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입이 필요 없다
“한 번도 내게 사랑은 욕망이었던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게 사랑은 언제나 온도였다. 따뜻함, 그리고 마음이 얼어붙어 깨지지 않을 거라는 안정감. 그러면 제법 추운 시절이 좀 서럽지 않을 것 같았거든.”
사랑, 사랑, 사랑,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꼽자면 세 가지 모두 사랑이리라. 어디에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다. 강하게, 아름답게, 생명력 넘치게, 따뜻하게 살아 숨쉬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사람을 품을 때 사람은 사랑과 하나 된다. 그래서 사랑의 순간만큼은 인간이 인간 이상으로 거대해지는 신적 감정이다.
사랑에는 입이 필요 없다. 세상의 수많은 사랑들이 오해로 점철되는 것을 보면 꼭 그렇다. 오히려 입 달린 시끄러운 사랑을 상상하면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면 사랑은 무엇으로 존재를 전달하는가. 잘은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사랑에는 체온이 있다. 사랑에는 온기가 있다. 모두가 경험해 알지 않는가, 내 앞에 선 다정한 사람에게서 사랑을 기대하지 않기가 더 힘들다. 사랑이 있다면 결코 냉정할 수 없다. 세상천지 다 얼어붙어도 사랑만큼은 따뜻하다. 그러하니 사랑은 온도로 기억되고, 닿거나 닿지 않거나 모든 스킨십은 사랑으로 기억된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스킨십이 있다. 지오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의 그림 「목가」에는 생명과 생명이 조용히 맞닿을 때의 온기가 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남자와 여자는 고된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루 종일 일한 듯 허름한 옷 상태다. 이렇게는 집에 돌아갈 수도 없다. 여자는 힘을 잃어 휘청거린다. 남자는 얕은 언덕에 걸터앉고 고개를 숙인 채 등을 세운다. 여자는 남자의 등에 기대어 눕는다. 지친 몸을 기댄다. 남자와 여자는 등을 맞대어 있을 뿐 말 한 마디 나누고 있지 않다. 오직 온기만이 오갈 뿐이다. 사랑만이 닿을 뿐이다. 피부가 닿고 온기가 흐르면 순간은 영원이 된다. 남자는 마음도 전한다. 제목에서 강조하는 목가牧歌 : 전원시가 여기 흐르고 있을 터이다. 피리를 입에 물고 음악에 정성을 실어 여자를 위로한다. 이 리듬은 여자를 위한 것이다. 여자는 눈을 감는다. ‘세상천지 다 필요 없다. 오직 이 남자만 있으면 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이라면 순간을 영원으로 믿을 수 있다.’ 이 온기만 있으면 시간은 멈추고 사랑은 계속되고 꽃은 피어나는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20대 중반의 화가는 일생의 연인인 아내를 얻었고, 풍광이 아름다운 장소에서 함께 살았다. 두 사람의 얼굴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화가는 굳이 말을 얹지 않으나 분명 자신과 아내를 빗대어 그린 그림일 것이다. 진실한 것에는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다. 화가가 어떤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지, 관람자는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다.
지오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 1858~1899에게 사랑은 놀라운 선물 같은 것이었다. 화가의 일생은 시작부터 밑바닥이었으므로. 이탈리아 북부 트렌티노의 아르코 지역에서 살았던 화가의 부모는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으로 겨우 먹고살았다. 그러하니 집안 사정은 궁핍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찢어지게’ 궁핍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돌봄이란 어려운 법, 세간티니가 태어나자마자 형 로도비코는 화재사고로 사망했고, 그 역시 아주 어린 시절 익사사고에서 간신히 구제받았을 정도였다. 점차 건강이 나빠져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도 곧이어 돈을 벌겠다고 집을 나섰다. 남매는 오갈 데가 없었다. 친척이라는 이에게 찾아갔으나 뭐 그리 형편이 나을 것이 있었겠는가. 아무도 그들을 반기지 않았다. 골방에서 외로움과 더러움에 떨던 남매는 그 집을 떠나기로 한다. 화가는 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은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가기로 했다.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포기하고 이탈리아 시민권을 청구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였을까, 서류상 오류로 두 사람은 이도 저도 아닌 무국적자가 되었다. 부모도 없고 나라도 없는, 그 누구도 보살펴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화가가 믿을 것은 온기 가득한 누이의 손길뿐이었다.
