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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 by you Oct 22. 2019

논산

서울을 바라보는 촌놈





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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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친한 여자친구가 있다. 좁은 고향에서 같이 나고 자라며, 고민이란 고민은 꿰뚫고 있는 사이였고, 주변 지인들은 모두 내가 그 친구와 친한걸 알고 있었다. 대학을 타지로 가기 전까지만 해도 서로 이성관계도 꿰뚫고있었던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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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여튼,각설하고. 서로 바쁨을 알기에 연락을 갈구하지는 않지만, 연락을 하지 않아도 여전히 돈독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뭐 적어도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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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친구의 일상을 훔쳐보다가 간만에 연락을 던졌다. 대학교에서 꿈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는 것 같았다. 이에 대해 재밌는 반응의 컨텐트를 스토리로 올렸기에, 잔뜩 웃는 표현을 툭하니 던졌다. 일종의 잘 지내냐는 안부인사였다. 연락 한 통이 힘든 우리 식 인사법으로써는 어찌됐든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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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의 피드백은 같이 웃는 것도 아니었다. 갑자기 ‘꿈이 뭐니’ 라고 물었다. 변한 게 없었다. 엉뚱한건 여전하네 싶었다. 그리고 나는 잠시 머뭇거린 뒤, ‘너는 뭐냐’ 라고 되물었다. 어찌 됐든 우리의 대화는 그랬다. 그냥, 요즘 젊은 20대들의 일반적인 sns소비 방식이었다. 느닷없는 연락과 큰 의미없는 대화. 날씨가 흐리면 비가 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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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는 단어에 왜 나는 머뭇거렸을까. 단어가 가시가 돋힌 것도 아니고, 어려운 단어도 아닌데. 전에는 옷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싶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그런 열정과는 멀어질 뿐더러 정신없이 현실을 살아가기 바빴다. 그만큼 나도 무엇이든 현실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했음을 느낀 뒤에야, 내가 정신없이 산다는걸 알았다. 여튼 그 단어에 대해 머뭇거렸다는 사실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렇다할 꿈을 말하지 못하는게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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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거 아닌 거대한 꿈이 있다. 서울에서 아이를 낳아 서울에서 키우고 싶다. 잘살든 못살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냥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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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논산. 태어나서 어떤 방면이든 무시란 받아본 적도 없지만, 무시에 가까운 말은 들은건 저 노래 제목에 써져있는 단어 그대로다. 촌스럽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동네에서 자랐다는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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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겐 편안한 곳일테지만, 누구에겐 제일 벗어나고 싶은 공간일 수도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논산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본 적이 없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같은 영화관도 없어서, 자그만한 동네영화관에서 눅눅한 4천원 짜리 팝콘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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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촌놈이다.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높은 건물과 미어터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직접 촌놈이라 느낀 것보다, 논산에서 살았다는 내 소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으로부터 내가 촌놈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학습했다. 적어도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고향의 위치가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는걸 20살이 되서야 알았다. 논산, 그 작은 동네에서는 고향가지고 놀릴 일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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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그랬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라고. 듣자마자 맛이 났다. 분명, 서울 사람들이 지은 표현은 아닌 것 같았다. 나같이 시골에서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향하기 위해, 그 치열한 삶의 투쟁 속에서 지어진 표현인 것 같았다. 그런데, 저 표현은 맛이 났다. 표현이 맛깔난다 라기보다는, 진짜로 맛이 느껴졌다. 짠 맛, 쓴 맛, 단 맛 등등. 나같은 지방출신들의 서울로 향하는 치열한 투쟁 속에서 흘려낸 땀방울과 함께, 퇴근 후 삼겹살에 마시는 소주 한 잔으로 쌉쌀하게 삼켜내는 맛. 그런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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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이 아닌 사람이 보는 서울은 달콤해보인다. 우리나라의 수위도시라서, 고층 건물이 많아서, 사람이 많아서, 연예인들이 많아서, 일자리가 많아서, 놀 거리가 많아서,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많아서. 전부 맞는 사실이지만, 전부 틀렸다. 서울이 지닌 요소들보다, 서울은 서울으로써 그냥 그 이름이 달콤하다. 하염없이 바라는 이상향, 설화 속 무릉도원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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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산다면, 얼마나 삶의 질이 올라가고, 얼마나 행복하길래 라는 잣대는 들이밀 공간조차 없다. 나같은 논산사람에게는 적어도 그렇다. 서울은 그 자체로 서울일 뿐이지만, 그것이 서울에 열광하는 이유다. 그냥 그 뿐이다. 내 자식만큼은 촌놈소리 듣게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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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남들보다 30분 일찍 학교에 가서 못미친 내 과제를 교수님께 컨펌받아야했다. 남들보다 못하니, 부지런해지는 수밖에 없다. 남들보다 못사니,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스피커에선 래퍼 머쉬베놈의 논산이라는 곡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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