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슬픔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퇴직자 대상 집단상담 교육에서 나는 부모님 연배의 참여자들과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작은 강의장에서 만난다. 이곳에서 우리는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꺼내 대화 나누고, 그동안 외면해 왔던 자신의 마음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연습을 한다. 나는 진행자 역할을 맡지만 강의장 안에서 늘 배우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데 교육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잊히지 않고 오히려 또렷하게 기억나는 사연이 있다. 근엄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 이야기해 준 한 70대 남성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순서가 되자 "울산으로 온 일이 살면서 가장 후회됩니다."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원도가 고향인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지독했던 가난이 떠오른다고 했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일을 도왔지만, 그렇게 고되게 일했음에도 꽁보리밥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단다. 당시 갓 결혼식을 올렸던 그는 내 자식들에게는 지긋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산업도시로 부상하고 있던 울산으로 무작정 내려오게 된다. 현장 일용직, 중장비 운전일을 거쳐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뒤에 가족들 먹여 살리는 일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고생스러운 삶이었지만 내 집도 장만하고 경제적 기반도 다질 수 있었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 가족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어느 날, 밤늦은 시간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구지 하며 받은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고 했다. "누구님 가족 되시죠? 지금 바로 울산대학교 병원으로 좀 와보세요. 아들이 사고가 났습니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였다. 정신이 아득해 "우리 애는 어때요? 괜찮아요?" 물었지만 전화를 건 병원 의료진이 대답을 하지 않고, 어서 와보라고만 했단다. 병원에 도착해서 안내를 받아 간 곳에서 다시 아들을 만났을 땐 이미 생을 마감한 뒤였다. 친구 좀 만나고 오겠다며 나간 서른 살 장성한 아들이 집 근처 일산지에서 신호위반 차량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내가 울산에 온 걸 살면서 제일 후회해요. 그때 울산에 오지 않았더라면 싶어요."
......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두는 일제히 긴 탄식을 내뱉을 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들을 보는데... 그 순간이 수년이 지나도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우리 아들 그렇게 만들 사람을 내가 죽여버리려고 그랬어요. 재판도 하고 했는데... 그런데... 이제는 다 용서했어요. 용서했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지만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렸다. 잠시 동안 강의장은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그렇게 용서를 하셨어요?"
내가 다시 묻자 그가 답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다 용서했습니다."
...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를 꺼내 들려준 그에게 우리 모두가 큰 박수로 위로와 격려를 전했다. 건장한 남성의 어깨가 그 순간 너무도 애처롭게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았다. 헤아리기 어려운 슬픔과 마주할 때, 언어로써만 위로를 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자기를 드러내는 걸 유독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면에는 체면과 방어, 스스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복잡한 기재가 얽혀 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말하고 감정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그런 경험이 적었던 사람에게는 긴장으로 심장이 뛰고, 온몸이 오그라드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진행자로서 먼저 나 자신의 취약성과 부드러운 부분을 꺼내 보이며 정성껏 사람들 마음에 빗장을 풀어본다. 하지만 때론 실패할 때도 있고, 몇몇은 끝까지 제대로 된 자신을 드러내지 않거나, 드러내지 못한다.
나약한 부분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고통스럽도록 바라보았고, 결국은 이해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모순적이고 때로는 너무 구차해서 다시 들여다보기도 고통스러운 자신의 모습과 아직도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진심으로 껴안으리라 마음먹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정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사람만이 펄펄 끓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다.
교육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시간. 그가 강의장 입구로 걸어 나온다. 다시 한번 힘껏 그분을 껴안았다. 이번에는 좀 더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여 주신다. 진심이 통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