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가고, 두 사람이 왔다

오늘 하루가 감동 그 자체다

by 리마인더



계획과 계획하지 않은 일의 교집합 = 인생


집에서 20분쯤 걸어가면 바다를 볼 수 있다. 내 평생 한 번도 바다 가까이에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자주 보러 가는 것은 아니다. 가끔 주말이나 조용한 시간에 가족들과 산책할 겸해서 찾는 바다는 계절과 날씨에 따라 매번 다른 분위기를 보여 준다. 어떤 날은 푸른색과 짙은 에메랄드빛을 내고, 비가 많이 오거나 할 때는 파도도 흙탕물을 머금고 있다. 파고도 그때마다 다른 모습이다. 산을 좋아할 때는 인생이 산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바다를 보면 또 바다와도 닮았다.



파도를 닮은 인생의 역동성


내 나이 서른 살이 가까워져 왔을 무렵 집안에 첫 조카가 태어났다. 생명의 탄생은 큰 기쁨과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20대 내내 허우적거리기만 했던 교육강사 일에서도 성과가 나오며 주위의 인정을 받았고 이 길을 택하길 잘했다는 자긍심을 가졌다. 중고이긴 하지만 새로 산 자동차를 운전해 퇴근하는 길엔 오롯이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의 기쁨에 흠뻑 빠졌다. 이제 정말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 인생에 이런 시간이 이전에 있었던가? 처음 느껴보는 평온한 나날들이 펼쳐졌다. 너무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살짝 불안해지기도 했다. 지금 누리는 이 행복이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아서.



그로부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아빠의 삶이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 건강검진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심지어 가족 중에서도 건강을 빼놓고 말하면 서운할 사람이 바로 우리 아빠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고생 고생을 하다가 형편이 필 무렵 큰 병이 찾아와 울부짖던 저녁 드라마 주인공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 아빠의 이야기가 되었다. 가장 행복하던 시기에 비극은 우리 가족을 찾아왔다.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


이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고 내 가정도 생겼지만, 다시 전처럼 행복을 느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이전에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었고, 죽음이 무엇인지 궁금증조차 길게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허무와 우울감은 더욱 컸다.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내 가슴속에 방이 한 칸 생겨버린 것 같았다. 출근을 해서도 종일 머리가 멍한 채 일에 제대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 상태로 남의 월급을 받을 수도 없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별다른 준비도 못한 채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두려움에서 자기 이해와 포용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꽤 오래 머물렀다. 자다가 숨이 차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고 혼자 집에 있으면 생각을 멈출 수 없어 울거나 혹은 무기력해졌다. 슬픔은 쉽게 밀어내지지 않았다. 가장 좋아했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들고, 죽음에 대한 석학들의 강의를 찾아들었다. 알아가면 갈수록 내 안에 죽음에 대한 이해가 생겨났고 점차 두려움이 작아졌다. 신기하게도 내 안에 어떤 부분들이 조금 더 단단해져 가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예를 들면 자신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이, 슬픈 감정을 살피고 어루만지는 것 같은 것들이다. 애도하는 방법을 배워 나갔고, 아주 천천히 치유가 일어났다. 나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이전보다 더 농밀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즘 나는 깊은 행복감을 자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다시는 느끼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감정들이다.



한 사람이 가고, 두 사람이 왔다.


삶이 의미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삶의 마지막 순간 즉 ‘진실의 순간’에 직면하거나, 사후세계가 존재해서 그곳에서 새롭게 눈을 뜨지 않는 이상은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아빠가 가고 난 뒤에 둘째 조카가 태어났고 일 년 뒤에는 내가 아이를 낳았다. 나의 세상에서 한 사람은 가고, 새로운 두 사람이 온 것이다. 이 간단한 자연의 섭리를 알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더욱 또렷해진 것은 언젠가 나도 떠나갈 것이고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과 마주 앉아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일상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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