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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iusduck Apr 10. 2020

첼시_다섯 남자가 만든 최강 버거

파이브 가이즈 (Five Guys)

미국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올릴만한 건 그다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피자와 버거, 스테이크 정도를 떠올리지 않을까. 그런데 흔하디 흔한 그 세 가지 음식을 뉴욕에 온 지 한 달이 넘어가도록 나는 먹지 않았다. 일부러 피했던 건 아니다. 다만 피자는 뉴욕 피자보다 얇은 도우를 바삭하게 구운 이탈리아식 피자가 좋았고 스테이크는 비쌌기 때문인데... 버거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뉴욕에 온 뒤 한참 동안이나 햄버거집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상상 속 미국 도시엔 햄버거 가게가 모든 음식점의 반쯤 되어서 집밥 먹듯 자주 햄버거를 먹을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정신 차리고 잘 둘러보면 햄버거 가게는 심심치 않게 있긴 했지만 가보고 싶은 음식점은 너무 많았고, 혼이 몸 밖으로 반쯤 나간 상태에서 도시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던 나에게 햄버거 따위는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었나보다.

하지만 햄버거는 어찌 됐든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니 잘하는 집들이 많을 터였다. 소규모 동네 맛집은 차치하고 우선 미국에서 삼대 버거라 불리는 거대 브랜드가 세 개 있는데,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쉐이크쉑과 LA를 중심으로 서부를 장악한 인앤아웃, 그리고 마지막이 미국 전역을 넘어 해외까지 매장을 늘려나가고 있는 파이즈 가이즈다.

오늘은 이 다섯 남자라는 브랜드의 햄버거 가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파이브 가이즈의 공식 명칭은 '파이브 가이즈 버거즈 앤 프라이즈' (Five Guys Burgers and Fries)이지만 그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고 다들 파이브 가이즈라고 줄여 부른다. 기업 명칭도 파이브 가이즈인데 굳이 공식 명칭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증권 거래소에서 일하던 머렐 씨는 본인은 미시간 대학을 나온 인텔리이면서 독특하게도 아들들이 대학에 진학하기보다는 사업을 하기 원했다고 한다. 많고 많은 사업 아이템 중 햄버거를 고르게 된 건 "이발을 잘하거나 술을 팔거나 햄버거를 만들면 돈을 벌 수 있단다."라고 한 어머니의 조언 덕이라고.

그렇게 머렐 씨는 증권 거래소 일을 그만두고 네 아들들과 함께 두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밑천 삼아 파이브 가이즈라는 이름으로 1986년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작은 첫 번째 가게를 오픈하게 된다.

아버지와 네 아들들은 맛있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육즙을 잘 가둔 패티를 땅콩기름을 써서 더욱 고소하게 굽고, 예민하게 고르고 찾아낸 햄버거 빵을 한 군데서만 공수했다. 햄버거 빵을 납품받던 빵집이 문을 닫자 그 빵을 만들던 제빵사를 수소문한 뒤 재취업한 곳에 막내아들을 취업시켜 비법을 알아내는 노력까지 하면서 본인들이 만들고자 한 최고의 햄버거를 고수했다.

하지만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이드에 불과한 감자튀김에 대한 열정도 만만치 않은데, 아이다호 북부에서 더디게 자라는 생감자를 두툼하게 잘라 땅콩기름으로 고소하게 튀겨낸다. 이 감자튀김은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슴슴한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좀 짜다고 느낄 정도의 짭짤한 맛이긴 하지만 포슬포슬하고 감자 향은 진하면서 표면은 아주 바삭하다.


그런 노력의 결과 전 세계 1500개 이상의 지점을 가진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지점마다 맛의 편차가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들의 노력에 이견이 없는 맛있는 햄버거를 먹었지만, 질척한 버거 번에 간이 제대로 안된 패티 때문에 형편없는 햄버거를 먹었다고 투덜거린 친구가 있었다. 비단 친구뿐 아니라 이에 관해서는 SNS상에 많은 이견이 있다. 이건 조리시간을 매장의 조리자에게 맡긴 파이브 가이즈의 운영전략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장 맛있게 익는 순간은 타이머보다 조리자가 더 잘 안다는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지점에 관계없이 동일한 퀄리티의 음식을 공급해야 하는 프랜차이즈의 성격을 생각하면 위험한 전략 같아 보인다.


