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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Nov 10. 2018

이래도 쿠바가 끌린다면 당신은

쿠바 한 달 살기. 프롤로그.

2018년 11월 3일. 멕시코 칸쿤으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찢었다. 24일의 쿠바 여행 끝에 이 나라에 1달 더 남기로 했다.


쿠바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별로였다는 사람들은 비싼 물가, 복잡한 이중 화폐 제도, 제한적인 인터넷, 맛없는 음식 등 구체적인 이유를 든다. 좋았다는 이들은 북한을 느낄 수 있다고도 하고, 7-80년대로 시간 여행하는 기분도 든다 하고, 아날로그 세상이 좋았다고도 한다. 아무튼 본인과 핀트가 맞는 추상적인 이유로 쿠바를 좋아한다.


사실 중남미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쿠바는 그닥 매력 있는 관광지는 아니다. 페루의 마추픽추,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마야 유적지 같은 유물도 없다. 스페인의 식민통치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원주민들은 몰살당했다. 덕분에 히스패닉 이전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중남미 여타 도시들처럼 광장과 성당이 랜드마크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같은 천해의 자연도 없다.


Playa Giron, Cuba. 아, 물론 카리브해는 숨 멎도록 예쁘다.


인터넷은 또 얼마나 불편한지. 전국 유일의 통신사(ETECSA) 혹은 호텔에서 1시간에 1달러 하는 인터넷 카드를 사야만 접속이 가능하다. 그것도 와이파이가 설치된 공원, 호텔, 일부 상점에서만 할 수 있다. 덕분에 쿠바 길거리에는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사람들이 없다. 반면에, 시끄럽게 떠들다가도 와이파이에 접속하는 순간 대화가 끊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먼저 인스타그램 피드를 끝까지 내려놓고, 카카오톡과 웹서핑을 한다. 인터넷을 끈 뒤, 집에 돌아와 찬찬히 피드를 다시 뜯어보며 주변 사람들 소식을 접한다. 좋아요를 누르지 못해 안타깝다.


물가도 비싸다. 도미토리 개념의 숙소가 별로 없어서 혼자 여행하면 숙박비로 15불가량 써야 한다. 관광업의 달콤함을 일찍이 알아차린 이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큰 수입을 얻는다. 특히 우리 같은 외국인은 등쳐먹기 좋다. 쿠바에는 CUC(태환 페소)와 CUP(국내 화폐) 두 종류의 화폐가 있다. 예를 들어 마차를 탈 때 5페소를 말하면 5 CUP (250원)인지 5 CUC(6000원)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확인 안 하고 탔다가 내릴 때 5 CUP를 내밀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이거 말고 다른 거 줘야지” 요구하는 쿠바노들을 볼 수 있다. 스페인어를 아무리 잘해도 이런 경우에는 소용없다. 먼저 확인 안 한 내 잘못이다. 24배 뻥튀기라니, 해도 해도 너무한다.


Habana. Cuba
그러면 너는 뭐가 좋아 쿠바에 남기로 한 거니

라고 물으신다면 나도 정말 모르겠다. 몇 가지 짐작 가는 이유는 있긴 한데 명확하지는 않다.


먼저, 인터넷이 불편하다. 반대로 사람들이 편해진다. 언제부턴가 사람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편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그 적정선을 찾느라 애먹고 있었는데 여기는 그 선이 조금 더 가까워도 괜찮을 것 같다. 인터넷이 보편적이지 않은 곳에서는 사람이 없으면 심심하니까. 관공서에 가면 컴퓨터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여전히 수기로 모든 것을 작성하는 풍경도 볼 수 있다.


Trinidad, Cuba. "우리집에 와이파이는 없지만 사람들이 소통하게 하는 모히또는 있다우."


두 번째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쿠바노들이 신기하다. 어떤 때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Mi amor(내 사랑), Mi vida(내 인생)이라 칭하며 세상 정겹게 인사하는데 화가 나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즉석에서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 길을 걷다 보면 방금까지 아무렇지 않다가도 갑자기 말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왜 나한테는 더 비싸게 받냐며 가게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면 어느새 다가와 자연스레 주인 편을 들며 "이거 그 가격 맞아"한다. 세상 얄밉다. 참. 이 나라 사람들은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났는지, 다들 멋있고 예쁘다.


Habana, Cuba. 쿠바 사람들은 멋 부리는 법을 타고나는 게 분명하다.


사회주의 체재에 대한 궁금함도 한몫했다. 체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를 우상화한다는 이야기는 워낙 많이 들었으니 낯설지 않았다. 실제 국민들의 삶은 어떤지 궁금했다. 월급 25-35불을 받으며 이 비싼 물가를 어떻게 감당해내고 사는지. 계란, 세제 등 생필품 배급이 막히면 한 달 넘게 시장에 물건이 없는 때도 있다는데 이 불편함은 또 어떻게 참는지.



문명 세상과의 단절, 지루해서 몸이 베베 꼬이는 무한 기다림, 1주일이면 질려버리는 현지식, 외국인 등쳐먹으려 혈안이 된 일부 관광업자들. 이런 불편과 짜증을 매일 감수하고라도 이 느린 나라에 끌린다면 당신은 분명, 나처럼 사람이 그리웠던 사람일 거다. 혹은 모든 것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우리나라에 이골이 났거나. 아무튼,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쿠바 여행을 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이다.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쿠바에 끌렸고 이곳에서 여행자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며 잠시 머물고 있다.

Santiago de Cuba, Cuba

아바나에서 한 달 살기를 주제로 새로운 글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cover photographer : www.instagram.com/@chastar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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