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오랜 상의 끝에 첫 여행지로 결정된 곳은 일본 나가사키였다. 도쿄, 교토,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나가사키를 고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2014년 당시는 일본의 소도시 여행이 시작되던 시기로 진에어에서는 나가사키 직항 노선이 생겨서 도쿄보다 훨씬 저렴하게 일본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가사키는 일본이 개항하던 시기의 무역도시로 당시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어 볼거리도 많았다. 도로 위를 지나는 노면전차는 이 도시만의 예스러움을 뽐내는 듯 매력적이었고 바다가 보이는 온천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였다. 온천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일본 여행은 아주 적절한 여행지였다.
짧지만 풍부했던 여행
끼니도 추억이 되는 여행
우린 나가사키역에 도착하자마자 라멘을 먹었다. 도착할 때까지 이것저것 간식을 먹기는 했지만 그걸로는 우리의 허기진 위를 위로할 수 없었다. 맛집을 찾고 할 것도 없이 근처에 보이는 집을 골라 직진했다. 맛집인 건지 점심시간 때라 그런 건지 인근 직장인들이 죄다 몰려나왔다. 그 인파를 뚫고 일렬로 앉는 바에 앉아서 라멘을 먹었다.
바쁜 직장인들이 홀로 또는 두세 명이 찾아와 말도 거의 없이 기계적으로 음식을 주문했다. 점원들 사이에서는 무슨 암호라도 되듯이 음식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대며 요리를 시작하고 서빙을 하는데 아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빠르게 나오는 음식을 빠르게 먹고 사라졌다. 일본이고 우리고 점심시간의 여유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한 한 끼 식사로만 보여 안타까웠다. 언제부터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이 그저 생존을 위해 밥을 위 속에 퍼넣는 시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직장인이 아닌 관광객이 되어서는 한끼 한끼가 아주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는데 말이다.
관광객인 우리에겐 그 무감각한 회색빛 라멘집조차 설렘의 대상이었다. 엄마는 그 라멘이 일본에서의 첫 식사이자 생애 최초 라멘이었다. 이보다 더 좋은 조미료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오랜만에 이국에서 먹는 첫 식사였기에 기름기가 가득한 값싼 음식이었는데도 그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감성충만 걷기 여행
나가사키 시내에서 유명한 관광지라면 구라바엔 공원을 꼽을 수 있다. 일본의 개항시기 외국이 거류지였고 서양문물이 활발하게 들어오던 곳으로 서양식 저택들과 정원이 꾸며져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넓게 펼쳐진 바다는 가슴을 펑하고 뚫어주는 기분이 들었고, 일본에서 작게나마 유럽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다보는 풍경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높은 언덕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뭣도 모르고 걸어 올라갔다가 중도에 포기할 뻔했다. 그 시절 유럽 사람들은 차로 왔겠지 하면서 우린 왜 관광객인데 걸어 올라오냐며 한참을 깔깔대며 올라갔다.
분명 중간에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도 됐다. 편하게 가려면 얼마든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걷기로 했다. 길은 그곳만이 간직한 역사와 그 길을 걸은 수많은 사람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이 감성 충만한 모녀는 다리를 버리더라도 그 길에서만 주는 감성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헤매고(많이) 지쳐도 우리는 걷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곳에서 처음 이곳을 발견하고 저택을 지었던 유럽인들의 마음, 낯선 외국인의 방문으로 두려움을 느꼈을 현지인들의 마음을 느껴보면서 100여 년 전의 시간에 젖어들었다.
