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찹쌀가루가 없으니 그 맛이 안 난다. 찰기 없는 호떡은 영 밋밋하다. 이 고민을 하던 중, 옆자리에서 근무하는 다비드가 빵을 사 왔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한입 탁 베어 물었는데 찹쌀도넛과 같은 찰기가 느껴지는 게 아닌가! 이게 도대체 무슨 빵이오, 물으니 유카빵이란다. (유카는 안데스 산맥에서 나는 감자 비슷한 채소다.) 유카 유레카! 퇴근하고 바로 유카가루와 밀가루를 1:5로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드디어 한국에서 파는 호떡과 똑같은 맛이 났다.
마지막으로 시험 해 보고자, 대사님과의 약속이 잡힌 전날 호떡 12장을 구웠다. 대사관 직원들과 나누어먹으라고 주었는데, 다들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7월 14일 토요일. 스무 장의 호떡을 구웠다. 마트에서 큰 통도 사고, 데코를 위한 유성매직을 샀다. 검, 빨, 파로 태극기를 표현하려 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파란색은 뺐다. 눈에 잘 띄는 노란색 종이도 샀다. 이름은 ‘PASTEL COREANO', 해석하면 Korean pancake 쯤 되겠다.
만발의 준비와 함께 집을 나섰다. 공원까지 걸어서 20분, 호떡은 열기가 생명! 버스를 타기로 했다. 플라스틱 박스 여기저기에 ‘PASTEL COREANO 50 CTVS’ (50센트)를 적어놓으니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심지어 코코넛 주스 파는 아저씨는 나한테 “이 버스 탈거예요?” 물어봤다. 나는 탄다 했지만 팔지는 않을 거라 했다. 안 그래도 아시아인을 동물 보듯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호떡 500원’이 적힌 짐더미를 다들 쳐다본다.
버스에서 내려 벤치에 잠시 앉았다. 지난번에 여기서 도넛 파는 사람을 봤으니 나도 여기서 시작해야겠다. 원래는 ‘빠스뗄 꼬레아노!!’ ‘씬꾸엔따(50)!!’를 목청껏 외치고 싶었으나 말이 차마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했다. 사람들의 쳐다보는 시선. 두려웠다. 나 호떡 굳이 안 팔아도 밥 먹을 돈은 있는데.. 마음속으로 제발 한명만 와라, 한명만!! 생각하며 3분 정도 조용히 멍 때렸을까. 신기하게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하나를 사 가셨다. 순식간에 화색. 냄비에서 집게로 호떡을 집어 종이컵에 싹 넣어 드리면 되는데 첫 손님이 온 게 믿기지 않아 손을 덜덜 떨며 드렸다. 손님은 나 이거 먹어도 되는 거니? 이런 표정이었다.
잠시 후, ‘Coreano'를 궁금해하던 아이가 엄마손을 잡고 저거 사달라며 졸랐다. 나는 (가식적인) 함박웃음을 지으며 "Venga venga!" (오세요 오세요) 했다. 아이를 따라 엄마도 하나 사서 두 개가 나갔다. 무언가를 팔아서 내손으로 돈을 버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이제 좀 자신감이 붙어서 “빠스뗄 꼬레아노 벵가벵가!” 한참 외치려는데, 오른쪽에서 무서운 시선이 느껴진다.
경찰이었다.
오토바이와 함께 순찰 중인 경찰 둘.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하자. 최대한. 그래. 나는 합법적인 비자로 여기 와 있는 거야. 쫄지마. 길거리에서 뭐 파는 사람들 많아. 괜찮아. 그런데 이 아저씨들, 내 주위로 올 생각은 안 하고 계속 째려만 본다. 그냥 아시아 사람이 물건 파는 게 신기한 건가? 우선은 일이 벌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러나 황급히) 상자를 가지고 자리를 떴다.
집에 가봐야 나는 이거 안 먹을 텐데. 남은 17개는 어찌하나. 그래, 애초 목표대로 공원까지는 가보자. 누가 사줄지 또 어떻게 알아?
내 비주얼도, 꼬레아노라는 글씨도 확실히 눈에 띄었나 보다. 공원 산책길을 따라 쭉 걸어가는데 글씨만 보고도 다들 궁금해한다. 무심한 척했던 사람들도 내가 지나간 뒤 뒤돌아보며 은근한 관심을 보였다. 이제 좀 자신감 있게 (그러나 여전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빠스뗄 꼬레아노, 씬꾸엔따. 벵가벵가” 외치면서 걸어갔다.
