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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계절산타 May 17. 2021

에로스의 종말(한병철, 2015)

할 수 있을 수 없음이 에로스의 핵심 부정 조동사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책은 작지만  무겁다. 100페이지 남짓한 문고판의 책들이지만 만만하게 읽히지 않는다. 텍스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 필요한 제반 인문철학적 지식이 밑바탕되어야 물론,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 놓여 있는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집중력 높은  읽기가 필요하다.


한병철의 책은   머리와 마음을 괴롭힌다. 한병철의   내가 제일 '에로스' 하는 책이 '에로스의 종말'(한병철, 2015, 문학과지성사)이다. 피로사회, 성과사회, 투명사회 등을 하나로 묶어 주고, 에로스의 복원이 궁극적 해법이자 인간의 근원적 모습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이 책이 또 좋은 이유는 '사랑 예찬'이라는 책으로 알려진 알랭 바디우가 쓴 서문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알랭 바디우는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임은 물론, '사랑은 둘의 무대'라는 말로 유명하다.

이 책은 '최근 사랑의 종말을 고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오늘날 사랑은 무한한 선택의 자유와 다양한 옵션, 최적화의 강요 속에서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로 시작한다.


에로스의 종말은 성과사회, 투명사회, 피로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슬픈 우리의 자화상이다.

완전한 타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랑은 성립되기 어렵다. 자아가 죽고, 이타적 희생이 가능할 때 에로스는 성립한다. 드러내고 보여주기 좋아하는 사회에서는 사랑이 깊이 침잠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상처와 고뇌로서의 사랑은 존재하기 힘들다.


"에로스는 성과와 할 수 있음의 피안에서 성립하는 타자와 관계이다. '할 수 있을 수 없음'이 에로스의 핵심적인 부정 조동사다'라는 문장이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사랑까지도 성취와 성과의 대상이 되고, 과시하고 전시하는 대상이 되어 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철학자의 가차 없는 비판을 만나보길 바란다. 알랭 바디우가 서문에 쓴 사랑의 '재발명'이라는 단어가 눈에 밟힌다. 재발견이 아니라 재발명이다. 그만큼 전복적인 시도가 필요하다는 뜻일게다.


사랑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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