머리 나쁜 주인과 고생하는 다리
지금은 해외에서도 나 같은 길치도 길을 잃어버리기 힘들 정도로 구글 지도가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구글 지도에 100% 의존할 수 없었다. 물론 지도는 잘못이 없다. 6년 전이라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처럼 종이지도를 들고 다니던 시절로 거슬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지도를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야경을 보러 가는 길을 헤매고 또 헤매었다. 셔틀버스를 탄 뒤에 또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셔틀버스를 타는 곳을 잘 찾지 못해서 한참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우린 이후의 여행도 항상 도보여행의 끝판을 봤다. 길이 주는 감성도 중요하지만 고통받을 무릎과 발도 신경을 써줘야 하는데 주인 머리가 나빠서 아랫지방에 사는 다리까지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이나사야마 전망대에서 본 나가사키 야경
나가사키의 이나사야마 전망대에서 보는 야경은 일본 3대 야경이라고 한다. 엄마는 완벽히 야경에 심취했다. 이국에서 바라보는 밤의 풍경이 그동안의 고단함을 씻어내리는 기분이었을까. 한참 동안 한 곳을 응시하는 엄마를 보며 난 마음이 촉박해졌다. 문 닫을 시간인데 저렇게 감상에 빠져있으니 어떻게 가자고 하나.
타협과 협상의 자리, 온천
이번 여행에서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온천이었다. 엄마의 베스트 취미는 목욕탕에 가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목욕탕에 끌려가는 것을 도살장에 가는 돼지새끼처럼 무서워했다. 숨 막힐 듯 습하고 뜨거운 탕에 날 집어넣고 온몸을 퉁퉁 불려서 살갗을 벗겨내 듯 박박 때를 밀어내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약한 피부는 목욕탕을 다녀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빨갛게 반점이 생겼고 보습제를 발라도 건조함에 시달렸다. 엄마는 잘 씻겨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때를 밀지 않으면 더럽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샤워만 하는 나를 굉장히 더러운 생명체 취급을 하지만 지금은 취향 존중을 해주고 있다. 우리 서로 목욕만큼은 터치하지 않는 고유의 영역으로 남겨둡시다.
엄마는 넓은 대욕탕에서 반신욕을 하면서 거기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오면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고 했다. 그래서 한번 가면 최소 3시간은 있고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나면 더 오래 있다 온다. 엄마는 그토록 좋아하는 곳을 비행기를 타고 와서도 갈 수 있다 하니 아이처럼 좋아했다.
온천이 있는 곳은 나가사키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는데 그 정도 수고스러움은 충분히 감내할 만큼 좋은 곳이었다. 노천 온천에서 바다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온천에 몸을 담그니 뜨거운 걸 싫어하는 나도 온천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몸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하고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는 상쾌함까지 더해줬다. 언제 여길 다시 올 수 있을까. 여행은 늘 그런 것 같다. 우리 인생에 지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 생각하니 좀 더 시간을 들이고 싶고 좀 더 그 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물론 빨리 나가고 싶은 나와 더 오래 있고 싶은 엄마와 아주 작은 갈등은 있었으나 순조롭게 오래 머무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우리 여행의 리더는 엄마
당시 엄마는 50대 중반이었다. 엄마가 건강한 편도 아니었고 비행기도 처음 타보는 것이어서 떠나기 전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엄마는 기대감과 설렘이 컸지 걱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난 엄마를 내가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며 좋은 추억만 만들어줘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순조로워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리 여행의 리더는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잘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엄마는 진정하고 천천히 찾아보자 했다. 가려던 곳을 못 찾아도 다른 곳에 가도 좋다고 했다. 비행기 안에서 아기가 내내 울어 내가 짜증을 내니 엄마는 "아이는 말 대신 우는 거야, 곧 그칠 거니까 조금만 참아"라며 날 진정시켰다. 리더로서 여행 일정도 조율하고 함께 여행하는 사람을 안도시키고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이끈 것이다.
첫 여행이 만족스러웠는지 엄마는 다음 여행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매월 각자 5만원씩을 여행적금으로 모으기로 했고 다음은 어디로 갈지를 논의했다. 여행은 가기 전에 준비하며 설레고, 여행하면서 설레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그 여행을 추억하며 설렌다고 한다. 우린 함께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보고 '여기 맛있었는데', “이것도 사 올 걸”, “여기 진짜 좋았지?” 이런 얘기를 나누며 다음 여행을 기약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보냈던 시간이 우리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