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라 사계의 오피스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다.
여기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추석 연휴 동안 제주도 동쪽으로 넘어왔다.
제주버스터미널에 가까워지는 길에는 올리브영이나 버거킹 같은 체인점들이 보인다. J에게 ‘엽떡 먹고 싶다’고 보냈다.
J: 제주 시내에 가서 엽떡 먹고 필요한 것도 좀 사가. 그런데 H, 너 병원(정신건강의학과)도 시내에서 찾아간다고 했었는데, 제주 가서도 안 갔네.
안 갔는데도 많이 건강해졌어.
답은 약이 아니야.
그러게…라고 중얼거리면서 그을린 내 팔을 쓸어내리며, ‘사계에서 제일 가깝고 예약 시스템이 구비된 정신건강의학과’ 같은 것을 더 이상 검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J는 이어서 말한다.
J: 잉, 제주 엽떡 14일부터 18일까지 휴무네.
…
제주 사람들은 뭐가 중요한지 잘 아는 사람들 같아.
그리고… 너가 계속 건강했으면 좋겠어.
나도 내가 계속 건강했으면 좋겠다.
지난 1년간 텅 비어 있는 평일의 기억. 진리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믿게 되었던 거창하지만 숨 막혔던 조언과 인생의 흐름, 그리고 뭔진 몰라도 그게 맞다고 하니 그에 쓸려가기를 허락한 하루. 그래서 나도 ‘대단한 무언가’에 도달하길 소망했던 시간들.
제대로 고꾸라져야 하늘이 보인다고 했던가. 이제야 조금씩 혼란스러웠던 것들이 점차 명확해지고, 새로운 물음표들이 생긴다. 똑같이 ‘뭔지 모르겠음’ 상태이지만, 이전의 ‘뿌연 안개’는 이제 ‘하얀 도화지’로 바뀌었다는 것.
표현이 부족해서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어떤 커다란 ‘하나의 목표’가 꼭대기에 있고, 심지어 뭔지도 모르겠는 뿌연 안갯속을 모두가 그걸 향해 열심히 가고 있는 세상. 아래에 있을수록 앞선 누군가의 그림자의 그림자의… 그림자 아래에 있는 불안하고 두려운 세상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엎어져 보니 평평한 들판이 있고, 하늘을 보니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목표가 있다. 각자가 저마다의 북극성을 바라보고, 스스로 그 북극성을 하늘에 띄울 수도, 간척을 통해 새로운 들판의 한 면적을 만들 수도 있는 세상이 있다.
H: 오늘 오피스에서 <New Workers>라는 책을 읽었는데, 소개글이 이거였어.
대학생 때 ‘논문’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세상의 지식을 모두 합친 크기의 바운더리 혹은 경계가 있다면, 논문은 그 바운더리를 있는 힘껏 밀어내 아주 작은 돌기를 만들어 세상의 지식을 그 면적만큼 늘리는 작업이라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 하는 동안 자기 분야에서 Pushing Boundary, 경계를 밀어내는 사람들을 가끔 만날 수 있었다. O-PEACE를 이용하는 분 중에도 그런 분들이 종종 계셨다. 일을 잘 해내는 수준을 넘어 자기 분야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어디의 어떤 직군의 누구도 아닌, 내가 있고, 무엇이든 하는 게 있다면 그걸 잘 해내고, 그게 나에게 업이 되어주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내 영역을 넓혀 나가는… 그렇게 살고 싶어.
J: 나도 그래. 내가 나로 멋지고 싶지, 어디의 누군가로 멋지고 싶지는 않아.
요즘은 듄의 프레멘 족이 걷는 것처럼 이리저리 춤추는 듯 탐색하며 살아간다. 오피스의 스텝이었다가 근무 시간엔 개발을 열심히 했다가, 퇴근 후엔 글을 쓰고, 패션 브랜드 런칭을 준비하고, 콘텐츠 마케터 수업을 듣고…
내딛는 한 걸음, 살아가는 하루가 내게 남아서 나를 살게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책
<뉴워커스 vol1_에디터와 기획자> - 오피스제주 편집부 저
노래
다시 - 이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