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는 순간, 천주교 신자가 된 아빠

죽음은 삶의 졸업식이다

by 리마인더



잡식성 종교인의 비애


우리 가족은 종교가 없다. 나 역시 종교는 갖지 못했지만 어떤 종교에 대해서든 존중을 잃지 않으려 노력(?) 해 왔다. 어린 시절엔 성탄절 연극과 항상 맛있는 걸 주는 교회가 좋아서 다녔고, 고등학교 친구의 권유로 증산도도 따라가 보고 (역사 공부를 한두 시간 남짓 하고 왔다.) 대학교 때는 사람 냄새나는 선배를 따라 선배가 다니는 대형 교회도 갔다.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 말을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 주일마다 목사님 말씀을 듣는 것은 독서와 유사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또 기도를 하며 한 주를 돌아보고 스스로 마음 챙김 할 수도 있구나 깨달았다.) 이후 가톨릭 병원에서 호스피스 완화 의료를 받고 돌아가신 아빠의 영향, 이태석신부님의 선행에 마음이 동요하며, 아! 나는 천주교와 인연이 있나? 하는 생각으로 친한 동생을 따라 천주교인이 되기 위해 주말 아침 천주교 교리 수업에도 참석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죽음에 대해 탐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교에 꽂히게 되었다. 불교의 정신이나 죽음관이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양자 물리학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지금도 관심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이 처럼 나의 신앙 찾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제일 골치 아픈 인간 중 하나 일수 있겠다.




수녀님, 저 잠깐만요! 아빠랑 인사는 나눠야 하잖아요. 처음 겪는 일이라고요!


아빠가 돌아가시던 순간, 말 그대로 임종의 순간이었다. 그 정신이 없는 와중에 호스피스 병원에 계시던 수녀님께서(호스피스 병원에는 의료인뿐만 아니라 간병인, 사회복지사, 종교인이 있었다.) 세례를 받겠냐고 물으셨다. 그런데 난 그 순간 좀 화가 났다. (아니, 정신이 이렇게 없고 당황스러워 죽겠는데 지금 와서 종교도 없던 아빠가 뭔 세례를 받아?) 누가 말 시키는 것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내 생애 처음 경험하는 일이지 않은가. 우리 아빠가 혼자 세상을 떠난다는데, 아무도 따라갈 수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그런 순간이었다! 이 와중에 종교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야? 생각하며, 나는 만사 귀찮다는 듯 냉정하게 "아니요."하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마음 써서 와주신 그분과 눈도 맞추지 않은 채 거절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들어와 사망 선고를 했다. 평소처럼 그저 잠든 모습인데 이제 아빠는 이곳에 없었다. 울음을 멈추고 아빠 얼굴을 바라보았다. 볼과 이마도 한번 만져 보았다. 여전히 아빠는 잠든 것 같았다. 그때, 아까 오셨던 수녀님 말고 병실에서 몇 번 뵈어서 얼굴이 좀 더 낯익은 수녀님 한분이 들어오셨다. 이번에도 세례를 받겠냐고 물어보았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수녀님은 간단한 절차로 아빠에게 '요셉'이라는 세례명을 내려 주셨다. 아빠는 세상에서 눈 감은 뒤에 종교를 얻은 샘이다.







아빠의 바이탈 사인이 자주 멈출 때쯤 간호사가 들어와 임종 순간이 가까워 왔음을 알려주었다. 우리 모두 눈만 껌뻑거리고 있다가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전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울음과 뒤섞였고 사실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울고 소리치며 사랑한다고 말하면 전달이 될까. 크게 소리 내 운다고 해서 아빠에 대한 마음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일까. 곱씹어 생각해 보니 아빠를 안심시켜 주고 더 쓰다듬어 주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쉽다. 울고 불며 작별에 말만 하는 게 아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아빠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이 반드시 저항하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아빠 무서워하지 마. 괜찮아요. 여기서 끝이 아니고 우리 가족이 항상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요. 아빠는 잘 해낼 거야.

너무 고맙고 사랑해요. 우리가 함께 있을 거야.'









죽음을 배우고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설상가상, 우왕좌왕, 얼토당토 하지 않기 위해서다.

가족을 배웅하는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고 울며, 혼비백산하는 일이 흔하다.

화해와 감사를 나누며 사랑하는 이가 안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어떤가.

우리는 그 순간을 삶의 졸업식처럼 축하하고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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