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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정원사 안나 Jun 18. 2020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

이제 다시 한번 당신의 삶의 가치와 비전을 떠올려 보자.

인사담당자의 충격적인 조언

대학교 4학년 졸업반 때였다. 학교에서는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진로상담 행사를 했다. 기업의 인사팀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이 학교로 찾아와서 직접 상담을 해 주는 이벤트였다. 취업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 놓은 게 없던 나로서는 직접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전공과 적성에 맞추어서 취업을 하려면 어떤 부서가 좋을지, 커리어패스는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지와 같은 실질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주저 없이 신청서를 제출했다.


행사 당일, 상상은 잘 안되었지만 직장인이 된 나의 미래를 그려 보며 혹시라도 돌아올 질문에 대비하여서 이것저것 대답을 준비했다. 최대한 직장인스럽게 보일 옷으로 골라 입고 약속된 날 진로상담 센터에 갔다. 국내 대기업에서 20년가량 일을 했다는 그분은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작은 방에 나와 같은 처지의 3-4명의 학생들이 둘러앉았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가볍게 시작된 대화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니, 어쩌다 보니 그렇게 흘러간 게 아니라 20년차 인생 선배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려고 작심하고 이곳에 온 것 같았다.


회사는 독이든 막대사탕 같아요. 봉급이라는 달콤함에 한입 한입 베어 먹지만 그 끝에는 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결국 독을 먹게 되는 거죠.


상심한 듯한 표정의 그는 슬픔이 배어 있는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진짜인 건지 아니면 내 기분 탓에 보이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갔다.

Photo by whoislimos on Unsplash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인사팀으로 근무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명문대 졸업생의 20년 된 조언은 충격적이었다. 화려한 경력이고 뭐고 모든 거품을 다 걷어내고 진짜와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내가 직장을 들어가기도 전에 맞이한 직장인의 민낯이었다. 근데 그 이후로도 취업 상담 부스에서, 심지어 면접장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당시에 모두가 가고 싶어 하던 카드사의 마케팅에 근무하던 한 직원은 '이런 회사에 왜 오고 싶어 하냐'며 면접에서 실소를 날렸다. 배부른 소리라고 하기에는 그의 얼굴이 너무 시커매서 숨을 잘못 쉬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간이 안 좋아져서 얼굴이 시커먼 사람들을 안다. 그들은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얼굴이 그렇게 되었다.



적성에 맞지 않았던 나의 회사생활

그들의 말은 뒤로 한채 나는 우선 취업을 해야 했다. 전공이고 적성이고 뭐고 우선 나를 받아 주는 곳이라면 들어가자는 심산이었다. 여자에 문과생인 나를 받아주려는  회사는 거의 었고, 수많은 탈락을 거듭한 끝에 생각지도 못한 제조업의 기획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획의 '기'자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을 뽑아준 회사에 고마운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업 입장에서 봤을 때 효율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회사의 일은 나와 맞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주료 사용하는 용어는 전부 약어로 되어 있어서 회의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외계인들끼리 대화하는 것만 같았다. 주요 이슈사항도 엔지니어링에 기반한 내용이었다.


"기계 하부에 들어가는 육각 모양의 나사가 불량이다. 이것을 교체하는 데 네모 나사로 교체해서 비용을 얼마 절감하자"


기계 하부에 도대체 어디에 나사가 꽂히는 것인지 아무리 상상을 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육각 나사보다 네모 나사가 비용이 더 절감된다는데 어째서 그런 건지 나만 이해가 안 가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기계에 들어가는 수만 개의 부품들은 예고 없이 말썽을 일으켰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연구소, 생산, 마케팅, 회계까지 거의 전 부문의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원리도 알 수 없는 것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아무리 들어도 와 닿지 않는 일을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백 년을 일한다 해도 도무지 이 일을 잘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마케팅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고, 거기서 조금 더 일을 즐기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자신의 삶의 가치와 비전에 맞는 일을 할 때 가장 잘하게 된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이런 구절이 있었다.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면 좌절감이 찾아온다. 반면에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하는 일을 좋아하고, 가장 높은 가치와 비전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갈 때 사람은 좌절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다.
- 레버리지 by 롭 무어-


