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점지해 준다는 그분께 감사를 드려야 할지, 조상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후 아기천사는 바로 제게 와주었습니다. 노산인 데다 주변에 난임이야기를 너무 많이 보고 들어 어느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금세 와준 아기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원하는 아기가 찾아오지 않았을 때의 고통은 제가 차마 헤아릴 수 없어 보였으니까요.
저는 아예 기간을 정해 남편에게 선포를 하고 기간에 맞추려면 아가는 이때까지는 생겨야 한다며 남편을 겁박했죠. 더 나이 들어 낳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심한 이상 빠르게 진행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한동안 반응이 없자 금방 시무룩 해졌습니다. 스스로 웃기기도 했습니다. 제가 10대,20대도 아니고 마음먹는다고 바로 생긴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레 찾아오길 기다리자 하던어느날, 눈에 임신 테스트기가 들어와 아무생각 없이 해보고 책상에 둔채 밥을 먹고 왔는데 블로그나 맘카페에서 말하던 '매직아이'가 보이더군요. 아주 연한 두 줄이 보인 겁니다. 병원에 가서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너무 기대하면 안 되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이르게 가면 병원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한 주를 더 꾹꾹 참고 병원에 갔어요.
"임신이네요. 축하드려요" 의사 선생님의 이 한마디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습니다. 겨우 6주 차 쌀알만 한 태아를 보고 나왔는데 그 기분은 말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아요. 신기하고 얼떨떨하고 믿기지 않고 마음이 요란하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쌉싸름한
맛
임신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어요. 행복하긴 했습니다만 행복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말은 진리더라고요. 저는 임신기간동안 기형아 검사나 임신성 당뇨, 각종 검사를 패스하고 큰 이벤트 없이 지나간 행운의 임신부였는데요. 그럼에도 임신했으면 이정도는 체험해 봐야지하는 것처럼 여러 증상을 조금씩 맛봤습니다. 초기입덧, 가려움증, 요통, 불면증, 피부트러블, 빈뇨 등등 막달에는 골반통증으로 돌아눕지도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어요.출산 직전의 2~3주는 '빨리 나와라, 나와라'할 만큼 몸 여기저기가 성한 곳이 없었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공포감에 심적으로도 힘들었어요. 불안함에초록창에 이 증상, 저 증상 검색해 보고 이 시기 태아관련된 내용을 보면서 혼자 좋았다 나빴다 북 치고 장구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생활에서 오는 심적부담도 컸습니다. 임신이 저희 집안에서나 경사지 타인에게는 특히 회사동료에겐 경사까지의 기쁜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조금 일찍 쉬었는데요. 제일 큰 이유는 회사 팀장님 얼굴만 안 봐도 태교가 될 것 같았거든요. 회사를 다닐 때는 많은 분들이 배려를 해주셨지만, 저는 민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성격이어서 그런 배려에도 마음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임신 전에는 당연히 내가 해야 했던 일도 혹시 아기에게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 최대한 제외되었어요. 저도 아침엔 준비해서 출근하는 것만으로 진이 빠지고, 점심만 먹고나면 미칠 듯이 잠이 쏟아지고, 오후 시간이 되면 온몸이 뒤틀리고 쉬고 싶은 마음만 들다 보니 일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게 되고,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지기도 했습니다. 아가와 엄마가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겠지만 '회사'라는 공간에서는 그 권리를 당당히 외치기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누군가는 타인의 사정으로 일을 더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까요. 민폐라 생각하면 안 되지만 제 스스로가 민폐 덩어리가 된 것 같고, 한 사람분의 역할을 못한다는 생각을 드니 자괴감이 오기도 하더라고요.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해버리게 됐죠. 한 생명을 몸에서 키워나가고, 그 작용으로 신체에 엄청난 변화가 오니 배려받아야 함이 마땅하지만회사의 이익이나 동료들에 대한 보상, 임신부에 대한 배려 이런 것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아이를 품고 있었던 그 시절은 정말 행복했어요. 수많은 고통이 동반했음에도 설렘, 기대, 기다림, 사랑..갖은 달콤함으로 범벅이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극강의 매운맛이 뒤따라오겠지만 제 인생의 새로운 전환이 될 아주 소중한 10개월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