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요새 들어서 내가 너무 계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사함.
계산하는 삶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 전에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있는 게 너무 거슬리게 느껴졌다.
미팅을 갔다가 짬이 나서 들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들이 즐비한 매대 옆으로 문학코너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졌다.
요 근래에는 나 스스로가 너무 아니 꼬아 보였다만, 생각해보니 그것 마저도 내 모습이니 미워는 하지 말자.
대신에 계산적인 모습이 좀 거슬렸기에 한동안 머리에 무언가를 채웠다면, 또 한동안은 가슴을 채워야 하겠다 싶었던 것 같다.
노란색의 이병률 작가의 시집이 보였다.
이병률 작가의 작품들은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기에 펼쳐보지도 않고 집어 들었다.
목차도 보지 않았건만 잠시 자투리 시간에 카페에 들러 읽다 보면 뭔가 쓰고 싶어 지지 않을까 싶어 메모지와 모나미 볼펜을 더 들고 와서 서둘러 계산을 했다.
귀에 잔잔한 음악을 깔고 들어선 카페 2층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시집을 꺼내어 읽었다.
몇 년만의 시집인지 약간의 두근 거림과 문장 하나하나의 감정을 다 느끼고 싶어 아메리카노 한 모금 마셨다.
문장 하나하나 꼭꼭 씹어야지.
이병률 작가는 이별을 포장 잘하는 사람이다. 살짝 저리게도 하고 무겁게도 하고, 특유의 감성으로 혼자로의 여행을 부추긴다.
이별이지만 여행이 가고 싶어 진다.
여행 중이라면 이별이 사무친다.
그리고 이내 그리워진다.
그렇게 시 몇 편을 읽고 나오는데 평소의 걸음걸이보다 느려진다.
앞을 보고 있지만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걷게 된다.
지하철 특유의 내음이 코를 찌른다. 지하도를 걷다가 문득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또 다른 쪽으로 치우쳐 거슬리지 않게 균형을 맞춘다.
그래. 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