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디테일에

영원한 사랑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충성을 다하는, 끝맺음을 하는 사랑이다

by 김수정
“감히 나는 단언한다. “사랑은 영원하다.”라는 성경의 말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고. 영원한 사랑은 끝맺음을 하는 사랑이다. 영원한 사랑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충성을 다하는, 끝맺음을 하는 사랑이다.”


‘MCM가방 사건’


세상천지 순진하던 나에게 처음으로 ‘귀 베어가고 코 베어가는’ 세상 무서움을 알려준 인터넷 사기사건이다. 명품은 아직 아니지만 곧 명품이 되겠다고 선언한 국내 브랜드 MCM은 90년대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세련된 블랙, 화이트, 레드, 브라운 컬러에 콕콕 박힌 깔끔한 금장이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꼭 맞았다. 특별히 내가 좋아한 건 빨강이었다. 서현역을 지날 때마다 삼성플라자에 들러 신상이 나올 때마다 눈여겨봤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희귀템 자가드 배낭을 발견했다. 롯데백화점에서 구입한 지 한 달 된 가방이라며 아끼느라 며칠 쓰지 않아 새것과 다름없다 했다. 사정이 급해 갑자기 팔게 되어 아깝다는 사연도 적혀 있었다. 정가에 비해 절반정도 저렴했다. 마침 월말이라 아르바이트비도 받았겠다 주저할 게 없었다. 지난 달 고된 노동의 대가 절반을 털어 넣었다. 빨간 구두에 빨간 백팩을 곧 매겠다고 며칠간 신나했다. 그러나… 그런 내게 도착한 것은 택도 없이 조악한 금속탭이 붙은 ‘짝퉁’ 가방. 게다가 빨간색도 아니었다. 당장 거래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기계음만 반복될 뿐 상대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경찰서에 쪼르르 달려갔지만 십오만 원짜리 사기 범죄는 진지하게 상대해 주지 않았다. 송장을 역추적해서 상대를 찾고 변경 전화번호 이력을 조회해 끝까지 잡아낼 주변머리도 없었다. 거의 이십 년 전의 이야기다.


명품과 짝퉁은 어떻게 구분할까, 우스갯소리로 비가 오면 명품가방과 짝퉁가방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몸으로 가방을 가려 빗물을 피하도록 하면 명품, 우산 대신 가방을 머리 위에 써서 사람이 비를 피하면 짝퉁이라는 것이다. ‘모조품’이란 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속된 ‘짝퉁’이란 용어가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된소리 가득한 ‘짝퉁’, 들을수록 그것 참 구성지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어온 것, 그리고 이미지와 명성까지도 합하여 명품이라고 한다. 최하 몇 십 년의 시간이 있어야 명품이 된다. 아직 명품은 아니어도 시간이 쌓여야 명품이 될 준비를 갖춘다. 시행착오를 딛고 일어나는 시간이 명품을 만든다. 명품은 시간을 극복하기 원한다. 그 이름이 영원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명품과 짝퉁을 구별하는 방법은 인터넷상에, 신문지상에 넘쳐난다. 명품에 관한 책 역시 꾸준한 수요를 지니고 있다. 그만큼 둘은 한눈에 구별하기 어렵다.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딱 하나, ‘디테일’을 보는 것이다. 가방 안쪽의 박음질이라던가, 지퍼 끝부분의 맺음새, 바느질 마지막 실 마무리, 가느다란 장식 음각의 선명성 등이 명품과 짝퉁의 정체성을 가로지른다. 짝퉁은 하루아침에 명품의 겉과 속을 베껴 만들어낸다. 그럴듯하지만 짝퉁에 디테일은 없다. 내가 택배상자를 뜯자마자 한눈에 사기꾼의 호구가 되었음을 알아차린 이유다. A급 이미테이션이라도 돼야 잠시 모른 채 지냈겠지. 명품이라면 단 한구석 빼놓은 곳 없이 디테일은 충실하게 마무리된다.


‘명품’이란 단어는 물건에만 붙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도 같은 단어가 붙는다. 사람에도 같은 단어가 붙는다. 예술에도 같은 단어가 붙는다. 그 무엇이 되던 ‘명품’이란 단어가 붙으면 중하고 귀한 것이 되어버린다. 여기 명품과도 같은 그림 한 장이 있다. 이 그림을 ‘명품’이라 소개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진 가장 그다운 미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Rogier van der Weyden, 1399~1464의 「성모를 그리는 성 누가(Saint Luke Drawing the Virgin, 1435~1440)」는 그야말로 디테일이 충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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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 「성모의 초상을 그리는 성 누가」 패널에 유채, 137.5×110.8cm, 1435~40, 윌리엄 A. 쿨리지 갤러리


