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혼자서도 최선을 다해 로맨틱했다
“홀로 강인한 그대여, 그대 항상 로맨틱을 잃지 말아요. 로맨스가 휴업이라고 로맨틱마저 휴일은 아니랍니다.”
내가 꾸준히 쓰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쓸 때가 가장 쉬워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글쓰기는 무엇에 대해서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반대의 질문에는 단번에 대답할 수 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쓸 때가 가장 어려워요?”
‘사랑’에 관한 주제, 연애에 대한 글을 쓸 때가 가장 어렵다. 인간은 경험하는 대로 생각의 자원이 쌓여가는 것이라 글을 쓸 때도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해 가장 잘 쓸 수 있다. TV 없이 살아가는 방법이던지 워커홀릭이 살아가는 방법, 기출문제를 분석해서 시험에 합격하는 공부법,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방법, 실패에서 다시 일어나는 마음가짐에 대해 글을 써 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글을 시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랑이나 연애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가장 인기 있는 예술의 주제는 사랑과 연애가 아닐까. 도심지 대형서점에 가득 쌓인 에세이 중 연애를 다루지 않는 내용은 드물다.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을 갈망하는지는 노랫말이나 영화, 드라마만 봐도 쉽사리 알 수 있다. 아니, 놀라울 정도로 우리 주변은 사랑 그 자체다. 지금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사랑과 연애에 대한 관심사는 가장 크고 촉이 민감하다. 그러니 내가 그들의 질문에 사랑이나 연애가 가장 어려운 주제라고 대답하면 실망일 수밖에. 서정 가득한 시집을 사 모으고, 로맨틱 장르연극이나 뮤지컬을 손꼽아 기다리며, 연애소설의 제왕 제인 오스틴과 드라마틱한 샬럿 브론테를 좋아하는 내가 연애 자원이 가장 부족하다니 좀 우습기는 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었다.
로맨스가 휴업인 지 꽤 되었지만, 로맨스가 가진 힘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의 시와 사랑의 서사가 주는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그림을 바라본다. 그의 불꽃이 타오르는 그림만으로 로맨틱은 충전된다.
「연인들」을 바라보라. 먼저 남자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한다. 그에게서 날선 것이라곤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눈을 살짝 뜨며 웃고 있을 뿐. 눈을 치켜뜰 힘도 잃은 듯 빠져든 아득함, 붉은 옷을 입은 여자 역시 은근히 웃으며 이 순간의 달콤함에 기뻐한다. 두 사람은 그저 이 순간의 리듬에, 이 순간의 공기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어 생명을 충전하고, 그 힘으로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른다. 함께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 화면 가운데 향기와 꽃과 이파리와 연인들이 뒤섞여 사랑의 세계가 펼쳐진다. 저 멀리 신비한 보랏빛이 피어오르고 더 멀리 하얀 눈빛이 멀어진다. 여자의 치마 아래로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둥근 보름달과 달빛을 받아 노리끼리한 구름, 짙은 어둠에 보이는 흰빛은 눈이 오는 밤하늘 같다. 이 그림에서 사랑 이외에 그 어떤 것을 찾아낼 수 있을까.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둘만이 꼭 붙어 있다.
마르크 샤갈은 미술사의 A급 사랑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댕이나 피카소가 새로운 사랑을 찾는 사랑꾼이라면 마르크 샤갈은 사랑을 키워내는 사랑꾼이다. 그의 그림에 사랑이 넘쳐흐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샤갈의 그림이 아니라 그의 그림 스타일을 짜깁기한 모방작이다. 샤갈은 사랑을 위해 살고 사랑을 위해 죽었던 화가였으므로.
당시 러시아의 리오즈나 지역, 현재의 벨라루스에서 유대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마르크 샤갈은 생선이나 야채를 팔아 겨우 입에 풀칠하는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예술혼만큼은 가난하지 않았다. 1906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면서 샤갈의 인생은 본격적으로 예술을 향해 달려갔다. 짜반체바 미술학교에서 화가이며 무대 예술가였던 레온 박스트Leon Bakst를 만난 것은 인연이었다. 레온은 샤갈에게 예술의 드넓은 영역을 열어 보여줌으로써 예술가로서의 포부를 갖게 하였다.
이 시기는 여러 모로 축복의 시간이었다. 1910년, 샤갈은 고향 비테프스크Vitebsk에서 일생의 연인 벨라 로젠벨트Bella Rosenfeld를 만나게 된 것이다. 샤갈은 벨라와의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녀는 혼자이다, 완전히 혼자. 갑자기 나는 내가 테아와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녀와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녀의 침묵은 나의 것. 그녀의 눈은 나의 눈. 마치 그녀가 오랫동안 나를 알아 왔고 나의 어린 시절과 나의 현재와 미래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지만 그녀는 오래 전부터 나를 지켜보며 나의 속마음을 읽어 온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바로 나의 아내임을 예감했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눈. 그녀의 검은 눈은 얼마나 둥글고 큰가! 그것이 바로 나의 눈, 나의 영혼이다. 나는 새로운 집으로 들어갔으며 다시는 그 집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_마르크 샤갈, 최영숙 역, 『샤갈, 꿈꾸는 마을의 화가』, 다빈치, 2004
본디 두 사람은 신분이나 지위에 있어 이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빈민 노동자 집안의 샤갈과 유력한 보석상 집안의 벨라는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벨라는 샤갈의 여자친구 테아 브라흐만의 친구였다. 꼬이고 꼬인 관계였다. 그뿐인가, 샤갈은 그림 한 점 안 팔리는 스물두 살 화가인데, 벨라는 열세 살에 게리에르 여대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수재였고, 배우를 지망할 만큼 아름다웠다. 벨라의 부모는 쌍수를 들고 두 사람을 반대했다.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샤갈은 더욱 노력했다. 시간이 도와주었다. 1915년, 샤갈이 후원자를 얻고 유럽에서 화가로 성공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결혼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에 머물다가 예술의 도시 파리로 이주한다.
