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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망망 Apr 10. 2019

마법의 약을 구할 수 없어 글을 쓰기로 했다

나의 무기력증 극복기 1


어느 순간부터 ‘마법의 약’을 자주 갈망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먹으면 의욕이 생기는 약’, ‘공부가 하고 싶어 지는 약’, ‘쓸데없는 우울을 사라지게 만들어줄 약’

그리고 식욕이 없을 때면 ‘식사대용 약’까지 생각했다.


나는 이 생각의 위험성을 알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이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법의 약을 찾는 것은 결국 쓸데없는 감정을 제거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감정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 시작을 미루게 만드는 걸림돌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언젠가부터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싫었고, 감정 기복이 심한 자신에게 질려갔다. ‘우울함’이나 그 기저에 있는 수많은 ‘거슬리는 것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만들은 어차피 나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하는 것을. 이왕 해야 하는 거, 살아야 하는 거 세상이 즐거우면 얼마나 좋을까?





우울과 글쓰기


나에게 우울이나 무기력은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태’처럼 여겨졌다. 사실은 타인의 공감이 너무나 필요하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을 가감 없이 쏟아내고, 공감을 바라는 것조차 그에게는 폭력인 것 같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은 나도 타인도 힘들게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마법의 약’을 먹으면 부정적인 감정들이 모두 사라지고 의욕과 열정이 가득한 세상이 펼쳐졌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런 약을 구할 수는 없어 글을 쓰기로 했다. 


나는 스스로를 무기력증이라고 진단했고 이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으로 ‘글쓰기’를 택했다. 무기력증의 진단도, 해결책의 선택도 모두 간편한 인터넷 검색이 내게 알려준 것이다. 포털사이트에 ‘무기력증’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여러 버전의 ‘무기력증 진단용 문답’이 뜬다. 신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십여 개의 항목이 있고 그중 5개 항목 이상에 해당한다고 느끼면 무기력증 증세가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식이다. (사실, ‘무기력증’을 검색해본다는 이 행위 자체가 최소 무기력증 초기에 접어든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블로거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글쓰기’가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한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 한 친구가 글쓰기의 이점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이제 밤에 일기 쓰는 것조차 시간이 아깝다고 했었다. 일기를 쓰다가 밤에 잠들 타이밍을 놓쳐 다음 날 하루를 매우 피곤한 상태로 시작하게 되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던 것이다.




나는 대학원생이라 매일 숱한 글들을 읽고 또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야만 한다. 그리고 많은 페이퍼를 써야 한다. 그렇게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일상 속의 버거움으로 자리했다. 예전부터 취미였던 ‘나에 대한 글쓰기’는 뒷전으로 미뤄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공을 빼면 텅 빈 것 같은, 게다가 그나마 그 전공에 대해서도 나의 의견을 제시하기 버거워하는 나약한 자아를 마주하게 되었다. 도대체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는지 흐릿해진 것이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나 할 포스터(미국의 미술이론가들) 등의 의견을 숙지하기에도 버거워진 나는 내 의견이 무엇이었는가를 잊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글쓰기’ 또한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했다. 특히 나처럼 말보다는 글을 훨씬 편하게 여기는 사람의 경우, 주기적인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나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은, 밀물처럼 밀려오는 생각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 많은 생각들이 밀려올 때의 결론은 대부분 회의주의로 끝나곤 한다.


‘회의감이 반드시 나쁜 것일까? 회의감을 생산적으로 사용할 방법은 없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회의감에 완전히 잠식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은 어쨌든 살아갈 동력을 잃는 일이다. 그 회의감의 물결을 극복하는 방법은 정리된 생각과 신념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을 모아 ‘나’라는 퍼즐 조각을 다시 맞춰 보기로 했다. 나에 대한 탐구는 이제 지긋지긋하다, 나랑 같이 사는 것도 지겹고 내 감정을 마주하는 것도 싫다고 생각했지만(이것은 자기혐오의 초기 단계인가?), 무기력증 극복을 위해 다시 ‘나’를 마주하기로 했다.




감정의 진단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진단하는 일은 사실 정말 중요하다.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그렇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아니다. 사실은 나의 감정을 정확히 아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을 적절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타인에게 나의 무기력이나 우울을 쏟아 놓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게 누구든,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주어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의 무기력에 대한 최소한의 진단을 통해 정리된 마음을 갖고자 극복기를 시작한다.


앞으로의 무기력증 극복기에서 다루게 될 주제들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도대체 왜 무기력한 것일까? (무기력증의 원인)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무기력증의 극복 방안)



이런 주제라면 지극히 개인적인 에세이가 될 것이지만, 사실 개인의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 무기력증의 원인은 상당 부분 나의 ‘외부’로부터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기력증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내가 유사한 경험이나 생각을 공유하고 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그리고 이것이 내 일기장, 내 방 서랍 속에서 끝날 수도 있었던 이야기를 공개하는 이유다.



P.S. 사진의 출처는 모두 글쓴이의 것이며, 앞으로도 이 에세이는 잘 어우러지는 사진과 함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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