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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t Festival Jan 07. 2019

아기보다 내가 우선이면 안 되나요?

스트레스 제로가 최고의 태교입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 순간부터 걱정과 고민에 머리털이 빠질 것 같은 시간을 3-4개월 보낸 후,

결국 고민해봐야 아무 답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덕에 나는 태교의 테마를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삼았다. 이제부터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 주는 것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자 의외로 삶이 행복(?)해 졌다. 오랜 직장생활로 시니컬한 게 천성이 된 나지만 임신 기간만이라도 긍정주의자가 되어 속편하게 살아보자 싶었다.


"언니, 임산부가 커피 마셔도 돼요?" 
"응. 한 잔은 괜찮대(하지만 두 잔 마신 날도 여러 날이라는 게 함정이다)."


"**씨, 임산부가 회 먹어도 돼?"
"네. 강하게 키우려고요. "


"**씨, 임산부가 공포영화 보면 안 돼."

"괜찮아요. 얘도 세상 무서운 것도 배워야죠."


"**씨, 오늘 야근 좀 해야겠어."

"네~ 근데 임산부 야근시키는 거 불법인 거 아시죠. 하하?"


"**씨, 태교를 위해 모차르트 클래식 많이 들으세요."

"네. 그럼요(그러나 쇼미더머니와 고등래 다시 보기 무한 반복 시청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철저한 태교(?)의 결과인지 모르지만 우리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상위 10%의 체중을 찍으며 짜증이라고는 없는, 눈만 마주치면 맨날 웃고 있어서 걱정스러운(?) 아기로 자라고 있다.




보통 임산부라 하면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조심조심 곱게 곱게, 가시는 걸음걸음 사뿐히 즈려밟고 다니라고 하지만 나는 여건 상(?) 그러지 못했다. 거의 매일 뛰어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 당시 회사까지 교통이 불편해서 오르막 내리막을 40분씩 왕복 80분을 걸어 다녀야 했다. 아기가 커지면서 어떻게 누워도 편히 잘 수가 없 아침에 일어나기는 힘들고. 씻는데도 더 오래 걸리고 게다가 튼살크림까지 바르자니, 준비시간이 1.5배는 걸렸다.


회사까지 신호등이 4개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간당간당하게 집을 나섰으니 초록불을 놓치면 경축! 지각 당첨. 초록불 이들은 왜 항상 한번 놓치면 도미노로 계속 놓치게 되는지.

어쩔 수 없이 두 발은 종종종. 두 팔은 휘적휘적. 머리 긴 산발한 뽀로로 같은 모습으로 뛰는 수밖에 없는데 같이 뛰고 있던 출근길 직장인 동지분들이 바쁘신 와중에도 동공이 흔들리면서 걱정스레 나를 보았(고마워요. 아직 세상은 따듯하네요).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아기한테 혹시 안 좋을까 작은 소리로 "야. 탯줄 꽉 잡어! 엄마 이제 뛴다?"라고 신호를 주고 뛰었으니. 아가야, 지금 생각해봐도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임산부들이 불편한 것 중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봐서', '대중교통 이용 시 다리와 허리가 너무 아파서', 그리고 '배려 없는 동료들의 언사(?)'가 있는데 좋게 생각하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이롭다.


흘깃 흘깃 보는 것은 임신부가 귀한 요즘 내가 사랑스러워서(?) 이리라.

자리 양보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내 마음만 힘들다. 요즘 힘든 사람이 어디 임산부뿐이랴. 내가 임산부 배지를 이~렇게 잘 보이게 달고 핑크 자리 앞에 서있어도 일어나지 않는 저 아저씨는. 어쩌면  매일 밤을 새우며 3개월 준비한 프로젝트를 오늘 발표하고도 무능한 상사에게 욕을 먹고 퇴근하는 길에 접촉사고까지 나서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다만 회사 동료들이 언사로 신경을 약간 쓰이게 하는 일은 있었(젊은 아기 엄마나 아빠 동료들은 그렇지 않으나 아저씨 동료들이 그리고 미혼여성 동료들이 의외로 이런 말주변 센스가 없다).


"와, 언니 배 진짜 크다. 배 진짜 많이 나왔다" 
(니 배도 나왔그등?)


"**씨, 누가 보면 만삭이야. 배가 진짜 많이 나왔네~"
(네네. 근데 부장님 술배도 만만치 않아요.)


사실 어떤 사람의 입장이 돼보지 않고서 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렇기에 배려 섞인 말도 자리양보도 절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안 받는 길이다. 돌아보면 나도 결혼 전에는 생각없이 임신한 동료에게 "어머나~배 많이 나왔네요~."라고 관심의 표현을 했었으니까.


말이라는 것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지만 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 그냥 지나간다.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배 많이 나왔다고 감탄(?) 하셨던 다정하신 부장님께도 "그쵸? 이러다가 부장님 배만큼 나오겠어요."라고 맞대응하...고 싶었으나 그냥 "그죠? 애기가 뚠뚠이에요."라고 웃고 말았다.


임신기간에 사용하는 앱인데 등장하는 아기가 얼마나 건방진(?)지 모른다. 태어나기도 전에 뭐 사달라고 조르지마.


뒤돌아 보면 임산부라서 오히려 좋은 점도 많았는데 어디를 가든 남편이 걱정하며 데리러 와준다던지, 식당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반찬이며 국을 많이 주신다던지, 미술관에 가면 대기 없이 입장이 가능하다던지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도 임신 기간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신경이 눌려서 허리가 아팠는데 (이걸 '환도선다'고 부른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치과에서 신경치료 받을 때 느껴지는 그 찌릿하고 시큰한 통증이 엉덩이 쪽에서 걸을 때마다 느껴진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렇게 환도가 서 힘들어하던 어느 날. 그날도 40분을 뒤뚱뒤뚱 걸어서 출근하고 있었는데, 폭우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우산은 뒤집어지고.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신발은 미끄러워서 넘어지지 않을까 무서웠다. 상상해보라. 폭우 속에 뒤집힌 우산을 부여잡고 뒤뚱뒤뚱 뽀로로 같이 걸으면서 겉옷은 비에 이미 다 젖어 축축해 덜덜 떨리는데, 그 와중에 신발은 미끄러운 만삭의 임산부를.


그 상황에서 주절주절 나를 달래는지 뱃속의 아기를 달래는지 나도 모르게 했던 말이 있다.

"아가. 이런 게 시련이라는 거야. 시련이 뭐냐고? 음... 시련이란, 극복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거야."


내 무의식 중에 시련은 극복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생각하는 강인함이 있었다니.

와. 나 엄마 돼도 되겠다 라고 스스로 자아도취했던 날이었다.


(계속)


철없이 간지(?) 나게 살아온 인생에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육. 알. 못. 엄마의 솔직한 육아 분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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