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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Jan 24. 2023

깊고 깊은 '짐 정리'의 늪

태평양 건너 이주하기

이민 준비의 첫 번째 단계는 <짐 정리>였다.


우리는 4인 가족.

게다가 그중 2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본인과 관련된 짐, 특히 책과 장난감의 양은 엄청나지만, 정리에는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영유아 상전 마마들이시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사를 해도 몸살로 사나흘은 앓아누울 판에 태평양 건너 이주라니! 이 얼마나 어마무시한 프로젝트인지 두 말하면 잔소리, 세 말하면 입 아프지 않은가?




나름 정리를 잘하는 편이라고 자부하는데 그럼에도 ‘이주’는 정말이지 너무 어려웠다.



어려웠던 첫 번째 포인트는 분류.


우리의 짐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어야 했다:

9월 중순 해외이사로 보낼 짐,

11월 중순 출국하면서 직접 들고 갈 짐,

해외이사 후 2개월 체류할 동안 사용하고 출국 전에 정리할 짐.


해외이사를 보내는 시점에는

이게 필요할지, 안 가져가서 후회하진 않을지, 가져갔다가 결국 버리게 되진 않을지, 이런 거까지 챙기는 게 맞나, 가서 사면 되지 않을까, 여기서 버리고 거기 가서 새로 사자니 미친 짓 같기도 하고, 한국에서 두 달은

더 살아야 하는데 나중에 짊어지고 가야 하나 갈팡질팡했고,


막상 출국을 앞두고 집을 싹 비우고 가방을 싸면서는 생각보다 남은 짐이 너무 많아서 미친 듯이 후회했다. 어떤 것들은 그냥 해외이사로 보낼 걸, 또 다른 것들은 진작 버릴 걸 하면서…




짐 정리하면서 더 힘들었던 건 사실 두 번째, 엄청난 양의 쓰레기였다.


물론 나 혼자만의 짐은 아니지만,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버리고 또 버리고 계속 버리려니 죄책감이 들었다.


이렇게 버려질 물건이라면 애초부터 필요하지 않거나, 적어도 없이 살 수 있다는 건데 나는 왜 그렇게 사제꼈나?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맥시멀리스트였던 걸까?

전반적인 나의 소비 습관에 대해 점검이 필요하다!



나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지기까지 했고, 미국에 가면 꼭 필요한 물건들 외에는 사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그렇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쿠팡을 떠난 나는 아마존의 프라임 노예가 되어 오늘도 장바구니를 채운다.



이놈의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 소비하는 인간),

역 이민이라도 가야 정신 차리려나? 하하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깨끗하게 비워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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