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준 선물, 비와 파업

by 사이프러스

여행 공포증에 시달리다


여행 준비 내내 행복함보다 '어쩌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유럽여행카페나 블로그에서 파리에 대해


"현지인도 소매치기를 당한다. 도로 한복판에도 큰 쥐가 뛰어다닐 만큼 쥐가 많다. 프랑스어를 못하면 불친절하다. 카페나 식당에서 동양인에게는 구석자리나 좋지 않은 자리를 준다. 거리가 더럽고 냄새가 심하다."

이렇게 표현한 글들이 많이 있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왜 이 많은 돈을 투자해서 소매치기 많고 더럽고 불친절한 데를 일부러 찾아가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초행길에 엄마를 모시고 어떻게 가야 하나 걱정이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엄마한테 좋은 추억만을 남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날까지도 난 설렘보단 걱정이었다. 12시간 동안 엄마가 힘들어하면 어쩌나, 숙소까지는 제대로 갈 수 있을까, 파업이라는데, 첫 저녁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끝없는 걱정과 함께 2019년의 마지막 달에 엄마와 첫 유럽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비 오는 밤, 파리와의 첫 만남


비가 온다. 우리를 맞이한 파리는 비에 촉촉이 젖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미리 예약한 밴을 타고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저녁 늦게 도착을 해서 조금이라고 숙소에 편히 가려 거금을 들여 밴을 예약했다. 다행히 편히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엄마가 매우 흡족해했다. 엄마는 비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날씨에 우산을 쓰고 캐리어를 끌고 버스를 탔으면 엄청난 고생을 했을 것이 뻔하다. 게다가 처음 밟아본 서양 땅에서 한국인 운전기사를 만나 굉장히 안정이 된다고 했다. 엄마 역시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 있었나 보다.


화려한 야경이 펼쳐질 거란 기대와 다르게 비 오는 파리의 밤은 아주 고요했다. 높은 빌딩도 없고 화려한 네온사인이 엉켜 있지도 않았다. 파리 시내에 들어와서야 이곳이 파리라는 것을 실감했다.


비 오는 새벽 파리의 어느 골목

다음 날 새벽같이 길을 나섰다. 시차 때문에 새벽같이 눈이 떠졌고 우린 한시도 방에서 해뜨는 걸 기다릴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간밤에 오던 비는 그치지 않고 여전히 내렸다. 나는 비를 하늘이 주는 선물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파리의 새벽을 적시는 비를 보며 이건 축복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비 오는 날이면 여기저기가 쑤셔대는 엄마는 빨래도 잘 안 마르고 축축하기만 한 비 오는 날을 아주 싫어했다.

그런데 비 오는 걸 그렇게 싫어하는 엄마가 말한다.

"이래서 파리를 낭만의 도시라고 하나 봐"


오래된 잿빛 건물이 비에 흠뻑 젖어있었고, 이파리가 다 떨어져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뿐이었지만 거기엔 낭만이 있었고 우린 감상에 젖어들었다.




삼일 뒤 기차가 취소되었습니다


파리에 도착한 그날 밤 짐을 푸려는데 핸드폰으로 메일이 날아왔다. 보통 때면 구글 지메일이 오면 바로 삭제해버리는데 사람의 촉이라는 건가 이상하게도 읽고 싶어 져서 메일을 열었다. 삼일 뒤에 출발할 보르도행 기차가 취소되었다는 메일이었다.

아.. 이래서 읽고 싶었구나..

때는 2019년 12월 프랑스 파업이 점점 고조되던 시기였다. 난감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망했다'는 생각이 뇌를 스쳤다.


지금 서울에서 부산 가는 기차가 없어졌다는 것도 아니고 프랑스에서 삼일 뒤에 떠나야 하는 기차가 사라졌다. 그건 삼일 뒤 예약해 놓은 숙소와 와인 체험 예약도 모두 취소해야 한다는 거다. 무엇보다 삼일 뒤에는 대체 어디서 자야 하나!!


신혼여행으로 이탈리아에 있던 언니와 상의하려고 보이스톡을 했다. 근데 엄마가 전화를 뺏더니 신혼여행에서 귀국하면 시댁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한반복 설교를 시작한다. 우리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엄마..

엄마는 "여기서 더 있으면 안 돼?" 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여긴 그때 예약이 있어서 안된다고요.

당장 숙소를 구하는 것보다 언니가 시댁에 가서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엄마 모습에 엄마는 역시 엄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 나는 눈에 핏발이 서도록 새로운 숙소 검색을 했고 다행히도 근처에 괜찮은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의 이사


비가 대차게 오던 새벽 우린 옆 동네로 이사를 갔다. 분명 지도에서는 15분 거리라고 했는데 파리의 돌길을 큰 캐리어와 잡다한 짐들을 이고 지고 비를 뚫고 가니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가는 길에 캐리어 비 맞지 말라고 씌워준 캐리어 우비는 캐리어 바퀴에 끼여 바퀴를 망가트리고 별짓을 다하다 겨우 도착했다. 그렇게 내 돈 내고 생고생하며 짐을 옮기는데 웃음은 왜 그렇게 터지던지, 이게 바로 500만 원짜리 해외 체험형 생고생인 건가.


새로 옮긴 숙소는 계단도 아주 좁고 방 자체도 어두워서 마치 중세시대를 연상케 했다. 나는 나름대로 고풍스러운 느낌도 들고 아늑하니 마음에 들었지만 엄마는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예산 내에서 갈 수 있는 안전한 숙소라고 말했고 가다가 본 마들렌 성당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내 현실을 수긍했다. 어쨌든 전보다 못한 숙소에 엄마를 데려와 마음이 불편했던 터라 남은 일정은 더 엄마가 즐거워할 수 있는 플랜을 짜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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