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 안에서 사냥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고양이가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의 시각에서는 별것 아닌 일- 이사, 새로운 동물, 새로운 가족, 큰 소음, 질병 등 - 들이 고양이에게 불안감을 초래하는 이유. 그것은 야생의고양이는 포식자(predator)인 동시에 누군가의 먹잇감(prey)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맹수, 포식자인 고양이
즉, 가구의 위치 조정부터 새로운 가족의 결합, 이사 등. 사람의 눈에는 사소하게 보이는 변화들이 포식자였던 고양이를 먹잇감의 위치로 강등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소파의 위치 변동으로 고양이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사냥 전략에 타격이 생길 수도 있고, 결혼으로 함께 살게 된 배우자를 위협적인 포식자로 바라볼 수도 있다.
고양이가 포식자로서 구축해 놓은 세계의 변화로 고양이는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불안감으로 인해 위축되고, 위축되니까 자신감을 잃고, 결국 자신감을 잃으니 더더욱 당당한 포식자로서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계속해서 스트레스가 쌓이는 테크트리를 타게 된다.
불안감을 느끼는 고양이는 은둔묘로 살아가기도 한다.
자신감 결여로 불안감을 느끼는 고양이는 먼지가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예민하게 공격적인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보호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서 하루 종일 은둔하기도 한다. 어떤 고양이들은 보호자와의 유대 관계 형성을 거부하며 관상묘 - 절대로 스킨십을 할 수 없어서 같이 살지만 바라만 봐야 하는 고양이 - 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고양이 사냥놀이, Play Therapy
미국에서는 고양이의 사냥놀이를 Play Therapy라고 지칭할 정도로 고양이의 다양한 문제 행동을 해결하는 솔루션으로 사용한다. '포식자'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고양이의 영역 즉, 환경을 재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양이가 매일 규칙적으로 '제대로 된 사냥'을 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포식자로서의 자신감은 스스로가 포식자임을 확인할 때 충전된다는 지극히 자명한 논리.
Play Therapy라고 불릴만큼 고양이의 사냥놀이는 개의 산책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루틴이다.
먼지가 나를 공격하기 전, 사냥 놀이가 중요하다는 사실 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릴 때는 열심히 하던 사냥놀이를, 성묘가 되니 시큰둥해졌다. 그래서 나는 먼지가 사냥놀이를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혈사태 발생 후에 다시 공부를 해보니 나의 사냥놀이가 엉터리였음을 알게 됐다.즉, 먼지가 포식자로서의 자신감을 충전할 수 있는 사냥 놀이가 엉망이었던 것.
밥 먹고 운동하자!
사람의 시각에서 나는 사냥 놀이를 '운동'으로 접근했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운동쯤으로 사냥놀이를 이해했고 그래서,
'역시. 뭐든 밥심으로 해야지'
라는 지극히 사람 중심적인 생각에서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난 후에 사냥놀이를 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잘못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고양이에게 사냥은 사람의 운동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것. 문명화된 사회에 사는 인간은 더 이상 수렵 채집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고 책상이나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수렵 채집 활동 시대 때의 움직임을 '운동'으로 대신한다.
고양이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지만 문명화되지 않은 동물이다. 여전히 야생의 습성이 남아있다. 즉, 밥을 먹고 운동을 하려고 사냥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을 해서 밥을 먹어야 하는동물이다.
(밥을 먹고 난 후의 사냥놀이와 배가 고플 때 하는 사냥놀이의 집중도와 텐션은 천지 차이다)
나의 무지함으로 오랫동안 사냥 놀이를 하지 못했던 먼지.
이에 대한 이해 없이 나는 부끄럽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먼지에게 제대로 된 사냥 놀이를 해주지 않았다. 먼지가 사냥놀이에 반응하지 않았던 첫 번째 이유는 사냥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등 따시고 배부른데 굳이 사냥을 할 이유가 없었던 거다. 나의 무지함으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불안감에 짓눌려 스트레스에 허덕였을 먼지에게 너무나,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