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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갱 Jan 12. 2021

엄지손가락

그와 같은 사람이 되겠다 마음먹었다.

부모님과 우리 집의 보물인 여동생은 내가 20대 중후반이 될 때까지 나 때문에 희생당했었다.

그래 누군가의 자소설에 자주 나오는 유복하지 않은 그런 집이라 메이커 신발, 메이커 옷보다는 시장 브랜드를 챙겨 입었던 학창 시절엔 특히나 미대를 가겠다고 까부는 나 때문에 온 가족이 힘들었다.

물론 나도 초등학교 6학년 땐 친구 아버지께서 하시는 두유공장에 가서 박스를 접었고, 중학생 때는 전단지를 돌렸고, 좀 더 커서는 피자 배달도 다녔다.


고3 수능이 끝나고 나면 미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실기 준비로 바쁘다. 이때의 입시미술은 아침에 시작해서 밤늦게 까지 그림을 그리다 집을 간다. 나 또한 그들 사이에서 파스텔 가루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늦게 시작한 미술이었지만 학창 시절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기초를 짧은 시간에 떼고, 같이 그림을 그리는 입시반 친구들과의 진도에서도 뒤처지지 않았던지라 나름 그림에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이때 당시에는 유일하게 잘하는 게 그림이었던 것 같고, 그런 그림에 있어서 프라이드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가진 프라이드 때문에 곤욕을 치렀었다. 내가 낸데. 나는 내 그림을 그려.

나를 가르치는 은사님도 이런 내 고집 때문에 많이 힘드셨다. 결국엔 입시를 망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입시미술에서도 모의고사가 있다. 번번이 모의고사에서 안 좋은 점수를 받았다. 나보다 못 그리는 것 같은 친구들은 오히려 점수가 잘 나오는데 난 매번 바닥을 찍어 댔다. 너무 속상했다. 그리고 그 속상함을 감당하는 사람은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그래... 그땐 내가 참 나쁜 아들이고, 나쁜 오빠였다.


가군, 나군 시험을 끝마치고 집에 들어온 어느 날 평소 같지 않게 동생과 어머니가 거실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은 울었는지 부은 눈으로 여전히 훌쩍거리고 있었고, 어머니만 나를 반겨주었다.


"니는 먼데 재수 없게 그기서 울고 있노 드가라!"


동생은 조용히 다시 울기 시작했고, 어머니께서 조용히 입을 여셨다.


"아버지 오늘 병원 갔다 오셨다."


굳이 질문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소위 말하는 노가다 현장에서 일하는 목수이시니까. 험한 일을 하시니까. 어디를 얼마나 다치셨는지는 어머니께서 주무시는 아버지 깨지 않으시게 말을 이어 나가셨다.

병원을 다녀오신 이유는 망치질을 하다가 못을 엄지손가락에 박아 버리신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가끔 실수도 할 수 있는 거라고...


"근데... 아버지가 병원 가서 치료받고 다시 일하고 오셨다. 아니 손가락에 못이 박혀서 피를 철철 흘려서 병원을 갔는데 같이 일하는 오야지가 내한테 전화 와서 병원 뛰어갔더니 못이 박힌 체로 병원 들어가고 있더라. 그라고 못을 뽑고 치료하고 나와서는 병원 시계를 한 번 쳐다보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내보고 일하러 갔다 올게 그렇게 이야기 하드라. 왜 그러시냐고 손 다쳤으면 집에 가서 쉬지 왜 일하러 가냐고 내가 너거 아버지한테 소리를 질렀다. 근데... 결국엔 아버지 일터에 보냈다."


아무 말하지 않고 아버지가 주무시는 방의 방문을 한 번 스윽 보시고는


"아들 대학보낼려면 가야지."


그 한마디를 하시고 일터로 다시 가는 아버지를 어머니는 잡지 못하고 보내주셨다고 한다.

경상도 머시마는 우는 게 아니다. 울지 마라. 늘 듣고 살았던 말인데 눈물이 흘렀다.


방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 베개 위에 올려놓은 왼손을,

붕대를 칭칭 감아놓은 왼손을,

피가 스민 붕대 속의 엄지손가락을,

자기 못 배운 거 아들 하나만큼은 대학에 보내겠다고 그 추운 겨울 칼바람 맞으며 새벽 출근하는 아버지의 왼손을,

못이 박혀도 서러움에 아픈 것도 잊고 현장에 다시 갔을 아버지의 왼손을,

붕대까지 하고도 현장에서 조심성 없이 일하냐고 집에 들어가라고 오야지한테 혼나도 무심히 못을 집어들었을 아버지의 왼손을


나는 그렇게 안방을 나와 조심히 내방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울었다.

내 몸에 수분이 다 빠져나가라 울었다.

아버지께서 출근하시는 새벽 까지.

그렇게 나는 밤새서 울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영웅이다.


나에게 아버지는 세상 제일 멋진 사람이고, 존경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아버지는 내가 제일 닮고 싶은 그런 엄지손가락이다.


그래 우리 아버지는 나의 엄지 손가락이다.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엄지 손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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