가치와 비전에 부합하는 삶이라... 어릴 적 누구나 자신의 삶의 가치와 비전을 꿈꿔 봤겠지만 그것에 부합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 사회에 나갈 시점이 되면 '당장 돈을 더 많이 주는 곳', '기반이 잡혀 있어서 안정적인 곳'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가? 가치와 비전을 추구하는 삶은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근데 저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할 경우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일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경우 사람은 하루하루 마지못해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회의감을 품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자신의 가치와 부합하는 일을 할 때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끌어내어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고 결국 가장 잘하게 된다. 그것은 길게 보았을 때 인생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치에 부합하는 일이란 처음부터 화려하거나 탄탄대로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많은 경우 초기에는 많은 시간을 큰 소득 없이 버텨야 한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시간을 못 견뎌서 적성과 관계없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기간을 견뎌내면 보상은 복리의 법칙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나의 노력이 누적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빛을 발휘하고 인생을 통해 삶의 비전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비전을 품고 있을 때만이 실패의 경험도 자산이 된다

우리가 직장에서 괴롭게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 이유도 결국 나의 비전과 가치에 따라 삶을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것이다. 물론 비전이 있더라도 사회 초년생일 때는 그것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선 세상에 뛰어들어서 무엇이든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경험을 해 보아야 어떤 것이 나와 맞고 어떤 것이 맞지 않는지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조각 작업은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한 것처럼 경험을 통해서 나와 맞지 않는 것들을 하나씩 쳐내려 갔을 때 진정한 내 삶의 형태를 찾게 된다. 하지만 비전을 가슴에 품지 않은 상태에서의 경험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게 만든다. 나 같은 경우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와 맞지 않는 경험을 했는 데도 이것을 빠르게 제거하지 못하고 거기에 오래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버렸던 것은 가슴속에 있던 비전을 포기했었기 때문이다.


Photo by Riccardo Annandale on Unsplash


이제 다시 돌아가서 당신의 삶의 가치와 비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이다

당신은 자신의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어릴 적 한 번쯤 생각해 봤던 삶의 목적 같은 것 말이다. 어린 시절 우리가 그냥 시시한 존재로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화 속에서 지구를 지키는 정의의 용사를 보면서 나도 주먹을 불끈 쥐고 세상을 밝히기 위해 싸우겠다고 결심하던 용감한 어린이들 아닌가?


우주를 정복하거나 대통령이 되는 꿈이 아니더라도 막연하게 들던 생각을 떠올려 보자. 왜 저렇게 밥을 굶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지, 전쟁터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사람들은 뉴스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건지... 어릴 적 당신이 보았을 때 이해가 안 갔던 것들이 많지 않았던가? 왜 아무도 나서지 않지? 이런 세상이 된다면 좋을 텐데 하며 생각했던 것들이 있지 않은가? 학교를 더 재미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던가 아니면 멋진 호텔에서 럭셔리하게 파티에 참석하는 세속적인 욕망이더라도 좋다. 당신의 가슴 깊은 곳을 울리게 한 그런 깊은 인상들을 다시 한번 꺼내보자. 그런 생각들 안에 당신 인생의 비전이 숨어 있고, 그것이 삶 전체를 이끌어 나갈 때 당신은 가장 똑똑하고 멋진 사람이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내 삶을 통해서 이루었으면 하는 이상적인 꿈을 다시 적어보자.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라도 그러한 추상적인 가치를 향해 노력을 해 나갈 때 나도 모르게 엄청난 에너지가 발휘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무모한 꿈에는 무모할 정도의 에너지가 솟아나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게 바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원이고, 나도 모르는 내안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하는 길이다.  무모해 보이는 것이라도 도전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문명은 조금씩 나아져 왔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도 무모한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있다. 이제, 당신도 그 사람 중 한 명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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