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화 남겨진 커피잔 하나, 그리고 그 뒷이야기

나를 둘러 산 위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by 마음을 잇는 오쌤
- 연재 일정 변경 안내드립니다 -
"당신의 자리는, 안녕하십니까?"를 매주 월요일마다 찾아뵈었는데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앞으로는 금요일에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조금 다른 리듬으로 찾아뵙게 된 점 너른 양해 부탁드리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새로운 등장인물

성 과장 (LEVEL 2)

“순둥이 눈빛에 숨겨진 야망러.”

말투는 유하고 미소는 다정하지만, 속은 야무지게 계산된 인맥왕.

지방대 탈출 스토리부터 엘리베이터 인싸까지, 사람 끌어당기는 마성의 팀장.


구 과장 (LEVEL 0)

“감각이 먼저고, 감성으로 끝난다.”

뼛속까지 디자이너. 조화로운 리더십에 천사 같은 배려.

하지만 실망하면? 조용히 손 놔버리는 무언의 압박.

말없이 무서운 사람, 진짜 카리스마.





모두가 알고 있던 시나리오

지난 신제품 제안에서 직장생활에 쓰디쓴 경험을 하고 순응하던 어느 날



평소처럼 툭툭 내 뒤통수를 치던 그분이, 어느 날 조용히 짐을 챙겨 사라졌다.

인사도 없었다.

그냥, 책상 위에 있던 커피잔 하나 남기고. 사라졌다.


처음엔 얼떨떨했다.

"저분, 평소엔 욱하긴 해도 그래도 팀장인데... 왜 이렇게 쉽게 보낼 수 있지?"

겉으론 ‘아, 뭐 일반적인 인사이동인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속은 달랐다.


나를 뽑아줬던 사람.

처음으로 날 인정해 준 사람이 그렇게 나가니까... 마음이 묘했다.


근데 더 묘한 건 그다음이다.


“새로운 팀장이 들어온다고?”

누구냐 했더니, 원래 이 자리에 있었다가 퇴사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뭐야? 그럼 심팀장이 밀려난 건가?

조용히 들리는 소문들.


“돈 문제 있었다더라.”

“인성에서 걸렸대.”

“성 과장이 돌아오는 조건이 그거였대.”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짜인 그림.

심 팀장은 알고 있었을까?


며칠 후, 성 과장이 팀장으로 왔다.






새로운 팀장


성 과장이 팀장으로 들어온 이후, 디자인팀엔 새로운 기류가 흘렀다.

이전 팀장의 퇴사와 맞물려 팀 분위기는 어수선했지만
나는 나대로 버티고 있었고, 성 과장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팀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충돌이 일어난 건, 시각디자인을 맡고 있던 도 대리였다.
성 과장이 정식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도 대리와 성 과장은 제법 가까워 보였다.
가끔 같이 나가 커피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던 사이. 처음에는 둘이 사귀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막상 성 과장이 '팀장'이란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팀을 관리하려 들자, 도 대리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실장님! 저… 같이 일 못 하겠어요. “
"이 사람, 저 무시해요..."


결국 위에 공식적으로 보고까지 하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고, 팀 안팎으로도 그 파장이 컸다.
내가 팀장의 뜻을 잘 안 따랐던 정도였다면, 도 대리는 아예 공개적으로 선을 그은 셈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듣자 하니, 근무 시간에 딴짓하던 걸 지적받은 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감정이 폭 발했다.
그때 느꼈다.


성팀장의 스타일은 정확하고 깔끔하지만, 사람 마음을 다독이는 데는 약한 타입이라는 걸.


팀장은 리더지만, 동시에 심리학자도 되어야 하잖아.

근데 그걸 잊은 채 정공법만 밀어붙이다 보니, 사람이 하나둘씩 등을 돌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리고 그 무렵,


9층 해외사업부에 새로운 디자이너가 들어왔다.






라이벌 등장


이름은 구 과장.

말투는 차분하고, 스타일은 부드럽고, 디자인 감각은 최고인 것 같다.

특히 레트로 무드를 다루는 감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기운이 있었다.

소속은 다르지만 같은 '디자이너'라는 정체성 덕분에 난 자연스럽게 그와 말을 섞었다.




"구 과장님, 이거 지난 디자인 참고하실래요?"

"요즘 그 일, 어떻게 풀고 계세요?"


작은 도움이었지만, 내겐 그런 소통이 즐거웠다.

기술연구소 디자인팀은 국내 제품을,

구 과장은 해외사업부 전담 디자이너로 해외 제품 디자인만 맡았기에 업무가 직접적으로 엮이진 않았다.

하지만 우린 종종 마주쳤고, 자연스레 친해졌다.


그런데...



성 과장은 그 관계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 직원이 왜 저기랑 그렇게 친 해?" 같은 느낌?

처음엔 눈치만 주는 정도였는데,


"요즘 오쌤, 9층이랑 자주 보네?"
"해외사업부는 걔 하나 들어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별말 아닌 것처럼 웃으며 던지지만,

그 속엔 묘한 선 긋기와 경계심이 스며 있었다.

성과장은 웃었지만, 그 눈빛 어딘가엔 불안이 번져 있었다.
마치 잡아둔 연줄이 다른 바람에 휘청이는 걸 본 사람처럼.


성 과장 에게 디자인팀은 자신의 통제 아래에 있는 세계였고,

그 세계 밖에 있는 '다른 디자이너'는 일종의 침입자처럼 느껴졌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알았다.
직급보다 중요한 건, 그 팀의 중심에 누가 있는가였다.
그리고 성 과장은 중심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심이란 게 사람을 밀어내서 지켜지는 건 아니잖아?


디자인팀은 기술연구소 10층, 구 과장은 해외사업부가 있는 9층.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우린 서로 다른 리듬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성 과장이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디자인은 한 방향으로 가야지, 분산되면 안 돼."
"해외사업부에서 아무리 채용했어도, 디자인 스타일은 지 켜야 해."


하지만,

구 과장은 성 과장의 팀원이 아니었다.

조직도 상에서도, 실질적인 소속에서도 그건 명확했다
나는 중간에서 양쪽을 지켜봤다.
한쪽은 통제하려는 리더, 한쪽은 자유롭게 일하려는 디자이너.
그리고 나는 그 사이,



"어느 쪽이 맞다"는 판단보다,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 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성 과장의 경계는 심해졌고,

심지어 구 과장이 뭐라도 잘하면 묘하게 날카로운 말이 나왔다.


"걔는 왜 맨날 자료를 안 맞춰?"
"쟤는 내가 있어도 인사를 안 해."


기분 탓인가 싶었지만, 그 기류는 분명했다.

성 과장과 구 과장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전선.

그러다 어느 날,
회의실 복도에서 성 과장이 나를 불렀다.


"오쌤, 혹시 요즘 구 과장이랑 무슨 얘기해요?"
"… 그냥 디자인 얘기 정도요"


성과장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인 말은,


"우리 팀은 우리 방식대로 가는 거, 알죠?"

그 말에 대답은 안 했지만, 나는 속으로는 중얼거렸다.


"그 방식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맞는 방식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주면 좋겠어요, 팀장님..."


이제 막 첫 항해를 시작했는데, 벌써 파도가 거세다.
새우등 터지는 건... 나겠지.


(다음 편: 10층과 9층 사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전쟁의 시작.)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keyword
이전 06화6화 팀장님, 그건 제 디자인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