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태어난 지 어느덧 60년이 훌쩍 넘었다. 세월의 야속함을 탓할 새도 없이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여느 엄마들처럼 주부로 한평생을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다 나이가 들어버린 것이다.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다고 하는데 눈 깜짝할 새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나에게만 몇 배속으로 지나는 것 같은 것이 세월인 듯하다.
엄마는 여린 소녀처럼 감수성이 풍부하고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으며 마치 눈의 도시를 다녀온 것 같다고 말했고, 길거리에 핀 꽃 하나에도 그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다. 이제는 돋보기로도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책을 읽는 것도 여의치 않고, 무릎도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 걷는 것조차 힘이 들게 되었지만 마음만큼은 호기심 많고 감성적이었던 십 대의 그대로 변치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을 동경했다. 하지만 뼛속까지 집돌이 유전자인 아빠는 여행이라는 것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했고 엄마는 집안에 갇혀버렸다.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도 엄마의 여행을 막는데 한몫했다. 그래서 엄마가 다니는 여행은 계모임에서 가는 당일치기 정도였다. 그 정도로도 엄마는 며칠 전부터 마치 첫사랑을 시작하는 소녀처럼 설레어했다.
엄마의 유전자가 고스란히 나에게 왔는지 나도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나라를 여행을 한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마치 모험을 떠나는 것처럼 설레었고 여행을 할 때면 마치 대단한 모험가가 된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항상 엄마 앞에서 선물을 늘어놓으며 신기하고 즐거웠던 이야기도 함께 꺼내놓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철없는 딸은 그저 자랑하기 바빠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작은 우연히
내가 또 다른 여행을 준비 중이었던 어느 날, 엄마는 자신이 갈 수 없는 머나먼 이국의 모습을 TV에서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한 번은 가볼 수 있을까.."
순간 '아, 엄마도 여행 가는 걸 좋아할 성격인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당시 엄마는 50대 후반이었는데 그때까지도 국내에서조차 제대로 된 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런 엄마를 생각하니 그동안 혼자만 여행을 해온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여행 같이 갈래?"
그렇게 우린 2014년, 처음 여행을 시작하여 이후 두 번의 여행을 함께했다. 아주 짧은 시간 떠났던 여행이었지만 무엇보다 오래 기억될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우리는 환상의 여행 메이트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내가 마치 엄마의 보호자라도 되는 양 엄마한테 일장연설을 해댔다. 비행기 탈 때는 어떻게 해야 하고, 호텔에 도착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건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친구와 가는 것과는 다르게 모든 것을 다 내가 챙겨야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보다 빨리 지칠 것이고, 외국어도 모르고, 스마트폰 사용도 잘 못하니 엄마가 여행에 뭔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나보다 방향감각이 좋았고(나의 방향감각은 무의 상태이다), 무거운 짐도 훨씬 잘 들었고, 음식도 모두 맛있게 먹었고, 무엇보다 나보다 더 용감했다. 오히려 엄마와 함께 가서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녹록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우린 열 달 동안 한 몸이었던 때처럼 감정을 공유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을 마음껏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