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소중한 것’의 가치를 비로소 깨닫게 되기도 한다. 오히려 이별한 뒤에 서로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가늠하게 된 연인처럼,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평생 아버지란 큰 나무 그늘 아래서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 자식처럼.
살면서 좋아하거나 사랑하게 되는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상실을 가르쳐준다.키우던 햄스터, 아끼는 귀걸이나 시계, 흰머리, 가족이나 친구, 선생님, 직장 등 우리는 평생을 만나고 이별하고 상실하며 살아간다. 때때로 상실은 견딜 수 없이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덕에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느끼고 공감할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인지 모른다. 영원히 곁에 붙들어 둘 수 있는 것은 없음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유골을 추모공원에 묻고 나서 장례의 모든 과정이 끝났다. 여전히 나뭇가지가 앙상하고 땅이 얼어붙은 1월의 추운 날씨였다. 해가 구름에 가린 데다 눈발이 섞인 바람마저 불어오자 온몸이 시렸다. 장례를 치르느라 며칠째 잠을 깊이 못 잔 탓인지, 유독 추위를 많이 타던 아버지가 떠올라서인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점심때가 다가왔고 그 와중에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했다. 가족들 모두가 지쳐 있었다. 무엇보다 따뜻한 물에 푹 담겨 언 몸을 녹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가족, 친척들과 장지에서 내려와 산 아래 마을에 있는 설렁탕집에 들렀다. 맛집이었다. 뜨끈한 국물에 밥 한 그릇 말아 뚝딱하고 난 뒤에야 다시 온기가 돌며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당시에 임신 중이었던 언니는 그 과정이 더욱 어려웠을 거다. 평소에 고기를 좋아하는 언니를 위해 식구들이 국에 있던 고기를 더 건져주었고, 언니는 멋쩍게 웃으며 잘 먹어주었다. 그 잠시 동안의 순간에 슬픔은 옅어지고 다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상실은 이처럼 냉탕과 온탕을 오가게 한다. 슬프지만 배는 고프고, 그리워하며 울다가도 어떤 날은 재미있는 추억거리들을 떠올리며 웃기도 했다. 상실을껴안을 때 삶은 완성되어 간다.
얼마 전 언니와 통화하면서 아빠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나는 웃으며 아빠 이야기를 하는데 언니는 아직도 통화 중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 언니는 첫째 조카와 뱃속에 있는 조카까지 아이 둘을 혼자 데리고 먼 나라 카타르에서 급하게 한국으로 오는 길이었다. 우리가 병원에 도착하고 한 시간이 채 안 돼서 아빠가 돌아가실 줄은 아무도 몰랐다. 엄마가 “정아 아빠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민정이 보고 가야지.” 해도 아빠는 힘들다고 말씀하실 뿐 큰딸을 기다려 주기엔 버거운 상황이었다. 언니는 결국 아빠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6년이 지난 지금도 아빠의 부재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어딘가에 아빠가 살아있는 것만 같단다.
상실을 감당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눈물이 잘 나지 않았다고 했다. 스스로의 감정을 제대로 가늠하지도 못한 채 먹먹한 상태로 몇 년을 흘려보냈다는 사람도 있다. 가족을 상실하는 경험을 했다고 해서 곧바로 슬픔을 느끼고 애도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언제, 어떤 감정이 찾아오든 거부하거나 재촉할 필요 없이 고스란히 느끼고 껴안아야 한다. 그래야만 슬픔과 두려움을 걷어내고 삶의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법으로만 치유가 가능하다.
상실을 통해 내 삶은 한 층 더 깊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지 늘 생각한다. 언젠가 다가올 상실에 대한 나만의 대비법이기도 하다. 소중한 것을 잃고 난 뒤에서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고민하게 되었고, 자존심이나 겉치레보다 후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하고 글을 쓴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잔소리 다섯 개 중 세 개 정도는 삼키는 노력을 한다.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싶은 순간, 먼산을 한 번 바라보며 한숨 돌리고는 목소리를 낮춘다. 나중에 하게 될 후회를 조금이나마 줄이려 몸부림치는 거다. 일하다가 힘에 부친다 싶은 날에는 소고기를 굽는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재빨리 물을 끼얹고 훠이훠이 환기시킨다. 내 사람들에게 엄지 척 이모티콘을 한번 더 날린다. 지금 이 정도면 꽤 멋진 삶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