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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육질마음 Aug 02. 2020

옆자리의 그 사람은 지금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마음에도 팔다리가 있다

회사의 전설이 된 그녀    

우리 회사에는 조현병 환자가 있었다. 나는 그녀가 있는 곳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경찰이 출동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정수기에 독극물을 태웠다고 신고를 했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 요란하게 도착한 경찰은 생수통의 물을 확인하고 그녀와 그녀 주변 인물들을 불러 차례대로 인터뷰를 한 뒤 결국 정수기에는 독극물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돌아갔다.


근데 그 뒤로도 이분의 기행은 계속 이어졌다. 월요일 출근해서는 옆자리에 앉은 남직원에게 토요일 밤에 왜 자신의 집에 찾아와 몇 시간 동안 문을 두드렸냐고 했고, 또 한 번은 그 남직원이 자신의 브라 끈을 내렸다며 업무 시간에 괴성을 질러댔다. 물론 그 남직원은 그녀의 집이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사무실에서 본인보다 10살은 족히 더 많은 선배 직원의 브라 끈을 내릴 만큼 정신 나간 사람은 아니었다. 멀쩡히 앉아 일하다가 이 모든 황당한 일을 겪은 남직원은 어쩔 줄 몰라하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누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사무실의 사람들은 모두들 오늘은 그녀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몰라 노심초사하면서 출근을 했다.


언뜻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이 어떻게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주변인에게 듣기로 그녀에게는 딱한 사정이 있었다. 그녀는 아프신 어머니를 모시고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주변에 딱히 그녀를 도와줄 사람도,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무거운 삶의 짐은 온전히 그녀만의 몫이었다. 그녀도 한때 젊고 생기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나날이 건강이 악화되는 노모와 병원비로 경제력이 악화되자 점차 우울증에 빠졌고 회사에서의 업무 능력은 최저치를 찍었다. 당연히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계속해서 받았고, 그것이 그녀에게 다시 또 다른 스트레스로 쌓이면서 결국 정신병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인사팀에서는 그녀를 다독여서 휴직계를 내도록 했고 후에 몇 년 치 연봉을 챙겨주어 권고퇴직을 시켰다. 씁쓸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도, 회사도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회사의 전설처럼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는 이런 비슷한 레퍼토리가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반복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동안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남자가 5~12% 여자가 10~25%이다. 일정 비율의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정신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타고 난다. 하지만 이것의 발현 여부는 환경의 영향이 크다. 같은 사람이라도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 있으면 우울증이 발현되지만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  

우리는 보통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료해야 할 것으로 인식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는 인지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 팔다리가 있고, 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치고 있으니 모든 기능이 문제없이 작동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도 몸처럼 팔다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하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팔이 잘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살아가면서 겪는 마음의 사고로 인해 마음이 작동하는 어느 부위가 다칠 수 있는 것이다. 경미한 사건은 금세 다시 새살이 돋아 나기도 하지만 너무 큰 충격이나 견디기 힘들 정도의 스트레스는 마음의 팔이나 마음의 다리를 절단시켜서 평생 절뚝거리며 살아가게 만들기도 한다.


만약 주변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사람이 있다면 당장 병원에 보내서 수술을 받도록 할 것이다. 그래서 다리를 빨리 낫게 병원에 입원시킬 것이다. 그리고 수술 후에도 목발이나 휠체어를 주어서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안정을 시킬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팔다리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은 마음에 사고가 나도 상대방이 당장 일을 하지 못하고 수술을 받아야 하며 회복에 시간이 필요 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뼈가 부러졌지만 평상시와 똑같이 생활을 해야 하고, 오히려 성치 않은 몸 때문에 남들만큼 일할 수 없어서 더 가혹한 질책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상처 난 몸을 이끌고 회사를 다니다가 마음이 기형이 된 채로 삶을 살아간다.


살면서 누구나 마음을 다치는 순간이 온다  

누구나 살면서 사고를 당할 수 있고 그것이 내가 될 수도 있다. 나라고 언제나 마음이 강건하여서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항상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우리도 살면서 마음의 벼랑 끝에 내몰릴 때가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회사가 도와주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손을 밟지 않도록 최소한의 보호를 해 준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회사에서 오고 가며 사람들과 지나치지만 그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멀쩡해 보이는 그 누군가는 지금 마음에 사고를 당했거나 병이 악화되어 수술이 필요한 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가 던진 말 한마디가 치유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상처를 더 깊게 만들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불구로 만들 수도 있다. 상대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최소한 오늘 내가 내뱉는 말에 배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포함시키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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