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지, 동물이 먼저냐?

고양이를 안락사할 수 없었던 이유 1.

by 김집사



공공의 적이 된 고양이


머리 봉합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약 한 달 동안 모자를 쓰고 회사를 다녔다. 그나마 5월이라(2017년도) 날씨가 덥지 않아 견딜만했는데, 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사람들의 '걱정'이었다.



"그런 애를 어떻게 데리고 살아, 빨리 누구를 주든가 어디 뭐 풀어주던가 해."

"무서워서 어떻게 키워. 그냥 산이나 들 같은 데다가 풀어주면 좋지 않을까?"

"야, 사람이 먼저지 고양이가 먼저냐? 그냥 갖다 버리는 게 상책이야."


고양이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진심 어린 걱정'이라는 얼굴 뒤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동물에 대한 인간 사회의 날카로운 양면성이었다.


모든 '반려' 동물 문제 행동의 원인은 '반려인'에게 있다. 하지만 반려 동물이 사람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 우리는 과거 '애완'의 시각을 다시 끄집어낸다. 더 이상 기쁨을 주는 존재가 아니기에 물건처럼 버리거나(유기) 생명권을 박탈(안락사)한다.


특히 나보다 사회적인 지위가 높거나 '이 바닥 전문가'로 통하는 사람이 안락사를 하라고 이야기를 하면, 마음 한편이 조금 꺼림칙해도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럼 그렇지, 역시. 사람이 먼저야.






안락사를 할 수 없었던 이유


동물병원에서는 먼지의 공격성을 이유로 안락사를 권유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먼지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잘못의 책임은 반려인인 나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지만 동물은 그렇지 않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우리의 기준에서 '잘못된 것'일지라도 그 뒤엔 나쁜 의도가 아닌 본능이 있을 뿐이다. 동물 본연의 습성을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 결과가 단지 '잘못된' 행동으로 표출될 뿐이다.


먼지는 꾸러기 시절에도 순수했고, 나를 공격했던 그 시절에도 항상 순수했다.




두 번째, 동물의 생살여탈권이 사람에게 있다는 전제에 동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안락사의 근거는, '동물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는 질문에서 사람이 먼저이기 때문에 동물의 생명권을 박탈해도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 사람은 동물계의 영장목 사람과의 사람속에 속하는 사피엔스라는 종이다. 즉, 사람 역시 동물이다. 따라서 동물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는 질문은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질문이 잘못됐기 때문에 답 역시 있을 수가 없다.

동물을 고양이라 치환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생사의 중함을 판단하는 권한이 인간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존엄하니까? 존엄하다는 것의 의미는 윤리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윤리적인 권리가 사피엔스에게만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나?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한 존재니까?


유발 하라리(저) 사피엔스에는 인간이 지구상에서 우월한 존재가 된데에는 우연과 진화의 산물로써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고 믿는 능력을 가진것에서 출발했다고 서술한다.


사실 46억 년의 지구 역사에서 인간은 오랫동안 지구에서 별 볼 일 없는 동물이었다. 열매를 주워 먹고 작은 동물들을 사냥해서 먹는 신체적인 능력치는 그저 그런 동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진화와 우연의 산물로 인해 인간은 언어를 통해 허구의 개념을 창조하고 믿는 능력을 가지게 됐고, 그러한 믿음에서 다른 동물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거대한 사회조직력을 갖추게 됐다.


그렇다면, 언어를 통해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고 믿는 이 능력이 다른 동물들이 가진 다양한 능력들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월함의 기준이 뭐지?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채식에 관심을 가지게 됐지만, 사실 완벽한 비건은 실천을 못하고 있다는 점을 솔직하게 밝혀둔다


도무지 답을 내리기 어려운 철학적인 질문 앞에서 끝끝내 안락사를 선택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keyword
화,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