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이 예술이 되는 곳, 홍콩의 밤

2015년 다시 여행길에 오르다

by 사이프러스

우리의 두 번째 여행


마는 첫 해외여행 이후 다음 여행을 고대하고 있었다. 여행 적금도 꾸준히 모으고 다음은 어딜 가면 좋을지 고민하였다.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는 딸과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이 상당한 화제였던 것 같다. 그 무렵부터 엄마 친구들 모임에서도 해외여행을 가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여행 적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엄마와 두 번째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가사키를 다녀온 지 1년이 조금 넘은 때였다. 일 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다녀오기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적금도 꾸준히 모았고 엄마가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한 곳이라도 더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는 화려한 야경을 보고 싶다고 했고, 야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홍콩을 다음 여행지로 골랐다.


화려함이 예술이 되는 곳, 홍콩의 야경


혼돈의 홍콩

홍콩 하면 떠오르는 몇몇 수식어 중 빠지지 않는 것이 홍콩의 밤거리, 바로 야경이다. 빽빽이 늘어선 마천루, 화려한 조명, 네온사인이 어우러져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다. 우리가 홍콩에 도착한 것은 밤이었고 숙소 인근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렸을 때는 그 고층빌딩과 시력을 잃을 듯한 조명, 수없이 어깨를 치고 가는 인파에 정신을 빼앗겼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길은 어디인가, 엄마는 날 잘 따라오고 있는가, 내 짐은 내 손에 잘 들려있는가'

그 혼돈 상태에서 인파를 뚫고 호텔에 도착했을 땐 둘 다 녹초가 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이미 그 화려함에 마음을 뺏겨 있었다.


자리를 사수하라! 심포니 오브 라이트 쇼

침사추이의 시계탑, 근처에서 심포니오브라이트를 볼 수 있다

이튿날은 스타의 거리 옆에서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았다. 매일 밤 8시에 시작하는 홍콩의 야경 쇼, 홍콩의 마천루를 배경에서 쏘아대는 오색찬란한 조명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금세 빼앗아 가버린다. 기네스북에 ‘최대의 빛과 소리 공연’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니 그 화려함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엄마는 화려한 야경 쇼를 핸드폰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에 담아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내 말은 무시한 채 핸드폰을 이리저리 옮기며 동영상을 찍었다.

이것도 볼 수 있는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매일 밤 8시가 되기 전에 사람들이 미리 와서 자리에 앉는데, 조금 더 앞에서 보려고 사람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게다다 쇼가 시작하자 앞자리 사람들이 일어나서 사진을 찍었고, 뒤에 있는 사람들이 격하게 항의를 하는 바람에 순간 싸움이 날 뻔했다. 이게 뭔데 싸움까지 나나 싶겠지만 그 정도로 1분 1초도 놓치고 싶지 않은 쇼이다.


엄마의 대활약과 피크트램에서 맞잡은 손

그다음 날은 피크트램을 타고 홍콩의 야경을 보러 갔다. 야경을 보는 곳이 홍콩에서 가장 높은 산인 빅토리아 피크에 있는데 엄청 경사 잔 곳이라 '피크트램'이라는 작은 트램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미리 표를 예약하면 줄을 안 서도 된다 했는데 막상 가보니 티켓이 있어도 줄을 서야 한단다. 엄청난 인파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홍콩으로만 관광을 오는 줄 알았다. 엄마가 가장 기대한 건데 돌아갈 수도 없고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더운데 기다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내 걱정과 다르게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기다려보자, 위에 가면 좋은 게 있겠지."라고 말했다.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렸지만 엄마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기다리니 참을만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일상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밥을 기다리거나 무언가를 기다리는 행동은 대체로 짜증을 동반한다. 그런데 그 장소가 여행지로만 바뀌면 기다림조차 추억이 된다. 이게 여행이 주는 마법인가 싶다.


피크트램을 타고 올라가면서 본 홍콩의 마천루

피크트램에 타는 순간에는 엄마가 엄청난 역할을 했다. 사람들이 질서 없이 순식간에 트램에 타서 앉을자리가 없었는데 엄마가 가방을 냅다 던져 자리를 사수했다. 버스에서 수없이 가방을 던지던 엄마의 기술이 홍콩에서도 먹히는 순간이었다. 그 상황이 얼마나 웃기던지 더위를 참으며 기다리던 수고가 순간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엄마와 나는 보통은 스킨십이 거의 없는 편이다. 불필요한 터치는 하지 않는 것이 누구와 있던 기본인 가족이다. 그래서 여행을 왔다고 해서 엄마와 손을 잡고 걷거나 둘이 꼭 붙어 다니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달랐다. 피크트램을 타는 그 아수라장에서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꼭 잡았고, 덜컹거리는 트램을 타면서 무서워서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실제 트램은 이게 고장이 안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덜컹거렸고, 경사가 아주 급했기 때문에 순간순간 심장이 쫄깃해졌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안정된 상태에서 야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겨우 손 하나였다. 손 한번 맞잡은 것이 수천 마디 말보다 더 우리의 감정을 잘 전달한 것 같았다. '서로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괜찮다' 이런 말을 대신 전해주는 느낌이었다. 보이지 않던 부모 자식 간의 유대를 몸소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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