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도 할 수 있다.
지난번 공원에서 70개를 판 이후, 버스 판매에 도전해 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스치기만 했다. 진짜로 할 줄은 몰랐지.
에콰도르 버스는 잡상인들이 자주 타고 내린다. 물, 주스, 머핀, 쵸코렛, 과자, 문구류 등. 양해를 구해 무전으로 탑승한 뒤 판매를 한다. 끝나면 내려서 다른 버스에 또 타는 식이다.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랩을 하기도 한다.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자기의 불쌍한 사연을 이야기하고 적선을 요구할 때도 있다.
나는 평소에 버스를 타면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다. 가끔 이어폰을 빼게 만드는 랩 실력의 소유자가 타면 1달러를 주기는 했다. 혹은 난민들의 사연을 듣고 100%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작은 동전을 적선하기도 했다. 그 외에는 거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호떡을 50개 구워서 집 앞 버스 정류장으로 나왔다. 심호흡을 아무리 해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버스에 타서 호객 행위를 잘 해볼 수 있을까? 사람들이 눈 하나 깜짝 안 하면? 두려움이 엄습하는 사이 버스 3대를 보냈다. 길거리에서 호떡을 판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대담한 친구일세”라고 생각하던데 사실 아니다. 나는 쫄보 중에 쫄보다. 생각이 많아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결단을 실천으로 옮기기까지는 더 오래 걸린다. 다만 내가 어디까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일까 궁금하긴 하다.
정류장에서 멍 때리는 사이에 신호가 걸렸다. 이때 상인들은 차 사이사이로 다니며 과일, 물, 음료수 따위를 판다. 그들을 지켜보며 멍하니 있을 때 경적이 울렸다. 빵!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니 차의 창문을 내리고 모습을 드러낸 여자가 검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플라스틱 통 사방에 큰 글씨로 ‘PASTEL COREANO’(호떡)라고 적어 둔 덕분이다. 기쁜 마음으로 팔았다. 그 모습을 보던 뒤차의 아저씨도 하나를 사 갔다.
도로에서 순식간에 두 개가 팔리자 자신감이 생겼다. 곧바로 오던 버스에 탑승했다. 원래 차비로 25센트를 내는데 호떡이 들은 통을 가리키며 "Esta bien?" (팔아도 괜찮아요?)라고 물었다. 오케이!
Pastelito Coreano, 50 centavos! (호떡 50센트!)
떨렸지만 함박웃음 지으며 목청껏 외치니 두 명이 사갔다. 첫 버스 영업개시 기념으로 안내원에게도 호떡 하나를 선물로 주고는 내렸다. 곧바로 뒤에 따라오는 버스에 탔다. “Esta bien?" 묻는 것은 잊지 않았다. 두 번째는 자신감이 붙었다.
“호떡 50센트! 호떡 50센트!” 사람들이 신기해서 쳐다보기는 하는데 좀처럼 사지를 않자, 헛소리를 좀 보탰다.
한국에서는 두 배 더 비쌉니다. (날이면날마다오는기회가아니야) 참, 저는 Chino(중국인)가 아닙니다. Coreano(한국인)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웃었다. 그들 중 한 분이 한 개를 샀다. 이게 눈치게임이랑 비슷해서 처음이 어렵지, 한 명이 사니까 지켜만 보던 사람들도 연이어 호떡을 샀다. 총 5개를 팔고 내렸다.
그 뒤로 10번이 넘게 버스를 전전했다. 그중 절반은 못 팔고 그냥 내렸다.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지만, 이어폰을 꼽고 아무런 반응 없는 이들도 많다.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시간을 방해하는 걸 수도 있다. 장사는 정말 쉬운 게 아니었다.
한 번은 지쳐서 정류장 앞에 주저앉아 있는데 앞차에서 ‘빵’ 경적을 울렸다. 기쁜 마음에 호떡 하나를 들고 달려가서 “50센트예요!” 하며 내밀었는데 “아뇨, 그쪽이 길을 막고 있어서 주차를 못해요.”란다. 아 예, 죄송합니다. 세상 최고로 민망했다;
본격적으로 판을 벌려보려고 밀가루와 재료를 잔뜩 사 뒀는데 사실 그 뒤로 호떡장사를 못 나갔다. 호떡이고 뭐고 주말에는 역시 넷플릭스 보면서 쉬는 게 최고다. 다 식은 호떡을 500원 주고 팔기도 미안했다. 남은 재료들로 마지막 호떡을 구웠다. 6개월 동안 함께 일한 회사의 동료들에게 돌렸다.
사실 말 몇 번 못 해본 사람들도, 나를 매몰차게 무시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마지막 모습은 좋게 남기고 싶었다. 기념품 대신 호떡을 돌렸다. 한 명 한 명 찾아가 이름을 부르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언제 다시 호떡을 팔아볼까. 언제 다시 노점상을 해볼까. 그런 날이 다시 오지 않아도 괜찮다. 이 순간이 찬란할 만큼 즐거웠으니, 훗날 “그때 그 뻘짓, 참 잘했어.” 회상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