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에서 반려가 된 순간.

고양이를 안락사할 수 없던 이유 2.

by 김집사



오래된 이야기


나는 대학 졸업 후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친구들과 에듀 테크 스타트업을 했었다. 의기투합해서 책도 출판하고, 웹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했었다.


창업 당시 동료들과 함께 집필했던 책


안 먹고 안 입고 안 자고 안 놀고, 2년 넘게 고생을 다가 마침내 초기 매출로 시장성 검증에 성공했다. 그 후 몇 달을 엎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가 어렵게 VC와 seed 투자 유치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최종적으로 투자 유치가 결정됐을 때, 삼성역에서 친구들과 환호성을 질렀었다.

투자 유치 성공이라는 기분에 한껏 취해 텀시트 작성 준비를 하고 있던 때. 갑자기 담당 심사역이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며 우리를 불렀다.

"정말 죄송하지만 약속드렸던 투자는 진행할 수 없게 됐습니다."
"네? 갑자기요, 왜죠?"


연신 얼굴을 붉히며 미안해하던 심사역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줬다. 이사회에서는 모두 오케이를 했는데, 최종 의사 결정을 가지신 회장님께서 투자를 거부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라는 것.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투자를 거절하셨어요." "제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는 건지.."


첫 번째 이유는 에듀 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하는데 대표자인 내가 프로그래머가 아니라는 점, 두 번째는 내가 여성이라는 점.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투자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혼자였던 순간, 함께해 준 너.


동료들에게는 회장님께서 보는 눈이 없으시네, 하하하. 하며 쿨하게 털어버리자고 했지만 정작 내 속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게다가 여성인데. 바꿀 수 없는 것을 지적받았을 때의 그 무력함이란. 하지만 내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실패의 원인은 나에게 있었고, 나로 인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은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고민의 짐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부모님께는 물론, 친구들에게도 속상한 마음을 토로할 수 없었다. 말하더라도 어차피 지금까지의 개발 과정과 IR을 준비했던 시간들, 그리고 투자 유치 실패의 상황을 다 이해하긴 힘들 테니까. 무엇보다도 자존심도 상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생을 했는데 결과가, 고작 이건가. 친구들은 다들 취업해서 잘만 살아가는데 나는 왜 다시 처음 시작 지점으로 다시 돌아왔을까.

지금 글을 쓰는 시점에 돌이켜보면 슬퍼할 일도 괴로워할 일도 아닌, 살다 보면 겪게 되는 정말 별것 아닌 일이었는데. 사회 경험이 없던 그 당시의 나는 나약했고, 나약하지 않은 척, 했다. 나만의 섬 안에서 실패감과 좌절감, 무력감에 한참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을 때, 그때. 먼지가 내게 다가왔다.

'쿵'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나에게 먼지가 다가와 박치기를 했다. 자기 얼굴로 있는 힘껏 내 얼굴을 밀어 올렸다.

'매-헤'


궁상맞게 눈에서 짜낸 즙을, 먼지는 작고 보드라운 앞발로 톡톡 두드렸다. 마치 그만 울라는 듯이.

"알았어 그만할게."
"먀-앙. 핥핥핥핥."


자기를 향해 배시시 웃자 그제야 안심이 되었던 걸까. 다시 내 얼굴에 박치기를 하더니 집사의 짭조름한 즙을 연신 핥아먹었다.


그날, 나는 지나가버린 그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속상해하지 않기로 했다. 내 고양이 먼지와 함께 살아갈 오늘 하루에 집중하기로 했다. 애완 고양이었던 먼지가 평생의 반려 고양이가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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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