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는 상관없는 화려한 명품거리
홍콩 침사추이의 명품거리와 빅토리아 백화점은 그야말로 명품의 성지이다. 온갖 명품 상점들이 늘어져 있는데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가볼만한 곳이다. 그 화려함이 야경 못지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와 난 그런 명품을 살 돈은 없었고, 들어갈 엄두도 안났기 때문에 그냥 이런데가 있구나 하면서 쓱 훑어보고 지나갔다.
그런데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돌아다니면서 우리와는 다른 특이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조금도 쉴 곳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백화점 내에 곳곳에 벤치 몇 개를 두어 쉴 곳을 마련해 두고 정수기도 둬서 물을 마실 수 있게 해 주지만 당시 홍콩에선 그런 건 구경할 수 없었다. 잠시라도 쉴 거면 무조건 카페에서 뭔가를 사야 쉴 수 있었는데 돈이 없으면 이런 데에는 들어오지도 말고 쉴 생각은 하지 마라는 의미 같아서 불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너무 한국의 고객만족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문화적 요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거대 쇼핑몰에서 벤치 몇 개 정도의 서비스를 해주면 이용자가 훨씬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오래된 것의 매력, 미드레벨 엘스컬레이터와 소호거리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홍콩의 예술 거리로 알려진 소호거리와 주요 도심지를 잇는 에스컬레이터로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일상에서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여기는 홍콩 영화 [중경삼림]에서 나와 관광객에게 유명해졌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천천히 길을 오르다 보면 사방이 뚫려 있기 때문에 홍콩의 골목을 감상할 수 있다. 화려한 홍콩의 마천루나 대형 백화점과 명품이 몰려있는 거리가 아니라 옛 모습을 간직한 홍콩의 거리를 볼 수 있다. 흔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닭장 같은 홍콩의 아파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언뜻 보면 무질서하고 지저분해 보이지만 그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고 전통을 지키며 예술적으로 발전해가는 곳이기도 하다.
엄마는 명품거리나 마천루가 즐비한 곳보다 이 거리가 더 좋다고 했다. 엄마가 젊었을 때 영화에서 보던 그 홍콩 모습 같아 정겨움이 느껴진다고 했다. 우린 좁고 오래된 식당에 붙어 앉아서 딤섬을 나눠먹으면서 어떻게 이 메뉴 하나로 오랜 시간을 버텨왔나 감탄을 하고 그 맛에 또 놀라면서 이런 곳이 홍콩을 더 홍콩 답게 빛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 또한 이곳이 오래도록 변치 않고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고층 빌딩이나 백화점은 언제든 지을 수 있다. 이런 건물을 많이 지으면 나라가 발전하고 현대 예술 또한 성장하겠지만 오래된 것의 가치를 따라잡을 수 없다. 훗날 그 시절을 복원할 수 있겠지만, 정말 시대를 이겨온 아름다움까지 복원할 수가 없을 것이다.
홍콩은 대부분 관광지가 몰려있어서 움직이기 편했고 근처 마카오나 중국 심천 등지로 움직이기도 편하게 교통이 마련돼있다. 마카오는 배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정도로 가까웠다. 물론 배를 타러 선착장을 찾아가는 일이 힘들었지만 손짓 발짓 다해가며 찾고 나니 나름의 보람도 있었다.
마카오는 홍콩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홍콩은 온갖 명품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거나 예술가적 느낌이 가득한 느낌이었다면 마카오는 형형색색으로 꾸며 톡톡 튀는 느낌이었다. 건물의 색도 강렬한 원색으로 칠해놓았고 금으로 장식한 호텔들은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재미를 만들었다.
카지노와 등산복
우린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 명소만 둘러보고 나왔는데 시간이 되면 곳곳을 세심히 둘러보고 싶을 만큼 작지만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마카오 하면 카지노 구경도 다들 간다 했는데 할 줄도 몰라 관심이 없었는데 엄마가 여기까지 왔으니 구경 한번 해보자 해서 카지노를 가봤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이브닝드레스나 턱시도 입은 사람은 없고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이 나라도 여행은 역시 등산복인가 싶을 정도로 등산복 같은 옷을 단체로 입고 카지노를 하고 있는데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래도 뭔가 카지노 하면 무섭다는 생각을 했는지 둘이 손을 꼭 붙잡고 바람처럼 요리조리 둘러보다 나왔다.
우리가 홍콩 여행을 했던 때는 10월 초였다. 홍콩의 10월은 우리나라 한여름 같았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는 수준이다. 특히 엄마는 땀을 많이 흘리는데 그것이 상당히 힘들었던 것 같다. 다행히 숙소를 관광지 중심부에 잡아 너무 더우면 호텔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재정비를 한 뒤 나왔다. 하지만 줄줄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엄마는 꽤나 고생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끔 홍콩 아파트나 주거 환경이 올라온 것을 보고 웬 닭장이냐 싶었는데 그것이 현실이었다. 현지인은 말할 것 없고 관광객이 가는 호텔도 캐리어를 바닥에 펼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곳이 많다고 했다. 호텔 후기를 보면 비싸고 비좁다는 평이 많았다. 몇 날 며칠을 고르고 또 골라 적당한 가격의 호텔을 골랐다. 다행히 바닥에 캐리어 펼칠 곳은 있었다. 엄마는 내가 힘든 게 호텔을 고른 걸 알고 괜찮다고 했지만 명색이 호텔인데 생각보다 작은 룸에 실망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여기가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고 수긍해줬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처음 보는 신기한 것에 설레 했고 불편한 것은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몸이 불편하고 힘들면 짜증 나는 건 당연하지만 이내 다시 웃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었다. 엄마한테 여행은 단순히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동네 아줌마들에게 자랑을 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엄마 삶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래도록 추억할 수 있고 또 다음이라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일상 속에서는 미처 보지 못한 또 다른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