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드디어 유럽에 가다
2019년이 되고 엄마와 나는 드디어 아시아를 벗어나 보기로 했다. 나는 당시 퇴사 후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시간을 내겠나 싶어서 유럽여행을 계획했다.
엄마는 시간만 많은 딸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을 거다. "무직자 둘이 여행을 가면 그 돈은 누가 내니." 엄마의 걱정이 당연했지만, 난 곧 시험에 붙어서 직장을 얻을 것이고 취업을 하면 길게 시간을 내기 힘들거라 생각했다. 대체 시험에 합격할 거라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합격하겠지' 생각하면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유럽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절을 가보고 싶어 한다는 방송을 봤다. 유럽에서 한국식 절을 볼 수 있는 데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는 높은 첨탑이나 고딕 양식으로 지은 뾰쪽한 성당들, 몇 백 년 되었다는 건물들을 볼 수 있는 데가 없다. 서로에게 없는 문화는 처음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 신기함에 더해 경외심까지 불러일으킨다. 엄마도 그래서 무척이나 유럽을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수백만 원이나 드는 여행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기에 엄마 인생에 유럽여행은 아예 없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건강이 나에게 큰 추진력을 불어넣어줬다. 처음 일본으로 떠난 때와는 엄마의 몸이 많이 달라졌다. 무릎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 걷는 게 불편해졌다.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질 리 없다. 시간이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전에 엄마가 평생 꿈처럼만 생각했던 곳에 함께 가보고 싶었다. 남은 돈을 박박 긁고, 다음 여행을 위해 조금씩 모우 둔 여행적금을 깼다. 다녀오면 난 빈털터리다. 나를 합격시켜줘야 한다.
7박 9일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갈지는 최대의 고민거리였다. 12월이라 너무 추운 곳은 힘들고, 너무 비싼 곳도 힘들고, 여러 나라를 둘러보는 것도 무리고, 비행기 값도 어느 정도 맞춰야 하고 이렇게 요리조리 안 되는 것을 생각하니 그냥 집에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까지했다. 엄마는 이탈리아, 프랑스와 같은 곳을 말했고, 나는 터키나 폴란드, 체코와 같은 동유럽을 생각했다.
엄마는 낭만을 1순위로 생각했고 나는 예산을 1순위로 생각했다. 폴란드 그릇으로 엄마를 꼬드겨 표까지 끊으려는 찰나 그래도 엄마의 1순위로 가는 것이 후회가 덜 할 것 같았고 폴란드의 겨울이 많이 춥다는 이야기를 들어 프랑스를 가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를 결정했지만 인근의 다른 나라를 둘러볼지, 파리만 갈지 다른 도시도 가볼지도 계속 고민의 연속이었다. 고민하다가 지쳐서 가지 말까라는 생각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비행기표, 숙소, 일정, 교통편, 음식, 준비물 모두 혼자 준비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가기로 결정한 후로부터 설레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여러 나라를 가보고 싶었지만 7박 9일 일정에 맞춰서 프랑스에서 파리와 와인의 도시 보르도를 다녀오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언제 떠날지 일정을 잡을 때부터 엄마와 나는 싸웠다. 내가 가장 비행기표가 저렴한 시기를 골라 엄마한테 말했는데 하필 그때가 언니의 신혼여행 시기였다. 엄마는 언니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때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왜? 대체 왜?
심지어 언니도 괜찮다고 했는데 왜일까? 비행기 표 값이 그다음 주로 넘어가면 30-40만 원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언니와 나는 적극적으로 엄마를 설득했다. 하지만 엄마는 차라리 여행을 안 간다고 했다. 우리가 한 달씩 집을 비우는 것도 아니고 고작 7박 9일이다. 게다가 언니는 목요일에 도착이고 우리는 그 주 일요일 도착이다. 나는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그래 가지 말자, 나 혼자 갔다 올게."
몇 날 며칠을 논쟁 끝에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도 엄마가 얼마나 실망할지 생각하니 걱정이 됐다. 다시 엄마한테 그다음 주로 가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늘 집에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항상 하교 후에는 엄마가 집에서 우릴 맞아줬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건 우리가 학창 시절을 항상 안정되고 평온하게 보낼 수 있었던 엄마의 비결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가 어딘가를 다녀오면 항상 집에서 맞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가 안정을 찾고 편히 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 커서 서른이 넘은 딸이지만 엄마 눈에는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보이나 보다. 엄마와의 극적인 타협 끝에 언니 부부는 아빠가 맞아주는 것으로 하고 우린 저렴한 비행기 표로 떠나는 일정을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