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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Dec 09. 2018

쿠바인들에게 고스돕을 전파하다

쿠바 한 달 살기. 4


쿠바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죽일까. 인터넷이 보편적이지 않아 sns나 유투브를 실시간으로 하기는 어렵다. 대신 아바나 거리 어디서나 '도미노' 판을 쉽게 볼 수 있다.

도미노는 아주 간단해서 1분이면 배운다. 각 패에는 0부터 9까지의 눈이 랜덤으로 두 개씩 새겨져 있다. 네 명의 플레이어들은 10개의 패를 나눠 갖는다. 보통은 마주 앉은 사람끼리 팀이 된다. 9와9 눈을 가진 사람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은 양 옆으로 숫자를 맞춰 이어붙이기만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모든 패를 가장 먼저 제거하는 사람이 승리한다. 규칙도 간단하고 한 판에 3분이면 끝나서 킬링 타임으로는 제격이다. 특히, 다같이 밥 먹고 난 뒤 설거지 당번을 정하거나 아이스크림 내기를 할 때 좋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쿠바를 떠나기 전 날 새벽 1시에 길을 걷고 있었다. 어디선가 레게톤 음악이 흘러나왔고, 문이 닫힌 술집 앞으로 젊은이들이 도미노 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 네모난 판자에는 다리가 없다. 게임에 참여하는 이들의 허벅지가 곧 받침이다. 우리는 그들 옆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판이 끝나자 "같이 할래?" 라고 먼저 제안이 온다.

쿠바노 : 꼬레아노, 2:2 팀전이 시작됐다. 밥 먹듯이 도미노 하는 쿠바 청년들, 산수라면 어디 붙여놓아도 꿇리지 않는 한국인들의 대결! 사실 도미노는 10%의 경험과 90%의 운, 정확히 말하면 가진 패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초보자가 판을 싹쓸이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산수와는 전혀 상관 없다. 약간의 잔머리가 있다면 유리하다.

photo @chastar92

우리가 고스돕을 할 때 모포위에 찰지게 치는 매력이 있듯 이들 또한 패 하나 하나를 엄지와 검지로 날카롭게 던진다. 그러면 거기에 자석이라도 달린 듯, 정확한 곳에 가서 붙는다. 나도 여러번 시도 해 봤는데 엉뚱한 위치로 떨어진다. 원하는 자리에 시뻘건 화투패를 탁, 내리꽂는 우리 엄마처럼 오랜 내공이 필요하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는 법. 아바나에는 '한인문화센터'가 있다. 어느 토요일 오전, 우리는 한인3세 쿠바노들과 함께 센터를 찾았다. 그곳에는 자신의 뿌리가 궁금한 한인 후손들, 비티에스에 빠진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문명과의 접촉이 제한적인 쿠바에서도 비티에스는 유명하다. 거리나 버스에서 비티에스 음악을 틀어놓는 일도 심심지 않게 볼 수 있다.)

문화센터의 한 구석에 부루마블과 윷가락, 붉은빛의 고스돕이 있었다. 쿠바 친구들에게 뭘 가르쳐 줄까.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부루마블?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는 윷놀이? 아니야. 설명도 쉽고 재밌는 고스돕이 제격이다! 모포가 없어 쫙쫙 달라붙는 맛은 덜 했지만 쿠바노들은 내 설명을 아주 진지하게 들었다.

Playa Giron, Cuba.


자 얘들아, 아주 쉬워.

그림만 잘 맞추면 돼. 각 세트는 네 개고, 똑같은 패를 내면 돼. 얘랑 얘는 쌍피야. 두배의 효과가 있지. 여기 밑에 한자가 있지? '광'이야. 3장을 모으면 이겨. 새나 사슴같이 동물이 그려진 패는 따로 모아야 하고. 음.. (청단 홍단은 어찌 설명하지;) 요렇게 띠 모양으로 생긴 애들도. 몰라. 일단은 따로 모아. 피를 10개 모으면 1점이구, 그 다음엔 하나당 1점이 추가 돼. 3점을 먼저 얻으면 고/스톱을 정할 수 있어. 한번 해 보자. 패 섞는다. 촥촥촥초가촥휙슉퐉포왁. 로사야, 여기서 원하는 만큼 덜어줘.
(너무 신기하게도, 로사는 패가 딱 떨어지도록 정확하게 덜었다.)


중간에 어려움이 많았다. 쪽, 뻑, 흔들기, 싹쓰리 같은 설명들. '초'패를 보며 이건 왜 동물이냐고 물어보는 친구.(미안. 그건 우리도 미스테리야.) 새를 세마리 모으면 이길 수 있다는 고도리까지. 와우. 고스돕을 많이 치면 치매예방에 좋다는 말은 사실이구나!

오, 아우렐리오야. 너가 먼저 3점을 놨구나. 고 할래 스돕할래? 못 먹어도 고! 자, 이러면 너는 나중에 고박을 쓸 지도 몰라. 고스돕을 가르치며 이 전보다 스페인어 실력이 150%는 늘어난 것 같다.

"고스돕은 맨날 해?"
"주로 설날, 추석 같은 명절 때 하지. 친척들끼리 돈을 걸고 하는데, 시작할 땐 다들 웃지만 끝나면 머리끄댕이 잡고 싸워."
"하하. 우리도 도미노 게임 돈 걸고 하면 꼭 싸우게 되더라."
전 세계 어디서나 과도한 도박은 좋지 않다.

photo by @chastar92
한류 뭐 별거 있나요.

아 참. 그 새벽, 우리는 네 판의 도미노를 모두 이겼다. 쿠바노들은 muy inteligente (똑똑하네!)라며 한국의 실력을 인정했다. 훗. 도미노로 쿠바 뿌쉈다. 근데 아마 한판 더 했으면 졌을거다.

photo by @chastar92
* 쿠바는 어떻게 인터넷을 쓰는가.
먼저 1시간에 1쿡(=미화 1달러)하는 인터넷 카드를 구입 해야한다. 복권 긁 듯 카드를 긁으면 비밀번호가 나온다. 인터넷이 설치된 특정 장소 (공원, 호텔)에 가서 와이파이를 켠다. 로그인 창이 뜨면 카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덕분에 쿠바에는 두 가지 진풍경이 있다. 첫째, 걸어가며 핸드폰 하는 사람이 없다. 둘째, 공원이나 호텔 앞에 쭈그려 앉아 인터넷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뉴스를 보니 조만간 쿠바에도 3G가 들어온다고 한다. 이런 진풍경을 볼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른다.


(Cover photo by @chastar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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