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사랑해” 그 한 마디

세상의 모든 말이 사라져도 이 말들만큼은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by 김수정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로 산다, “미안해요.”라는 말에 다시 사랑하기로 한다.”



밤 11시에 집을 뛰쳐나갔다, 아주 가끔 벌어지는 부모님과의 언쟁 때문에. 좁은 방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휴대폰과 가방만 움켜쥐고 나온 터라 몸은 아주 가벼웠다. 어디 특별히 갈 데가 있겠나, 택시를 타고 찾아간 24시간 카페에서 카페라테를 시켰다. 한참 멍하니 앉았다가 다 식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욱신거리는 마음을 쓸었다. 이북 리더기를 꺼내 책을 읽었지만 머리에 하나도 안 들어왔다. 토닥토닥 가슴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한 시간 또 한 시간 그렇게 하룻밤을 버텨야 할 터였다.


새벽 2시, 휴대폰이 울리고 문자가 들어왔다. “미안하다.” 놀랐다, 평생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의 사과였다. 몇 십 년 내가 알아온 우리 아버지는 절대 딸에게 “미안하다” 하실 분이 아니었다. 단언컨대 아버지와 내 관계가 180도 달라진 건 그 순간이었다. 임팩트가 컸다, 아버지의 결단은 사랑과 겸손이었기에. 순식간에 상한 마음은 가라앉았다. 새벽 5시에 다다라 날이 밝자 집에 들어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배웅하셨다.


그리고 오륙 년이 지났다. 아직도 아버지는 노트북 자판을 양손으로 두드릴 줄 모르신다. 아버지의 일과는 새벽처럼 일어나 운동을 다녀오시고 아침을 드신 후 내내 성경을 읽고 동영상 강의를 듣고 내용을 정리해 쓰신다. 이렇게 공부한 내용으로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신다. 공부의 영역이 넓어지다 보니 고대 풍속이나 전쟁사를 설명한 강의도 들으시고 한글 프로그램에 정리하시는데 독수리 타법은 아무래도 힘겹다. 보다 못한 나는 구글 크롬을 깔아드리고 확장프로그램에서 문서-마이크 프로그램을 쓰는 법을 알려드린 후 헤드셋 마이크를 사다 드렸다. 아버지는 말을 하면 글로 변환되는 구글 문서를 신기해하시며 좋아하셨다. 명실공히 디지털이 힘겨운 초특급 아날로그 어르신이다. 그런 아버지는 가끔 “고마워” 혹은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내신다. 세상 최고 촌스러운 움직이는 고양이 GIF를 카카오톡으로 보내신 날도 있다. 물론 대개 용돈 혹은 금일봉을 보내드린 날의 반응이지만, 이 작은 표현이 얼마나 그에게 힘든 작업이었는지를, 그리고 무엇보다 큰 “사랑해” 표현이라는 걸 나는 안다. 아버지 최선의 “고마워”라는 것도 안다.


마리아 크레인Maria Kreyn, 1987~의 그림, 「포옹I(Embrace I)」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가 오고갔다. 애틋하게 맞닿은 두 사람, 눈을 감고 있지만 눈물을 참는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의 얼굴은 말할 수 없는 말을 꾹 누른 듯 감정이 짙다. 관람자를 등지고 선 한 사람의 야윈 등은 애처롭다. 사람은 몸에 마음을 쓰고 내보인다. 손가락의 각도에서, 입꼬리의 흐름에서, 내리깐 눈꺼풀에서 사람의 마음은 엿보인다. 이 등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다름 아닌 서러움과 슬픔. 얼마나 많은 아픔이 이 등에 가득한지 보는 나라도 그 등을 쓸어주고 싶다.


2 사랑은 디테일에 ● 4 “미안해” “사랑해” 그 한 마디.jpg 마리아 크레인, 「포옹 I(지평선)」, 캔버스에 유채, 2017


러시아 태생의 마리아 크레인은 콘서트 피아니스트인 어머니를 따라 1989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로서, 시카고대학교를 졸업한 재원이다. 그녀는 원래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나, 시카고대학이 워낙 현대미술 교육에 세계적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학교인 덕인지 자연스레 미술에 몸을 적셨다. 대학 입학 전에 드로잉을 배웠던 그녀가 그림으로 인생을 결정하기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후 유럽으로 여행가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프랑스에서 드로잉의 즐거움을 깨닫고 정열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크레인은 말한다. “작품이 아름답게 완성되었을 때, 그리고 영 작업이 진행되지 않아 어려움을 느낄 때를 나는 사랑합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술에 걸린 것처럼 아름다움이 피어납니다. 그건 전통적인 거장의 작품에서 보이는 것과 똑같죠, 그리고 그건 우리 예술세계와 이어질 가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깊숙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I love it when work is profoundly beautifully made and when it’s difficult to make. When you work on something for a long time, magic happens, beauty happens. That’s what I seen in great works from the tradition, and that’s what deserves to bridge with our art world. It’s profoundly relevant. Human behavior has not changed over time. Everything you have in your mental, genetic, ancestral code reveals itself all the time. 그녀의 그림은 바로크 스타일이 지닌 고전미를 가지고 있으며 감각적인 열정이 드러나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 특히 유화 그림에서는 어둠 가운데 빛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방법으로 극적인 효과를 내곤 한다.