갑자기 물을 팔던 아주머니 두 분과 동업자로 보이는 아저씨 한분이 오시더니 “그거 맛있어요?” 물어본다. 아니 아저씨 그럼 맛없다고 할까요. “맛있어요! 드셔 보세요.”라고 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건가. 흥정을 시도한다. 자꾸 2개 50센트에 달라고 한다. 이 사람들아 그럼 나 마진 없어..
잠시 고민 후 “여기 작은 거 보이죠? 이거 2개 50센트 드릴게요.” 했더니 오케이 한다. 두 개를 담아서 드렸더니 셋이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검지 손가락을 추켜올리며 하나 더 달라고.. 아 이 사람들이. 그래. 기분이다. “오늘이 첫 장사니까 3개 드릴게요.” 하니 다들 무척 좋아한다. 원래 이 3개는 시식용으로 만든 거니까 뭐.
그렇게 공원을 돌아다니며 빠스뗄 꼬레아노를 외쳤다. 나중에는 내용물도 무겁고 팔에 힘이 빠져서 그냥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자리에 주저앉아 팔았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흥겨워서 미친X마냥 웃고, 어깨를 들썩거리니 오히려 사람들이 먼저 궁금해서 다가온다.
“이거 맛있어요?”
“아휴 ^^ 당연하죠 ^^^^^ 드셔 보실래요?”
“네. 하나 주세요.”
“어머, 두 분인데 하나만 드시려고? 옆에 분도 사주세요 ~~”
“아..”
“사 주세요 ~~~~ 제발~~” (진짜 웃으면서 손 싹싹 빌었음;;)
“ㄴ.. 네.. 맛있는 거 맞죠?”
“아휴 그럼요.”
그렇게 집을 나온 지 약 1시간이 흘렀을까. 생각도 못했는데 스무 개의 호떡을 다 팔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앞에 있던 음료수 상인 아저씨가 씩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장사 좀 하는데?’ 이런 표정. 훗. 중남미에서 꼬레아는 미지의 지역이니,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게 먹혔나 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호떡 하나를 50센트에 팔아봐야 남는 건 별로 없다. 첫 성공을 바탕으로 다음주에는 아침 9시부터 호떡을 40장 굽고 팔고, 점심 먹고 30장 굽고 또 팔았다. 하루 종일 일해서 70장을 완판 했다. 노동 강도에 비하면 순이익은 초라하다.
그런데 왜 굳이 호떡을 파는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목적이 아니다. 돈만 바라보며 살기에는 세상엔 재밌는 게 너무 많다. 돈은 나중에 커서(?) 열심히 벌면 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싶다. 언제 다시 노점 장사를 해보겠는가. 대세를 떠나면 불안하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게 돈이 된다면 금상첨화지만, 아직은 아니어도 괜찮다.
어른 세대는 우리가 도전의식이 없다느니,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 편하게 편승하려 한다느니, 이런 말을 하지만 그건 ‘돈 많이 버는 것’을 성공으로 정의하니까 발생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행복의 결론이 ‘돈’ 하나뿐이던 시절은 이미 끝났다.
공원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도 크게 써 붙인 Pastel Coreano (호떡)를 보고 궁금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부모님 손을 잡고 빠스뗄 꼬레아노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 사이에 나는 사람 구경을 한다. 신나는 리듬의 곡들을 재생시킨다. 내 옆에는 오리 분장을 한 채 아이들에게 풍선을 파는 사람이 있다. 앞에는 할아버지 세 분이서 악기를 연주하며 케추아(잉카 원주민) 노래를 부른다. 등 뒤에는 오리배를 밟는 사람들이 분수를 피해 방향 조절을 하고 있다. 분수를 맞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른다.
장사 좀 안 돼도 상관없다. 이국의 일상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토요일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리듬에 맞춰 어깨춤을 추면서 어떻게 마진을 늘릴지 고민이다. 호떡 사이즈를 좀 줄이고 1개 50센트, 3개 1달러로 팔았더니 더 남긴 하는데.. 역시 돈으로부터 백 프로 자유로울 순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