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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정원사 안나 Jul 29. 2020

착한 사람이 NO 하는 방법

작은 목소리도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소위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릴 적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우리가 남자아이들 못지않게 씩씩하고 자립심 있게 자라기를 바라셨고, 어머니는 그와 반대로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질까 노심초사 항상 불안해하며 우리를 기르셨다. 이런 서로 다른 두 분 밑에서 자라며 내 안에는 걱정이 많고 예민한 엄마의 기질과 장군 같은 아빠의 기질이 공존하며 서로 뒤섞여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대체로 나의 성격은 엄마의 여린 면을 더 닮았었다.


부모님은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선하디 선한 품성을 지니고 계셨고, 그 밑에서 나는 대체로 착한 것이 미덕이라고 배우며 자랐다. 그런데 착한 딸이었던 나에게 양 부모님께 물려받은 기질적 충돌이 처음 일어난 것은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였다. 중학교 때부터 조금씩 반항을 했던 언니와 달리 자아 발달이 늦었던 나는 무조건적 복종 수준으로 부모님 말씀을 들었었다. 그러다가 스물두 살 때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캐나다에서 교환학생으로 8개월을 살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나갔던 첫 독립생활이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행복했던 교환학생 생활  

외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새로운 문화에 지체 없이 뛰어들며 나의 씩씩한 기질을 발휘해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화장하는 법도 배우고 학교에서 공짜로 하는 각종 공연들을 다니며 '취미생활'이라는 것도 해 보았다. 난생처음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 보고 가보고 싶은 곳에 가보는 즐거움은 비길 데가 없었다. 항상 이것저것 안 되는 것이 많았던 집에서의 삶에서 벗어난 나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생각보다 꽤 컸나 보다.


캐나다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2시간을 내리 울었다. 옆에 앉은 교포 아주머니가 무슨 일이 있었냐며 말 못 하는 나를 다독여 줄 정도였다.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던 친구도 하루에도 몇 번씩 집에 전화해서 통화하며 한국이 그립다고 했는데 나는 다시 나의 자유가 없어진다는 생각에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 돌아오니 모든 것이 너무 달라 보였다. 집도, 부모님도 똑같았는데 내 눈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너무나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예전과 같이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안 되는 기준과 되는 것의 기준을 더 이상 맞추기 어려웠고, 콘센트의 코드를 뽑는 것부터 시작해서 옷 사는 것 까지 모든 것을 통제당하는 것에 숨이 막혀 들어가는 것 같았다.


 

복종 대신 혁명을 택한 '착한 딸'  

기존의 '복종'의 자세를 벗어던진 내가 선택한 것은 '혁명'의 자세였다. 부모님의 말씀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고, 그 도전은 작은 용기로는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그것은 거대한 벽이었고, 그것을 깨부수려면 엄청난 파괴력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권리를 찾고 행복해 지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모아서 두 눈에 레이저를 뿜으며 부모님께 반항을 했다. 돌변한 나의 모습을 보고 엄마가 너무나 큰 상처를 받으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부모님의 눈은 갑자기 나타난 괴물을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내 주장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던 서투른 나로서는 그것이 유일하게 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행복을 찾는 길이 엄마의 불행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그런 불행한 일이 한동안 반복되었다.  


진짜 대화를 하는 법

이제와 돌아보니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대화법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말 그릇에서 김윤나 저자는 부정적인 감정이 마구 올라올 때 그 안에서 진짜 감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감정 안에는 간절히 전하고 싶은 속내나 상대방에게 바라는 마음이 있는데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욱하며 화를 내거나 과도한 감정 표현으로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지는 모르지만 나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게 되고, 진짜로 원하는 결과 없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수 있다.


소위 '착한 사람'들이 나처럼 이런 양극단의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NO라는 말을 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심리적 장막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보통 상황을 회피하거나 돌려서 다른 방향에서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정면으로 대응하기로 결심이라도 하게 되면 내가 외치는 NO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아주아주 큰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같은 상황에서 엄마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저도 성인이니 제 선택은 제가 할게요'라고 조곤조곤 이야기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굳이 그토록 큰소리로 화를 내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고, 내 목소리는 충분히 힘을 갖고 전달된다는 확신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여리디 여린 엄마의 마음에 생채기를 그렇게 내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는 아무리 작은 목소리라 하더라도 엄청난 고함을 지르는 것만큼의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작은 목소리는 큰 목소리만큼이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가족은 물론 서로가 각자 생각과 처한 상황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회생활에서는 나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나를 적절히 표현하면서도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덜 주기 위해서 오늘부터라도 조금씩 작은 목소리로 NO를 표현하는 훈련을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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