나는 뉴욕에 도착해서 한 달쯤 지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1월 중순에 팬스테이션에서 가까운 파이브 가이즈를 찾아갔다. 매장 분위기는 흰색과 빨간색 단 두 가지 컬러로 심플 발랄했다. 매장 관계자들이 한 말들로 보이는 문구 같은 것이 잔뜩 붙어있어 어지러운 외부와는 반대로 어딘지 모르게 휑한 내부에는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사람들이 2/3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식사 중이었다. 매장 한가운데의 적지 않은 자리는 커다란 땅콩 포대자루들이 차지하고 있다. 마음껏 가져다 먹으라며 서비스 차원으로 놓은 것이기도 하지만 땅콩기름만을 사용한다는 일종의 광고 차원으로 진열해 둔 것이라고 한다. 퍼석하고 짭짤해서 많이 먹어지진 않아도 독특한 마케팅이라 사람들의 입에는 많이 오르내리는 편이다.

메뉴는 심플하다면 심플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하다.

그냥 햄버거와 치즈버거, 베이컨 버거 중 하나를 고르고 사이즈를 선택한 후 토핑을 고르면 되는데, 토핑은 Everything(토핑 전부), All the way(토핑 메뉴 중 검은색 글씨로만 이루어진 것), 또는 일일이 고를 수도 있다.

나는 패티가 한 장 들어가는 리틀 버거 중에 치즈버거를 택했다. 토핑을 넣고 빼는 건 귀찮으니 All the way, 평범한 걸로 몽땅 넣어달라고 했다. 이것까지만 먹어도 사실은 충분하지만 이곳에서 유명한 건 프렌치 프라이므로 그것도 작은 걸로 하나 주문했다. 그리고 음료.

미국에서 먹는 햄버거는 유독 포만감이 심하다. 그건 크기와도 관계가 있긴 하겠지만 전체적인 기름감 때문에 작아도 배부르긴 마찬가지다. 패티가 두장씩 들어가는 햄버거와 산더미 같은 프렌치프라이를 다 먹어치우는 사람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오픈 주방에는 꼭 다섯 사람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분담하는 일의 경계가 모호해 보였지만 나름대로의 시스템이 있어서 주문하는 사람이 많아도 많이 기다리지 않고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영어가 능숙하질 않아 번호표를 손에 꼭 쥐고 미간을 찌푸린 채 주방을 노려보던 내가 우스웠는지 푸근해 보이는 아줌마가 경쾌한 목소리로 맛있게 먹으라며 방금 구운 햄버거를 포일에 말아 내어 주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빈 창가 자리에 앉아 리틀 버거라는 이름이 무색하도록 커다란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따뜻한 육즙에서 느껴지는 소고기 패티의 풍미가 살짝 녹은 치즈와 섞이면서 감칠맛과 함께 입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와, 이것이 본토의 햄버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삭한 레타스, 구운 버섯과 피클까지 밸런스가 좋다. 감자의 폭향과 함께 짭조름하고 바삭한 맛이 일품인 프렌치프라이 역시 배가 부른데도 손을 멈출 수 없게 하는 마성의 맛이다.

창밖을 내다보며 아무 생각 없이 프렌치프라이를 집어먹고 있는데 품 안에 큰 비닐봉지 하나를 안고 느릿하게 길을 걷던 젊은 흑인 노숙인이 내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보통은 힐끗 보고 지나가게 마련인데 그 청년은 한동안 굉장히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정확히 말하면 내가 먹고 있던 프렌치프라이를 바라보았다. 세상 그것보다 더 맛있는 음식은 없을 것 같다는 얼굴이다. 자기도 모르게 발을 멈추었던 듯싶다. 프렌치프라이에서 내 쪽으로 시선이 옮겨진 순간 그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내게 미안하다는 듯 두 손바닥을 내보이고는 가던 길을 다시 천천히 갔다. 프렌치프라이가 목구멍에 걸리는 느낌이다. 종이컵에 담겨있던걸 들고 가게 밖을 나가 보았지만 노숙인은 코너를 돌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파이브 가이즈의 맛있는 프렌치프라이는 오후 내내 나의 목구멍에 걸려 있었다.




위치 : 343 7th Ave, New York, NY 10001

전화 : 212-564-9804

오픈 : (전일) 11:00-22:00

홈피 : www.fiveguy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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