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에게.
안녕. 우리는 각자 사는 곳이 바다 건너에 있어서 1년에 한두 번이나 겨우 한-두 번 볼까 말까 하잖아.
그만큼 오랜만에 만난 넌데 마치 어제, 아니 오늘 오전에 만난 것처럼 여전한 모습으로, 웃음으로 날 편안하게 맞아주더라 ㅎㅎ
네 차에 타자마자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며 선물로 준 게 이슬아 작가의 <끝내주는 인생>이었잖아.
넌 모르겠지 내가 이슬아 작가님이 첫 메일링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부터 쭉 구독해 오던 구독자였다는 걸
이런 작은 우연들이 모일 때마다 너무나 반대인 우리가 지금까지, 아니 평생 친구가 된(될) 이유가 여기에 있겠다고 생각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무도 없는 오피스로 내려갔어. 오늘 아주 뒤집어지게 끝내주는 하루를 보내고 싶어서 <끝내주는 인생>의 마지막 꼭지인 ‘끝내주는 인생’을 가장 먼저 폈는데 첫 문장이 이거였어.
‘이따금 다른 일로 돈을 버는 상상을 한다.’
어제 우리가 나눈 대화의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였지? 서울에서 아파오던 마음이 이젠 육체까지 집어삼켰을 때서야 너무 늦게 생각해 버린 이 주제는 여기 제주에 와서 매일같이 생각하게 된 주제가 됐어.
나는 어떤 직업이 나를 정의해 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나’와 ‘내가 요즘하고 있는 일’이 있는 상태이고 싶어.
그래서 내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종종 ‘이따금 다른 일로 돈을 버는 상상’으로 빠지곤 해.
삶과 일의 분리가 명확하다가 점차 일이란 존재가 없어지길 원하는 너와 나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모든 게 업이 될 수 있길 바라는 정체성과 업을 분리하지 않는 내가 각자의 생각을 말로 풀어내다 보면
결국 다시 돌아오는 건, ‘어디에도 없는 건 어디에나 있는 것과 같고, 어디에나 있는 건 어디에도 없는 것과 같다’는 혼란스러운 결론인 것 같아.
평행 세계의 G와 H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이렇게 살고 있어야, 어떻게 돈을 벌고 있어야 잘 사는 거네 하며 가볍게 말하기 전에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정할 것, 언제나 다정할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는데 나는 그게 우리의 대화의 결말이었다는 게 너무 좋았어.
저 사람이 지나온 밤, 혹은 나와 마주하기 전까지 어떤 순간들을 겪었는지, 애타는 마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뱉어지는 말들, 그런 것들에 한껏 쿨한 척 해야하는 시간들에서
그럼에도 나는 다정해야지라고 여기서 만난 수많은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고 너와 했던 대화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네가 나한테 '내가 느낀 뭔가는 뭐뭐였어'라고 말할 때마다 그게 결국엔 전부 사실이었을 만큼 너는 영리하고, 예리하니까 (심지어 이미 다정하니까!)
'다음에 H를 만나면 허허 웃으면서 힘든 거 다 지나갔다고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니었더라~ 할거 같다'는 네 말도 믿어보겠어.
아 그리고 우리 헤어질 때 서로 약속했던 다짐들 있지? 잘해보고 있자.
노래
책
영화
Be Kind scene |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