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개를 키우는 집을 참 부러워했었다. (나는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개를 키울 형편이 못됐고 그래서 개를 키우는 친구를 만나면 항상 귀염둥이가 잘 있는지, 슬쩍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친구들 중 키우던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함께한 집은 내 기억에는 딱 한 친구 밖에 없었다. 안부를 묻다 보면 어느 순간 늘 돌아오는 답변이 있었다.
"아, 우리 집 해피, 시골 할머니 댁으로 보냈어." "지난주에 순심이 시골로 갔거든. 공기 좋은 곳에서 살라고."
유기와 파양의 또 다른 이름, 시골
그 당시에는 나도 그 친구도 시골로 개를 보내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진짜 시골에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좋은데 보냈다'는 의례적인 표현을 시골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곤 했으니까.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유기와 파양에 대해서 관대했다. 털이 너무 날려서, 냄새가 나서, 병원비가 많이 들어서, 케어하기가 귀찮아서 등등. 개 혹은 고양이로 인해 시간과 돈이 많이 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책임을 '자연'에게 바통 터치했다. 돈 쓰고 시간 쓸 바에, 아름다운 자연의 품인 '시골'로 돌려보내는 것을 오히려 동물에게 자유를 선사한 지혜로운 결단쯤으로 내비쳐졌다.
책임의 의미
나의 고양이 먼지가 나를 죽일 듯이 공격하고 그 사건으로 병원의 안락사 처방을 받으면서, 우리 사회는 '시골'로 포장하던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느끼게 됐다.
특히나 책임을 그만둘 것을 종용하는 사람이 나보다 사회적인 지위가 높거나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이거나 가까운 가족일 때 우리는 유기와 파양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나 역시 먼지를 안락사하라는 둥 파양 하라는 둥, 수많은 '조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2017년도의 먼지.
나는 먼지의 공격 당시, 이제 막 회사에 취업한 신입 사원이었고,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한 광고 대행사에 다니고 있었다. 먼지를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필요한 돈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하지만 안락사든 파양이든 그 어떤 것도 나의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내가 사업 실패로 좌절감에 허우적거릴 때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존재가 먼지였고, 먼지는 애완 고양이가 아닌 나의 '반려' 고양이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옵션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절실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구글 검색을 하고, 필요한 책들을 아마존 - 2017년 사건 당시 한국에는 고양이라는 동물의 습성, 심리, 행동 분석과 관련된 전문 도서들이 없었다 - 에서 구입했다. 고양이라는 동물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유기와 파양이라는 사회의 공격으로부터 먼지를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서, 시간과 돈으로 만든 방패가 아닌 지식과 배움으로 완성한 방패를 쌓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