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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t Festival Nov 29. 2019

시터 이모님 그 애증의 이름

우리 집에 처음 오신 산후관리사님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셨다. 반면 나는 초보 중의 초보였다. 게다가 시터님이 연세도 있으셔서 어른을 어려워하는 나는 관리사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몰랐다. 살면서 누구를 고용해서 써 본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그저 그분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수용했다. 베테랑답게 우리 아기를 완벽하게 케어해 주셨다. 그러나 '안심하고 맡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지... '라는 감사의 마음이 들라치면, 아기 용품을 본인이 추천하는 것을 사라고 계속 강요하셨다. (지나고 보니 엄마의 아이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신 부분도 많았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방식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 소심한 내 탓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사랑, 나의 첫째 딸, 싱글 때부터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 우리 냥이를 구박하셨다. 관리사님도 강아지를 키워보셨다는데 우리 부모님 세대가 반려동물을 생각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우리 세대와는 차이가 있어보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 고양이도 내 가족이고 내 자식이었다.) 아기에게 혹여 가까이 올까 봐 소파에 올라가면 큰소리로 야단치고 (그 소파는 사실 우리 고양이 때문에 산 건데요...) 내 근처에도 못 오게 눈치를 주셨다. 엄마에게 털이 붙으면 아기에게 안 좋다는 이유였다. 우리 고양이는 결국 스트레스를 받아 체중이 줄고 털이 푸석해져서 친정으로 위탁되었다. 고양이를 친정에 보내고 그날 혼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모든 것이 우리 아기를 위한 마음이겠거니 했지만 결정적으로 "요즘 엄마들 흉"부터 "남편 퇴근 때 예쁘게 하고 있는 게 어떠냐"등 듣기 거북한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저녁 식사도 남편이 야근인 날은 점심 반찬 그대로. 남편이 퇴근해서 같이 먹는 날은 새 반찬...(어째서? 월급은 제가 드리는데요?!?)


아기를 안아 재우지 말라는 내 의견도 들은 척도 안 하셨다. 스킨십이 아기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며. 그래도 아기를 잘봐주셨으니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지만 그 결과 우리 부부는 11킬로인 우리 아기를 아직도 안아서 흔들어 재워야 한다. 허리와 목을 아들의 잠과 맞바꾸었다.


첫 번째 산후관리사님을 겪고 시터님을 다시 구할 때가 왔다.  첫 번째 시터님과의 경험으로 '그래 내가 엄마로서 더 똑 부러져야겠다. 다음 시터님께는 내 의견을 잘 전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동안 내가 독박 육아를 했는데 남편과 나와 집안을 정리된 상태로 유지하려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 이때 깨달았다. 아... 이제 집에서 쉰다는 개념은 없는 거구나...


그러다가 장기출장을 가야 해서 단기 시터 이모님을 구했다. 두 번째 이모님은 훨씬 상냥하셨고 고집이 없으셨으며 손이 매우 빠르셨다. 오시자 마자 후다 다다닥~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자는 동안 거실도 닦아 주시고 베이비룸 장난감도 깨끗이 닦아 주셨다. 오 세상에. 라이프 세이버란 이런 것인가. 같이 계속 지내자고 말씀드렸고 우리 집의 모든 것이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말에 손가락을 크게 꿰매는 사고가 있으셔서 한동안 일을 쉬셔야 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나도 이제 시터님을 두 분이나 겪어 봤으니 이제 자신 있어!라고 생각하며 세 번째 시터 이모님을 구했다. 신생아도 돌본 경험이 있다고 하시고 인상이 온화하셔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시니 아기 케어나 용품 사용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셨다. (어째서?) 분유 타는 법, 분유병에 젖꼭지 조립하는 것 까지 알려드렸어야 했다. 기저귀도 거꾸로 채워 놓으셨다.


낮시간에만 아기를 봐주셨는데 정말 아기에게서 눈을 한 번도 안 떼시고 (정말 안 떼셨고 아기가 2시간 넘게 낮잠 자면 옆에서 같이 주무셨다)... 원래 해주기로 하셨던 아기 목욕이나 씻기는 것도 해주지 않으셨고 아기 옷 빨래도 해주지 않으셨는데 이 또한 내 소심한 성격 탓에 그냥 내가 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내 속에는 답답함이 쌓여갔다. 아기를 데리고 바깥바람도 전혀 쐬어 주지 않으셨고 병원도 혼자서는 데려가지 않으셨다.  남자 아기라서 신나게 놀아주었으면 하고 바랬지만... 결국 나는 같이 지냈던 8개월간 한마디도 못했다. 그래도 장점은 나에게 어떤 강요나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으셨고 사생활을 꼬치꼬치 묻지도 않으셨다는 것! 그리고 우리 아기를 정말로 예뻐하셨다.


네번째 시터님. 지금의 시터님이시다. 활달하신 성격으로 오시자마자 우리 아기를 사로잡으셨다. 손도 빠르시다. 아기만 봐주시면 되는데 너저분한 집도 틈틈이 정리해 주신다. 홈 CCTV로 가끔 보면 아기를 씻겨서 수건에 두르고 나오시면서 아기에게 팔 그네를 태워주며 노래를 하고 계신다. 물론 핸드폰을 자주 보신다던지 통화를 길게 하신다던지 집안일에 집중하시다가 아기를 안 보고 계신다던지 하는 일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아기가 훨씬 밝아지고 까불거린다. 우리 집이 다시 정리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라이프 세이버이시다.


지금까지 이러저러 사정으로 네 분의 시터님들과 지내보았다. 나라에서 보내주시는 국공립 시터님도 만나보았다. 미디어는 안 좋은 뉴스만 전해주지만 내가 겪은 시터님들은 모두 아기에게 해로운 일은 안 하려고 하셨고 아기를 예뻐하셨다. 면접에 오셨던 한 시터님은 "사실 아기들은 다 예뻐. 엄마랑 잘 맞느냐 문제지."라고 하셨다.  한 시터 이모님과 오래오래 잘 지내는 비결은 어느 정도는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 끙끙대지 말고 원하는 바를 상냥하고 명확하게 말씀드리는 것이다. 내 맘같이 내 아이를 봐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나 조차도 그렇게 못하리라.


초보 엄마로 시터님들과 지내면서 그래도 결국은 이 분들이 안 계셨으면 어쩔 뻔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설픈 정책 몇 가지보다 좋은 시터님 한 분이 훨씬 출산율을 높이는데 기여해 주신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생각일까?




철없이 간지(?) 나게 살아온 인생에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육. 알. 못. 엄마의 솔직한 육아 분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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