현실을 뛰어넘는 꿈이나 환상, 무의식의 세계를 그려내는 초현실주의Surrealism의 대표 작가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나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처럼 차가운 이성이나 우연의 효과로 괴이한 느낌까지 드는 이세계異世界를 만드는 화가들이지만, 초현실주의를 가르칠 때 나는 샤갈을 강조한다. 꿈과 사랑과 환상의 세계를 화려한 색채감각으로 그려낸 샤갈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고, 행복을 포착해내는 감각을 키워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샤갈의 그림에는 끝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연인이 나온다. 샤갈 자신과 아내 벨라다. 샤갈의 그림은 그런 두 사람을 투영해 그려낸 것이다. 행복하고 열정 가득한 화가, 샤갈 뒤에는 언제나 연인 벨라가 있었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작품, 「연인들」은 샤갈이 기쁨의 결혼생활을 하던 때 그린 그림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연인들은 모두 자신과 아내를 비유한 것이지만 특히 벨라가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벨라 특유의 짧고 구불거리는 헤어스타일 때문이다. 당연히 이 여자는 벨라다. 코가 뾰족하고 곱슬머리를 한 남자도 샤갈이다. 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공간이 뒤섞인다. 저 멀리 흰빛이 인물과 공간을 분리하며 화면을 정리한다.
샤갈의 그림을 볼 때마다 눈을 찾아보는 버릇이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명확하다. 90년대에 청춘을 보냈다면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가 있을까. 중고등학교, 대학까지 살았던 서현동에서 가장 로맨틱했던 카페, 가끔 들르던 강남역 어딘가에서 가장 우아했던 경양식 카페. 한번은 버스를 잘못 타 내렸던 문정동에서도 반가웠던 바로 그 간판. 거기가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이었다. 용돈을 모아 파르페를 사먹곤 했던 바로 그 카페가 아직도 어딘가에는 있다고 한다. 물론 예전처럼 같은 컨셉으로 인테리어와 메뉴를 갖춘 가맹점은 아닌 것 같다. 실제 샤갈은 ‘눈 내리는 마을’이란 제목의 그림을 그린 적이 없지만,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는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빌려 생긴 카페라고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박상우의 동명 단편소설에 더 확신이 간다. 마음에 눈이 내릴 정도로 외로운 남자와 여자 이야기다. “이 시간에 술을 마실 만한 곳이 있습니까?”라고 묻는 남자에게 여자는 말한다. “샤갈의 마을로 가면 돼요.”라고. 여자가 데려간 장소는 자기의 화실畫室, 샤갈의 그림이 여러 점 걸린 춥고 허름한 방이었다. 술을 마시며 여자는 몽롱하니 이야기한다. “그가 보고 싶어요. 누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줄 수 없나요? 내가 그를 기다린다고…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서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서현동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카페에서도 테이블마다 전화가 있었다.) 여자의 사랑은 이제 없지만 그녀는 혼자서도 최선을 다해 로맨틱했다.
1941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자 유대인 부부였던 두 사람은 미국으로 도피한다. 시절은 흉흉했지만 두 사람은 끊임없이 사랑했다. 29년간 샤갈은 벨라뿐이었고 벨라는 샤갈뿐이었다. 1944년, 갑작스러운 감염성 바이러스 질환으로 벨라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시는 2차 세계대전 중이었고 모든 의료진과 약제는 전투장에 집중되어 있었다. 치명적인 병은 아니었는데도 운이 나빴다. 당장 항생제를 구하기 힘들어 갑작스런 발병에 손쓸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약은 오지 않았고, 생명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내의 허망한 죽음에 샤갈은 9개월간 그림을 전폐했다. 예전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마르크 샤갈이 엄청난 열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판화를 제작하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늘 사랑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샤갈은 1952년, 65세의 나이로 딸 이다가 소개한 발렌타인 바바 브로드스키Valentina Vava Brodsky와 재혼한다. 바바에게도 샤갈은 헌신적인 남편이었다.) 사랑할 때 가장 신비로운 것 하나는 항상 힘이 난다는 것이다. 어떤 이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살아갈 의욕과 생명이 넘친다는 것이다. 그 때의 그 생명력을 잊지 못해 우리는 외로움에 사무쳐 힘겨워하고, 그 때의 그 뜨거움을 잊지 못해 우리는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드라마를 보며 쓸쓸함을 달래고, 그 때의 그 비상함을 잊지 못해 우리는 사랑의 경구를 읽고 외우며 약간의 힘을 충전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의 눈빛이 없을지라도, 그의 눈을 마주보는 것처럼 한 번 더 일어서고, 사랑하는 이의 음성이 없을지라도,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한 번 더 용기를 낸다.
그러니 홀로 강인한 그대여, 그대 항상 로맨틱을 잃지 말아요. 로맨스가 휴업이라고 로맨틱마저 휴일은 아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