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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계획이 없는 삶이 무력한 삶이라는 통념에 반박하며

by 마음정원사 안나


한국에 뿌리깊이 내린 빈부격차의 비극을 보여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는 유난히 ‘계획’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극중에서 가난한 집안의 가장으로 나온 송광호가 대학 증명서를 위조한 아들에게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라며 자랑스러워하던 장면은 아마도 2019년 영화가 개봉된 해에 가장 많이 회자된 장면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들의 놀라운 계획과 달리 홍수로 인해 이재민 수용소의 차가운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운 처지가 되자 극중에서 송광호는 망연자실한 듯 이렇게 말한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왜냐? 인생이 계획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되지 않거든.” 반지하에 물이 가득차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그렇게 거역할 수 없는 삶의 물살에 떠밀려 체념하듯 힘없이 고백한다.


무계획.png 기생충 - 무계획

봉준호감독은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린 주인공을 무력하게 그려냄으로써 이렇게 굳건하게 계층을 가로막고 있는 사회적 구조적 한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지나쳤던 이 장면에서, 나는 과연 계획하지 않는 삶이 비단 하층민의 무능함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질문해 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엘리트층을 대표하는 지식인 중의 한명으로 여겨지는 ‘이동진’은 그의 모토이자 인생 철학을 이렇게 말한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그는 유튜브 ‘최성훈의 사고실험’에 출연해서 그 짧은 문구에 대해 덧붙여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인생 전체를 성실하게 살면 어떤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거든요.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고요. 인생 전체는 아무리 열심히 살고 특정한 목적을 향해서 가려고 해도 얼마든지 또 다른 쪽에서 표류할 수 있어요. (중략) 넓은 시간을 인간이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인간이 약해서이기도 하고 인간이 갖고 있는 작은 힘보다는 외부의 힘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넓은 시간은 통제 못 하고요. 이걸 세분화하면 그나마 통제가 가능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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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기생충의 주인공이 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삶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어떤 목적이나 계획에 따라 살기 보다는 삶에 대한 통제권을 내려놓고 사는 자세를 그 또한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비즈니스로 성공시켜서 수많은 사람들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한 조수용 전 카카오대표도 얼마전에 낸 책 ‘일의 감각’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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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매 순간 정말 운이 좋았다는 겁니다. 고백하자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집념을 가지고 노력한 적은 없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늘 꿈을 향한 의지가 부족하며 스스로 게으르다고 느낍니다. 다만 그때그때 당면한 일 만큼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최장수 인기 코미디언인 유재석도 TV에 나와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목표나 계획을 갖는 걸 애초에 싫어해요. 대신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합니다.” 겸손인듯 보이는 그의 말에는 목표나 계획이 오늘의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며 지금 직면한 일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집착하고 고민하며 삶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깊은 인생 철학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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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개개인의 인생철학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비즈니스와 같이 냉철한 세계에서라면 이런 무계획적인 삶이 통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방식의 사고는 우리가 가장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비즈니스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비즈니스의 세계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나름의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시장에 뛰어들지만, 실제로 첫 계획대로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배달의 민족을 만든 김봉진이 애착을 가지고 시작했던 첫 사업은 가구사업이었고, 토스 창업자 이승건대표가 최초에 만들었던 서비스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였다. 첫 시작과 다르다 못해 애초에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혼미해지는 타이밍에 소가 뒷걸음 치다가 쥐를 잡는 격으로 사업모델을 찾는 경우가 하나 둘이 아니다.


그래서 스타트업 씬에서는 “빠르게 실패하기”를 계획한다. 빠르게 시도해서 무엇이 실제로 작동하고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 찾아낸다는 의미다. 이는 바꾸어서 말하자면 비즈니스가 그 무엇도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오히려 빨리 실패해 보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역설적인 현실을 반증하는 말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렇게 힘겹게 비즈니스 모델을 찾은 스타트업의 70%가 5년 내에 폐업을 한다. 실제로 사업을 키워 나가면서도 계획대로 이루어 지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작은 기업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면 매년 눈부신 계획을 발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수명이 평균 20년내에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는 일에 있어서도 계획을 세우되 그것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첫 시작때는 모두 다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 그것을 구현하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파도가 몰아친다. 실제로 해보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내가 잘 할 수 없는 영역일 수도 있고, 트렌드가 바뀌기도 하고, 예상했던 것과 다른 시장의 반응이 오기도 한다.


특히나 요즘은 트렌드가 바뀌는 주기가 너무나 짧아져서 2-3년 전에는 모두가 관심이 있던 것이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애초의 계획을 계속 붙잡고 있다가는 나도 모르게 시장의 관심과 먼 안드로메다에 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부단하게 현 상황을 주시하고 그에 맞게 최적화를 해나가야 한다.


어쩌면 애초에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을 세우고 그 결과를 보고 계속해서 경로를 수정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유연하게 마음을 가지기를 바란다!


완벽한 계획대로 살아가는 사람보다도 유연하게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는 이에게 복이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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