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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를 맸다고 모두 신사는 아니다

분노는 어디까지 정당한 것일까

by 마음정원사 안나

비즈니스라고 하면 뭔가 감정을 배제하고 모든 것이 질서와 논리로 진행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실제 그것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곳으로 더 큰 이익을 위해 개개인의 소소한 이익이나 감정을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여러사람이 얽히고 설켜 일하고 있는 곳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인 감정이란 것이 감추어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 가장 아껴주는 사람이 모여서 이룬 가족공동체 안에서도 갈등을 경험하는데 하물며 나와 성향도 성격도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일을 해 나가야 하는 회사라는 집단 안에서의 갈등이야 오죽하랴.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도, 그리고 다른 사람도 이성의 경계를 넘어설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중 몇몇 사례에서는 결국 본능이 이성을 덮쳐 버려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주먹다짐.JPG


회사에서 주먹다짐이 웬말인가

많은 사람이 좁은 회의실에 가득 차서 회의를 하던 때였다. 회사의 중대한 이슈에 대하여 논의를 하는 자리인 만큼 모두가 긴장한 상태로 참석했다. 모두들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철저한 책임감과 소명의식으로 회사를 살릴 수 있는 방향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그 중에서도 회사에 대한 열정이 유독 강했던 A,B 두 사람은 첨예한 대립의 상태에서 의견을 주고 받았고, 대화가 격정적으로 변하고 있음에도 말의 수위는 수그러 들 줄 몰랐다. 결국 비아냥거리는 듯한 A씨의 말에 B씨는 이성을 잃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A씨의 멱살을 잡는 행동을 저질렀다.



비아냥 거린 A씨, 폭력을 행사한 B씨 누가 잘못한 것일까?

결과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사람은 화를 참지 못해서 폭발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사람이다. 그들의 분노가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고 해도 신체에 위협적인 행동을 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비난의 화살이 꽂히기 마련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그리고 나조차도 가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사건들을 겪으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분개하는 모습은 어디까지가 정상적인 것일까?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상황들에 대해서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 것일까?


화는 고통을 고통으로 갚아주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다.
-아리스토텔레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마주하는 현실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사실 그 시대에는 지금 보다 훨씬 더 심했다. 스토아학파에서 현자 중 현자로 불리는 세네카는 화를 유발하는 세상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현자가 한 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절대 그칠 일이 없을 것이다. 도처에 범죄와 악덕이 득실득실하다. 일이 징벌로 다스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범죄들이 저질러진다. 우리는 사악함이라는 강력한 적수와 교전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고대와 중세 시대를 들여다보면 증오와 보복에 의한 유혈이 낭자했다고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삼총사'와 같은 고전에는 원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명예를 실추시킨 자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법치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 즉 다시 말하면 제 3자가 잘잘못을 판명하여 대신 체벌을 하는 제도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개인의 명예와 체면을 위해 상대방을 죽이거나 결투 중에 본인이 죽는 일은 빈번했다.


하지만 국가의 제도가 곤고해지고, 상업이 부상하면서 폭력의 역사는 조금씩 사그라들게 되었다. 복잡한 연결 관계를 통해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상업의 특성상 비록 상대가 적일지언정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거래를 해야 더욱 이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오랜 문명화 과정의 끝에 오늘날 우리는 밥을 먹다가 앞사람이 든 칼에 찔릴 걱정을 하지 않고 식사를 마칠 수 있게 되었고, 내 앞에서 웃으면서 농담하는 사람에게 코와 귀를 베일 걱정을 하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스티븐 핑거*는 오늘날 사람들이 예의 없는 말을 더욱 지껄일 수 있게 된 것은 그런 말을 하더라도 내가 오늘 밤에 사지가 찢겨서 죽임을 당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전하기 때문에 더 함부로 말한다니 참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스티븐 핑거: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의 저자


막말에 대처하는 자세

2016년 개그맨 막말 사건을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때 연애대상 진행자였던 모 개그맨는 관람석에 앉아 있는 배우 성동일에게 '배우 맞으시냐, 옷을 당황스럽게 입으셨다'는 불쾌한 언행을 하여서 전 국민에게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누가 들어도 무례하고 도를 넘은 발언이었다. 여기서 만약 성동일이 화를 냈으면 아마도 그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는 상황이 불편하게 될까 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웃어 넘기 지도 않았다. 성동일은 개그맨의 얼굴을 무표정으로 똑바로 처다 봄으로서 상대방의 무례한 행동에 대하여 정면으로 경고하였다. 이 비언어적 제스쳐는 어떤 말보다도 강력하였다. 네티즌들은 그의 반응에 공감했고, 결국 개그맨은 본인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링크참조)


성동일의 대응은 '화'가 아닌 '이성적 대응'이 얼마나 더 효과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그 순간에 성동일이 이성적 사고를 통해 전략적으로 대처했다기 보다는 본능적으로 반응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어쨌거나 그는 그 자리에서 무례함을 참고 넘기는 굴욕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고, 반대로 화를 내는 원초적인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은 품위가 있으면서도 무엇보다도 '효과적'이었다.



화는 조급함을 부르고, 적을 위험에 빠뜨리고자 하는 욕망은 경솔함을 불러들여 오히려 우리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 가장 믿을 만한 지혜는 상황을 오랫동안 신중하게 살피고, 끝까지 자제심을 발휘하고, 정해진 목표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다. - 화에 대하여 by 세네카 -



세네카는 그 어떤 권력자도 모욕을 당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분노로 대처하면 세상은 화염으로 가득찰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 권력자들 조차도 모욕을 견뎌낸다. 세상을 호령하는 사람들 조차 때때로 참을 수 없는 일을 견뎌 낸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분노를 잠재우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분노를 유발하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는 가장 먼저 냉정과 이성을 찾을 것이다.

차가워 지자. 냉정해 지자.
분노를 휘발 삼아 상대에게 해를 가하려는 격정을 진정시켜라.
대신 이성적으로 판단하자. 이것이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분명히 알자.
그리고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냉철하게 행동 하자.


#THEREISBETTERWAY 미국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도 분노를 배제한 더 이성적이고 나은 방법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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