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할 무렵, 내 피드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은 Toss, Market Kurly, Publy, I hate Monday 와 같은 핫하게 떠오르는 스타트업들의 이야기였다.
오래 전 읽은 어느 신문 기사에서 독일이 선진국인 이유는 단단한 중소기업들이 나라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2000년대까지만 해도 대기업 아니면 좆소기업이라고 불리는 열악한 근무 환경을 자랑하는 중소기업으로 양분될 뿐인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은 묘연해 보였다.
그러던 우리나라도 2010년 중후반쯤 되면서 작은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을 치고 나가는 성장 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빠르고 쉬운 금융으로 기존 금융권의 아성을 흔들은 토스, 새벽배송이라는 혁신적 아이디어로 유통 대기업들을 긴장시킨 마켓컬리, 고급 콘텐츠 시장을 온라인에서 세련되게 구현한 퍼블리, 돈 안되는 패션 양말을 브랜드화 시킨 아이해이트 먼데이 등등 말이다.
사주에 '금'이 많아서 결과 지향주의, 성과 지향주의 성향을 가진 나는 무조건 레버리지를 많이 할 수 있는 곳으로 취업할 곳을 찾은 것 처럼 퇴사 이후에도 무엇을 해야 레버리지를 최대로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의 가장 우선순위였다. 그러다가 당시 혜성같이 떠오르는 유니콘들을 보면서 스타트업을 하면 저렇게 레버레지를 극대화 할 수 있는거구나 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이 너무 멋지다는 생각과 함께.
퇴사하고 남는 시간에 스타트업 이벤트들을 찾아 다녔다. 보통 그런 곳에서 함께 일할 파트너들을 만난다고 하는데 열심히 명함을 돌리고 인사를 나누어도 나처럼 할일 없는 백수들만 잔뜩 있는 것 같은 기분, 어디서 대체 세상을 바꾸는 천재같은 파트너들을 만난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이벤트를 열심히 찾아 다닐수록 스타트업에 대한 꿈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쪼그라들었다.
잡지 인터뷰에서, 참석한 행사에서,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들이 나와서 경험을 나누는 것을 들을 수록 이 로켓처럼 수직상승하는 스타트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하루하루를 몸을 갈아 넣어야 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도 한 두해 열심히 하면 성과가 나는 것이 아니라, 보통 7년 8년을 불확실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알 수 없는 미래를 그려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것이 스타트업의 현실임을 체감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게 만든 스타트업 대표들의 말이 몇 가지 있었다.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달리는 기차에 탄 것과 같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 기차에서 언제든 내릴 수 있지만 대표만은 절대 내려올 수가 없습니다." - 스타일쉐어 대표
"스타트업은 하루하루 몸을 갈아 넣는 일이다." - 마켓컬리 대표
"저희가 이 일을 8년째 하고 있는데, 7년째에 알았어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정의를" - 연세대학교 강연에서 어떤 스타트업 대표의 말
와우.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잘해나가고 있는 상위 1%의 스타트업 CEO들도 이렇게 하루하루를 겨우 헤쳐나가고 있다니. 투자자들이 인정한 최고의 인재들 조차도 앞이 보장되지 않는 막막함을 안고 십여년을 버텨나가는 것이 스타트업인데, 하물며 일반 기업에서도 중간도 겨우 해낸 내가 어떻게 스타트업을 하겠다는건가. 그런데 나는 또 이상하게 운이 좋아서 이런 데에 잘못 발을 들이면 투자금만 왕창 받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나 뿐만 아니라 수십명의 생계를 위협할 수도 있겠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자발적으로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기존에는 부모님의 기대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부합하게 살기 위해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강요하며 살아 왔었지만, 이제 4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더이상 남들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그 보다도 내가 잘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덤비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이미 12년간의 사회생활을 통해서 뼈아프게 겪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두 번할 용기와 에너지가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부터 내게 필요한 것은 내 안에서 진짜 내것과 내것이 아닌 것을 솎아내는 일이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남들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내가 진짜 잘할 수 있는 것과 잘 했으면 하는 것 사이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삶과 남들에게 멋있게 보이는 삶 사이에서.
덤불 속에서 가시를 발라내고 그 속에서 보드라운 이파리를 솎아 겸허하게 나를 생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타이밍이 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