이 아닌 나의 행동 교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먼지를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