성 누가가 아름다운 성모와 아기 그리스도 앞에 앉았다. 성모 마리아는 성스러운 공간을 의미하는 캐노피 아래 있다. 캐노피 아래에는 천이 드리워 그녀가 천국의 가장 높은 여성임을 상징한다. 그러한 하늘의 성모가 이 땅에 내려왔다. 하늘의 흔적을 거두고 인간 앞에 섰다. 후광은 사라지고 인간의 정성을 다하여 인간의 몸으로 아이를 먹인다. 수유하는 성모는 세상의 모든 평화를 두른 듯 고요하다. 마리아가 앉은 의자의 팔 부분에 ‘인류의 타락’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예수를 그릴 때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상징이다. 저 멀리에는 강을 바라보는 두 명의 남녀가 보인다. 성모 마리아의 친부親父인 요아킴과 친모親母인 안나다.

그간 마리아와 예수를 돌봐 온 의사 누가는 새로이 가치 있는 일을 시작한다. 바로 그림이다. 누가는 제대로 무릎조차 꿇지 못하고 성모에게 몸을 향한다. 누가는 지긋이 마리아의 얼굴을 바라보지만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누가의 섬세한 손끝은 가늘게 떨리며 마리아의 얼굴을 그림으로 옮긴다. 그림에는 성모의 내리깐 눈과 온화한 미소가 고스란히 옮기었다. 그야말로 훌륭한 디테일이다. 누가가 가졌던 글쓰기의 섬세함이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리는 데에도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다.


13세기 화가 길드의 수호성인은 성 누가였다. 화가 누가의 뒤편으로 방 하나가 보인다. 분명 누가가 쓴 복음서일 것이다. 누가가 써 온 그리스도의 기록이 가득하다. 그 아래로는 황소의 머리가 보인다. 누가를 상징하는 신비의 동물이다. 누가는 본디 의사 출신으로 그리스도의 믿음을 따르던 전도자였으며, 그동안 들어 왔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모아 누가 복음福音을 기술한다. 누가복음은 그리스도의 네 복음서 중에 가장 나중에 쓰인 작품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는 수식어를 지닐 정도로 섬세하게 서술되었다. 이렇게 예민한 서술은 꼼꼼한 누가만이 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여긴다. 당연히 다른 복음서에 없는 내용도 누가서에는 첨가되어 있고, 분량 역시 가장 많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으나 오직 누가 복음서에만 등장하는 이야기 중 가장 대표적인 내용이 성모 마리아가 수태를 고지 받고 부른 ‘마리아의 노래’ 및 세례 요한의 탄생 이야기이다. 특히 동정녀였던 성모의 이야기를 성모의 입장에서 다양한 사건과 수식으로 표현한 것이 누가서의 아름다움이다. 누가는 충분히 이 그림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다. 물론 성모와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 누가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스러운 영역은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는 법, 일설에 의하면 마리아는 여러 번 성 누가에게 환영하였고, 이 때 누가는 마리아를 그렸다고 한다.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은 화가로서의 누가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로지에 자신을 은유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실제 성 누가의 얼굴은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의 자화상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플랑드르의 거장, 15세기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자인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브뤼셀에서 활동했다. 당시 유럽 문화의 중심이었던 그곳에서 화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다. 로지에는 종교 아래 모든 조형력을 복종하던 고딕 양식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생명력을 부드럽게 표현한다.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을 정확하게 표현함으로서 정밀하고 뜨거운 감정의 물결을 표현한다. 화가의 정밀함은 사실성을 부각시키고, 화가의 뜨거움은 그림 가운데 은근한 감정을 가득히 담는다. 화가가 그린 인간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과장되지 않고, 옷자락은 그만의 방식으로 엣지 있게 구겨져 관람자의 시선을 받아들인다. 화가는 화면에 숨겨 놓은 아름다운 것들을 관람자가 모두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기를 원한 것이 아니었을까.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도 성 누가도 디테일에 힘썼다. 이 그림의 세부, 이 종이 위에는 그들이 가졌던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경이건 성모에 대한 존경이건, 그 마음은 그저 사랑이다. 사랑은 디테일에 숨어 있다. 애정 없이는 끝까지, 끝까지 무엇인가를 마무리 지을 수 없다. 누가가 그랬고 로지에가 그랬고 명품 장인이 그러했듯이.


그러니 감히 나는 단언한다. “사랑은 영원하다.”라는 성경의 말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고. 영원한 사랑은 시간의 끝까지 가는 사랑이 아니다. 영원한 사랑은 끝맺음을 하는 사랑이다. 영원한 사랑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충성을 다하는, 끝맺음을 하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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