‘포옹’은 화가가 자주 사용하는 포즈이면서, 효과적으로 감정을 나타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녀는 미국 뿐 아니라 전유럽에서 전시했으며, 그때마다 수집가들은 열렬하게 그림을 사들였다. SNS에서의 인기도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다. 미국 ABC 방송에서 제작한 드라마 「The Catch」에서 드라마의 중요 소품으로 그녀의 그림을 사용했다니, 크레인 그림이 가진 강력한 매력에 대해선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두 사람은 꼭 끌어안고 있지 않다. 다만 가슴과 가슴을 맞댈 뿐이다. 심장소리와 심장소리가 같은 리듬으로 들린다. 양 손을 뒤로 엇갈린 한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온 또 한 여자는 그녀의 손에 자기 손을 가져다 댄다. 한 사람의 주저함에 한 사람이 다가가 살며시 붙든 손 하나가 화면을 뜨겁게 한다. 눈물을 참으려는 서글픈 얼굴, 꾹 눌러 절제한 안타까운 슬픔. 이 얼굴은 말로는 표현 못할 감정을 일으킨다. 가슴을 내밀고 손을 잡은 여자가 못내 하고픈 말이 “미안해” “사랑해”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 그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솔직한 애정의 언어가 또 무엇일까.


“아들, 그세 계절이 바뀌는구나. 가을꽃이 곱고 하늘은 맑구나.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살고, 아빠도 점심 먹으러 간다. 미안해, 사랑해.” (이학영, 더민주 군포의원/ 2016.9.29. 오후 1:51)


여느 때처럼 페이스북을 스크롤하던 날, 국회의원 이학영의 글을 보고 시큰해졌다. 먼저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담해서. 그의 슬픔은 몇 달 전 신문지상에서 먼저 읽은 적이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데 만날 수가 없어서 그리움을 못 이기고 쏟아낸 글줄. 별 강약 없는 꽃 사진과 하늘 사진, 분수 공원에 노니는 사람들 사진까지 담백했다. 슬픔은 절제할 때 또 다른 모양으로 사람을 품는다. 사람을 사랑한 적 있는 누구라도, 사람을 떠나보낸 적 있는 누구라도 이 의원의 마음에 공감할 터, 무엇보다 내 마음을 건드린 건 맨 마지막에 닿은 ‘미안해’와 ‘사랑해’ 때문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정동길을 걸을 때 꼭 떠올리는 사람도, 북촌 한옥길을 지나 아라리오 갤러리 앞에 주저앉아 쏟았던 한숨도, 광화문 시네큐브 ‘해머링 맨’ 앞에서 나눈 대화도, 봄날 북촌에 쏟아지는 노란 꽃을 볼 때에 기억나는 향기도 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떠오르는 내 사연은 매번 사랑과 그리움을 고백한다. 지금 내 곁에 머물러주는 사람에게도, 이미 내 곁을 떠난 사람에게도 말없이 “보고 싶다.” “잘 지내지.” “건강하기를.” 되뇐다. 우리가 함께하거나 함께하지 않거나 마음은 날아가 닿는다. 마음은 화학물질이라는데 훨훨 멀리 갈 수 있다면 좋겠다. 크레인의 그림이 바로 이 마음 아니던가, 마음 뿐 아니라 현실로 가슴을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미사여구는 수도 없지만, ‘미안해’와 ‘사랑해’보다 더 정확한 건 없지 않을까, 그게 가족이던 가족이 아니던.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로 산다, “미안해요.”라는 말에 다시 사랑하기로 한다. 세상에 ‘미안해’와 ‘사랑해’를 백만 번 해도 을乙이 되지 않는 관계, 그저 고맙고 따뜻하기만 한 관계가 있다면 그건 하늘이 내린 행운이다. 마음을 숨기고 눈치만 보는 관계는 피곤하다, 이리 재고 저리 재는 밀당은 지친다. 그저 사랑의 마음에 솔직할 것.


세상의 모든 말이 사라져도 이 말들만큼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사랑은 근원 없는 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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