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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오는 책들,, Chat GPT 로 쓴다며?

by 마음정원사 안나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다가 옆에 있는 커플이 하는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요즘 서점에 나오는 책들 중에 Chat GPT 로 쓴 책이 많다며?"


아마도 드러나지 않았을 뿐 요즘 서점에 나오는 책들 중 많은 수가 AI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어떤 분은 자기가 Chat GPT 에게 던져서 얻은 답과 동일한 대답을 어느 책에서 보기도 했다고 한다.




AI 도입 직후, AI가 그림을 그려내고,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어 내면서 어디까지를 인간의 영역으로 보아야 할지, 어디부터를 AI의 창작물로 보아야 할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AI 가 만들어 낸 그림이 대회에서 1등을 수상하여서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던 아래 그림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제 로봇에게서 지배당하는 시대가 올 것 마냥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다.

Théâtre_D’opéra_Spatial.jpg 제이슨 앨런(Jason Allen)이 ‘미드저니(Midjourney)’를 사용해 만든 작품 ‘Théâtre D'opéra Spatial’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 제이슨 앨런이라는 화가는 AI 를 통해서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까지 수 주간 프롬프트 작업을 하여 무려 900여장의 그림을 뽑아 내었고, 그 중에서 top 3 를 선별하여 또 다른 AI 프로그램으로 업스케일링 하여 캔버스에 인쇄해 내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양철로 된 로봇이 자동으로 뚝딱뚝딱 그림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어떤 '인간'이 900번이 넘는 시도를 통해서, 고도로 섬세한 선별 작업을 통해 뽑아낸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이전에 그에게는 매우 분명한 목표, 그러니까 원하는 이미지가 있었을 것이고, 그는 이 의도가 잘 전달되록 하기 위해 수없는 시도를 한 것이다. 나같이 그림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왜 이 그림이 좋은지도, 어째서 1등을 했는지도 모르기에 아마도 내가 그림을 뽑아 냈다면 900장이 아니라 가장 먼저 나온 그림만 보고서 "우와 AI 가 그림을 그려내다니 너무 신기하다" 라고 하며 바로 제출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예술적인 안목이 없는 아무개가 미드저니를 통해서 그림을 그려낸다고 해서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의 미술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하는 그림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AI라는 도구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의 안목이 높아야 결과물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AI 가 글을 써 주는 시대가 되면서 모두가 대필작가를 가지게 되었다.


AI는 자료 찾기를 도와주고, 맞춤법과 교정교열을 포함한 윤문을 대신해서 어색한 표현도 매끄럽게 만들어주고, 논리적 근거를 보강해 주기도 한다. 누구나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만능 글쓰기 보조작가를 얻은 셈이다. 그런데 왜 AI를 통해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할까?


1.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료를 제공할 뿐, 저자의 진정성 있는 메세지나 통찰력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글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의 줄기를 타고 흘러가는 것이며 수많은 예시와 근거는 결국 저자의 생각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 또한 수많은 정보 속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그만의 독특한 관점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AI에 의존하다보면 글의 진도가 안나가는 것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채 데이터의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2. AI는 독자들에게 맞는 언어를 선별해 내지 못한다.

전문적인 주제의 글쓰기를 하는 경우,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일반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단어 사이의 갭이 있다. 그런데 보통 작가들은 해당 필드에서 오래 일하면서 이런 용어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낯설게 느껴지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AI 가 여러 안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을 선별해 내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저자가 좋은 단어를 선별해 내는 눈을 가지지 못하면 AI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대중에게 와닿는 글을 써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전체적인 구조를 짜고 맥락을 정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AI는 대답하는 과정에서 학습한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기도 하고 순서를 뒤죽박죽 만들기도 하는 등 아직 장문의 글에서 전체적인 맥락을 일관되게 잡아가는 것에 어려움을 보인다. 책을 쓰는 것과 같은 방대한 양의 글쓰기의 경우 AI 에만 의존하다가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데에서 무너질 수 있다. AI 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체 구조에 대한 생각을 저자가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AI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생각이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잘 읽히는, 좋은 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그에 맞게 AI를 조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맹점은 잘 정리된 나만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정립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글을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좋은 생각을 정리할 수 없고, 좋은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AI 를 통해서는 좋은 글을 써낼 수 없다는 뫼비우스의 띄와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AI의 도움을 받는 것은 생각을 외주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더 매끄럽게 구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뿐이다. 시중에 나온 책 중에서 AI의 도움을 받아서 잘 써낸 책이라면 그 저자에게서 또렷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AI 시대라 하더라도 우리는 생각하는 훈련을 내려 놓을 수 없고, 이 생각하는 훈련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방식인 글쓰기를 완전히 내려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매진하게 될지 모른다.


글쓰고 생각하는 삶을 응원한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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