남매는 사막 같은 광야를 가로질러 걷고 또 걸었다. 거지나 다름없었다. 아니, 어린 거지가 되었다. 둘은 언제나 함께했다. 화가는 부랑자로 신고되어 감호소에 끌려가서도 또다시 도망쳤다. 한 번만이라도 잘 살아보고 싶은 열망이 그곳에 머물지 못하게 했다. 길거리에서 병에 걸리기도 했다. 치료나 돌봄을 받을 곳도 없었다. 끝내 교육은 받지 못했다. 한 글자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문맹인 채 어른이 되었다.
감호소에 있던 화가에게 배다른 형 나폴레옹이 온기 어린 손을 내밀었다. 형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세간티니는 그를 따라가 사진 기술을 익혔다. 이때부터 그의 인생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그리던 그림이 길을 열어주었다. 그림을 눈여겨보던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브레라 아카데미Brera Academy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카를로 부가티Carlo Bugatti라는 화가 친구도 생겼다. 스물한 살에 그린 「성 안토니오의 성채(성가대석), 1879」 가 인정받아 화상들의 도움도 연이었다. 같은 영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을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뭐니뭐니해도 당시의 화가에게 가장 큰 행운은 부가티의 여동생 비체Bice, Luigia Bugatti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원하지만 세간티니의 무국적은 그들에게 절망으로 다가온다. 무국적자는 살아 있어도 법률상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다. 서류상으로 지오반니 세간티니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연인은 정식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놀랍게도 평생! 두 사람은 법적인 공백 상태로 살아야 했다. 사정이 그랬는데도 가톨릭 교회는 동거 상태인 그들을 미워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쑥덕댔다. 번번이 화가 부부는 견디지 못하고 이사가 잦았다. 화가는 자기 때문에 늘 마음이 아플 아내에게 미안했다. 고마움과 위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화가는 30대 중반에 이르러야 제대로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하며, 그간의 서러움을 푸는 것처럼 아내에게 잦은 연애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1880년, 화가는 알프스의 산악도시 푸치아노로 이주하여 화가 에밀리오 롱고니Emilio Longoni의 집에 머문다. 세간티니는 빛을 관찰할 기회를 얻는다. 이때 그린 그림 「아베 마리아(성모를 찬양하라)」는 1883년, 큰 상을 그에게 안겨줌으로써 화가로서의 인생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화가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어머니의 사랑, 아이를 끌어안고 아이를 돌보는 모성애의 표현이었다. 화가 특유의 사랑이 가득한 모자의 그림은 성모자의 비유로 읽힐 정도였다. 너무나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었던 것이 이유였을까. 그는 언제나 애정이 고팠다. 일생의 사랑을 만났다는 것이 그에게 행운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아내에게 최선의 사랑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1886년, 세간티니는 또다시 이주한다. 사보닌Savognin은 풍광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산에 오르기보다는 사람에 관심을 두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처럼 일상은 가련하고, 거기 사는 이의 목소리는 애절하다. 가난이 더할수록 인간성을 잃는 사람도 있지만, 가난이 깊어질수록 인간애가 깊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화가는 어디 말할 수도 없는 가난한 생에 마음을 두었다. 바로 본인이 그러하였듯이 그들도 그리하리라 믿었다.
화가는 인물뿐 아니라 자연에도 큰 눈을 열었다. 맑고 투명한 알프스의 공기는 사람의 뒤를 둘러싸며 순결한 배경이 되었다. 이 투명함은 인간의 순수와 더불어 생의 묘한 비애감을 불러온다. 이즈음 그의 작품은 점묘법을 활용한 색채 분할주의 기법으로 발전한다. 친구의 조언도 있었지만 환경의 영향도 컸다. 알프스의 눈은 흰색의 바탕에 가시광선을 반사한다. 노골적인 색채감이 그의 눈을 자극했다. 화가는 자연에 집중했다. 자연스레 영적인 관심과 이미지를 확대하는 상상력, 은유적 표현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하니 화가의 작품을 상징주의를 분류하는 방법론도 타당하다. 굳이 정리하자면 그는 상징주의 주제를 후기 인상주의 기법으로 그린 화가일 것이다.
