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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erte Sep 19. 2024

D+20. Don't you wanna judge me

여기서의 시간을 생각하면,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침 식사를 함께 했는데 금세 저녁이 되어서 "내일 봬요!"라며 퇴근하는 순간, 손님이 두고 간 딱새우 껍질의 고약한 냄새도 사라지고, "여기에서의 생활도 이제 11일 남았네요!" 하며 장난쳤던 순간까지, 모든 게 시간의 흐름 속에 녹아 있는 것 같다. 그 흐름을 따라가는 내 마음은 누가 자꾸 꼬집는 것처럼 아프다.


남은 시간 동안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이곳으로 찾아오기로 했다. 이번 주엔 S가 오고, 그다음 주엔 Hak과 Jin. 친구들에게 "목요일에 올 수 없겠냐"며 연차를 쓸 만한 이유가 충분한데 올 수 있음 와라고 쿨 한척하며 슬쩍 던졌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그들의 바짓자락을 몇 번이나 붙잡았다.

굳이 목요일인 이유는 목요일마다 있는 <목요 러닝 클럽>에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요일엔 아침 일찍 같이 출근해, 오피스의 커피바 앞 테이블에서 방을 나서기 전 주섬주섬 가져온 아침을 같이 먹고 그동안 '진지하다', '노잼', '너무 감성적'이라는 말들에 묻혀하지 못했던, 그러나 내겐 간절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다.


제주에 온 이후부터 내가 보내고 있는 하루들이 너무 좋아서 위로받았던 시간들을 내 친구들과도 나누고 싶었던 거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 좋은 대화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제주에 오기 전에 SB와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그냥 내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 사람한테 어디까지 말해도 될까? 혹시 이걸 듣고 나를 이러저러하게 판단하면 어쩌지? 그런 걱정 때문에 미쳐버리겠어.""그 정도로?" "응. 사람은 완벽할 수 없는데, 내가 뭔가 하나라도 잘못해서 나쁜 인상을 주면 어떡하지?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으로 기억되면 어떡하지?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나는 아무한테도 내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어."

갑갑하고 지긋지긋했다. 안 그래도 화장을 하고 앉아있는데 거기에 몇 겹이나 마스크팩을 하고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SB와 이런 대화를 하고 난 이후에도 내가 괜히 너무 많은 걸 말했나 얼떨떨함과 찝찝함. 세상 못 믿을 게 없는 강아지처럼 먼저 배를 깠다는 민망함, 후회.. 등을 했으니까.


제주에서 JW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약간의 경계태세였다. '난 여기 일을 하러 온 거고, 내가 심적으로 아픈 상태임을 들켜선 안 돼'.

JW님의 첫마디에 무너져 내렸지만..

"어떻게 지원하시고 오시게 되신 거예요?"

"아 제가 사실은..."

후회할 틈도 없이 JW님은 차분하고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진정성 있고, 어리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과 생각들로 가꾸어진 이해심, 그러면서도 자신이 전달해야 할 바와 책임에 대해서는 똑 부러지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이어서 만나게 되는 W님, Jin, Hong,.... 다들 내가 마음을 닫을 새도 없이 따뜻함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게 더 이상 두렵지 않고, 누구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내 친구들이 그 소중한 사람들과 이곳에서의 시간을 함께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간절한 바람이다.


그런 마음을 돌아보니 내가 많이 괜찮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영상

Carrie: Don't you wanna judge me, just a little bit?

Samantha: Not my style

(단, 이 에피소드의 내용은 X. 단지 짧은 이 두 대화만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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