국적이 없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했다. 화가는 알프스의 엔가딘Engadin 고원으로 이주했다. 니체를 읽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고, 산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화가의 명성은 더욱 높아져 갔고 그림도 인기가 높았지만 여권이 없는 그는 근처 말고는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그는 독보적인 알프스의 화가다. 그에게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산은 존재의 일상이며 생존의 조건이었다. 산은 화가에게 신이 머무는 곳과 같았다. 그처럼 산에 파묻혀 산을 관찰하고 산을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는 없었다. 그처럼 자신이 존재하는 장소에 대한 애정을 옮기려고 노력한 화가가 없다. 이 산은 그에게 죽음 또한 선사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산을 오르는 중, 알프스의 눈을 녹여 마셨던 것이 원인이 되어 화가는 사망했다. 죽음 후에는 말로야 교회 묘지에 묻혔다. 겨우 41세의 아쉬운 나이였다. 뿌리 없이 평생을 휘청였던 세간티니는 죽은 이후에야 국적을 얻었다. 스위스는 위대한 화가를 자국의 것으로 소유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소유하고자 한다. 그들의 사랑은 내게 그렇게 낯설다. 나는 사랑을 소유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사랑에 가까이 가고만 싶었을 뿐.
한 번도 내게 사랑은 욕망이었던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게 사랑은 언제나 온도였다. 따뜻함, 그리고 마음이 얼어붙어 깨지지 않을 거라는 안정감. 그러면 제법 추운 시절이 좀 서럽지 않을 것 같았거든. 그러니 나는 은근한 빛처럼 따뜻한 척이라도 하고 싶다. 냉정한 나는, 순간이라도 따뜻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언제나 내 특별한 이는 나를 사랑으로 기억해 줬으면. 그랬으면. 정말 그랬으면…
세상에는 말이 필요 없는 것들이 있다. 말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는 것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쪽에 머문다. 구체적으로 사랑의 영역에 있는 것들이 그렇다. 그래서인가, 사랑은 어렵고 애정은 의심스럽다. 사랑을 확신한다는 것은 언제나 착각 같아서 사랑받는 이를 불안하게 한다. 그래서 사랑의 이름을 가진 것들은 온기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는 이렇게 따뜻하니 나의 사랑을 믿어 달라고. 분명 나는 살아있는 사랑이니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부디 내 사랑으로 평안을 입으라고 온기는 간곡히 호소한다.
한때 글 없이 살아야 했던 세간티니에게 온기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런 그에게 어쩌면 말 없이도 사랑을 전할 수 있어서, 온기는 절대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화가의 분신 같은 그림을 보라. 한 장 한 장 고요한 온기가 흐른다. 「목가」에서는 보다 더 뜨거운 체온이 흐른다. 등에는 활짝 열린 눈이 없고 소곤소곤 소리를 낼 입이 없다. 의외의 순간에 등과 등이 닿았을 때의 충격은 전율을 일으키며. 볼 수 없으니 언제 피부가 닿을지 예상할 수 없어 더 놀란 감각은 울컥하는 감동을 가져온다. 자신의 체온보다 그의 온도가 훨씬 따뜻해 흠칫 놀라면서도, 맞댄 온기가 가닿는 넓은 면적 때문에 더욱 안심할 수 있었던 스킨십이 있다.
때로 고요한 스킨십은 더욱 감동적이다. 소리가 사라지면 평화가 머문다. 온기가 흐르면 애정이 쌓이고, 체온은 문신처럼 피부에 스민다. 시간과 온기가 오갈수록 두 사람은 스며든다. ‘사람’과 ‘사랑’이 왜 닮았겠는가. 사람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닌가. 아니, 사람을 사람 이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지 않은가. 사람의 온기는 분명 언어를 뛰어넘는다. 그러하니 사람은 언제나 사람 이상이고, 사랑이 있어서 사람은 더욱 복된 존재다.